대한민국의 음악인 겸 방송인. 음악 쪽으로는 래퍼, 작곡, 작사, 프로듀서 경력이 있고, 방송 쪽으론 많은 예능프로에서 활동하고 있다.
혼성그룹 룰라의 멤버이며, 리더, 메인래퍼를 맡고 있다. 1990년대 말부터는 제작자로 변신해 Sangmind(상마인드)를 설립하고 샤크라, S#ARP, 컨츄리꼬꼬 등을 성공시키며 2000년대 초반까지 정상급 프로듀서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엑스라지와 QoQ[20]가 실패하고 김지현의 2집, 백지영의 4집이 별 성공을 못 거두며 위기를 겪다가 사업가로 변신했으나, 2005년 11월 부도로 69억 8천만 원의 빚을 지게 되고 그 후 6~7년간 도박 사이트 운영, 불법대출 알선 등 여러 구설수에 오르며 추락하였다가 2012년 음악의 신으로 화려하게 재기, 현재는 여러 TV 프로그램의 MC이자 예능인으로 활약하고 있다. 병역은 허리 디스크(수핵탈출증)로 면제를 받았다.
이상민 성장과정
tvN의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에서 자신의 인생사와 입장을 말했다. 특히 어렸을 적 어려웠던 가정사를 이야기하면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우선 어머니가 (아버지의) 본처가 아니었고 아버지를 직접 본 적도 없다고 고백했다. 중학교 때 아버지 산소에 갔더니 자기 이름이 없었다고 한다. 즉 이상민의 발언에 따르면, 본인은 혼외정사로 나온 사생아로서 생계가 무척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보냈음을 추측해볼 수 있다.
《라디오 스타》 출연 당시 신정환에게 나이를 속였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에 대해 호적이 잘못되었다는 입장 표명(?)을 했고 신정환에게도 '정 네가 마음이 쓰이면 내가 호적을 바꾸겠다'고 했었다는 해명을 했다. 그런데 MC들은 형, 아우를 바꾸는 게 아니고 호적을 바꾸는 게 가능하냐고 비아냥댔고, 결국 그는 태어났을 때 가난한 형편으로 호적에 등록되지 못해 2년간 이름이 없이 '이애기'라고 불렸다는 전설의 썰을 풀었다. 그러나 본인이 예상했던 슬픈 리액션과는 달리, MC들과 룰라 멤버들 모두 폭소를 금치 못하고 이애기라는 별칭을 남용하는 데 이르자, '그거 되게 슬픈 거예요…'라며 기막혀 했다. 본인에겐 홀로 몇 번 되뇌며 울 정도로 안쓰러운 사연이 분명하다. 그 후, 《더 지니어스 룰 브레이커》 결승전 당시, 2라운드 게임에서 사용한 비밀번호가 본인 아버지[]의 생년이라고 언급하였다.
가난했던 유년 시절부터 거울을 보며 필히 성공할 것을 다짐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다짐은 보란듯이 현실이 된다. 딱 10년 동안만…
이상민 롤라로 데뷔하여 가수 활동을 하다
1994년에 룰라 1집 《백 일째 만남》으로 데뷔했지만, 투투의 아성에 밀려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래도 가요 프로그램에서는 10위권까지 들면서 선전했고, 후속곡 《비밀은 없어》로 골든컵을 수상하면서 서서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사실 룰라 데뷔 직전, 1994년 초에 김흥국의 레게(?) 음반인 《Last Reggae》의 타이틀 곡 《레게파티》에 랩 피처링을 했다. 하지만 당시 신인이라 트랙 리스트에 이름은 올리지 못했다고. 이 때문인지 김흥국과 절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데뷔 후 1995년, 2집 《날개잃은 천사》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그 당시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으로 대표되는 빠른 리듬의 음악이 대세다보니, 《날개 잃은 천사》에 대한 반대 의견이 속출했지만 이상민은 "이 곡으로 가야한다. 이게 룰라의 색깔이다" 라고 끝내 설득했다고 한다. 그 결과 전국의 음반 공장이 룰라의 앨범만을 찍어내야 해 다른 가수들이 활동을 미루게 됐을 정도의 대성공이었다. 아울러 가요톱텐에서 혼성 그룹으로는 유일하게 한 해 두 번 골든컵을 수상하는 주인공이 되었고, 그 해에 서울가요대상과 SBS 가요대상을 수상할 정도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또한 너무 바쁜 일정 탓에 차 대신 헬기를 타고 다니는 등 최정상급 가수들만이 경험한 일들을 겪었다.
하지만 3집 때는 타이틀곡 《천상유애》표절로 인해 지탄을 받고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훗날 이 사건을 자주 곱씹은 탓에 《천상유애》의 작곡가를 이상민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곡의 작곡가는 미국 공연 당시 데모 테이프를 주었던 교포 제임스 리였으며, 홍재선이 편곡했다. 앨범에 표기된 작곡자명은 이 둘의 작곡가 그룹을 뜻하는 'season'이다. 어쨌든 이 일로 크게 상심한 이상민이 자살 시도를 했다는 보도가 나기도 했다. 이때 문병을 온 탁재훈이 주머니에서 1,000원짜리를 꺼내 보여주면서 "이것밖에 없는 나도 사는데 니가 왜 죽어! 인마!!!"라고 오열한 일도 있었다.
2015년 6월 30일자 《호박씨》에서 이상민이 밝힌 바에 따르면, 자살 시도를 한 게 아니라 너무 화가 나고 분해서 주먹으로 유리창을 깼는데, 피가 너무 많이 나서 매니저가 오해한 게 와전된 것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의 실망과 규탄으로 상처를 받은 룰라는 이후 이현도의 프로듀싱을 받은 4집 《All System Go》[2]로 성공적으로 복귀했다. 다만 4집 수록 곡들 중 유일하게 이상민이 선보인《아자》가 다시금 표절 판정을 받아 또 비판이 야기되기도 했다.
이 시기에 이현도, 이현승 등 작곡가들과 동고동락하며 음악 작업실을 꾸리고 미디를 배웠다. 1997년에는 5집이 발매되었는데, 이때 타이틀 곡이 “바보 바보 바보야~”로 시작되는 《연인》이라는 곡이다. 이는 이상민의 자작곡 중 첫번째로 1위를 차지했고 대중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리고 이때 거금의 계약금으로 객원 래퍼 마이키 로메오를 영입한다.
이상민 성공한 가수에서 성공한 프로듀서가 되다
이후 룰라로서의 활동은 잠시 중단하고 이상민은 프로듀서로서의 활약을 시작했는데, 룰라 1집 멤버인 신정환과 당시 솔로 가수로 활동하고 있던 탁재훈과 같이 결성한 컨츄리꼬꼬와 4인조 혼성 그룹인 S#ARP의 음반 제작을 맡았다. 컨츄리꼬꼬와 S#ARP은 이상민의 '상마인드'가 아닌 월드뮤직 소속이며 월드뮤직엔 타샤니와 이브도 있었다. 이상민이 이브와 타샤니도 프로듀싱했다고 알려진 경우도 있으나 이는 잘못된 정보. 이브는 멤버 G.고릴라가, 타샤니는 업타운의 정연준이 프로듀싱했다. S#ARP의 경우에는 그룹 결성을 이상민이 맡았기에 크게 평가를 받을 만 하지만 막상 이상민이 프로듀스한 1집 앨범은 잘 안됐으며, 이후 이상민이 손을 떼고 멤버가 교체되고 나서 성공한 케이스.
다시 한번 짚자면, 이상민은 월드 뮤직의 사장이나 대표 이사가 아니었다. 97년 월드뮤직[3]과 프로듀서 계약을 맺고 소호대, 컨츄리 꼬꼬, S#ARP, 디바 1집을 제작했다. 그러나 S#ARP의 1집이 부진한 뒤, 월드뮤직에서는 이상민과 일을 하고 싶지 않아했으며(음악의 신 에피소드 참고.) 이후 룰라 재결합 음반을 만들면서 룰라 시절 스탭들을 모은 A&B 엔터테인먼트를 만들고(룰라 매니저를 대표로 앉혀놨다.) 재결합 음반을 성공리에 제작하여 월드뮤직과의 관계를 룰라 6집에서 끝낸 뒤, 이후 A&B 엔터에서 브로스와 샤크라 1~2집, 디바 4집 등을 제작한 다음 2001년 쯤 본인이 대표 이사직을 맡는 상마인드를 만든 것이다. 아직도 여러 곳에서 월드뮤직이 이상민의 것이라는 말이 있으나 "프로듀서"라는 직업에 대해 잘 안 알려진 한국 음악 시장의 현실로 인한 착각이다. SM, JYP, 빅히트, 2019년 이전의 YG처럼 대표 프로듀서가 회사 오너인 사례가 많아서 프로듀서 = 사장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99년 룰라의 재결합 앨범을 제작하는데 본인이 거의 다 작곡한 6집 앨범이 3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고 각종 방송 차트 1위를 달성하여 큰 수익을 벌어들였으며 이후 본인이 제작했던, 그리고 앞으로 제작할 소속 가수들을 모두 동원하여 YG FAMILY를 모방한 브로스를 탄생시켜 가수만 14명, 총 100명에 가까운 인원을 한 무대에 세우기도 했다. 당시의 물가로 TV 출연 1회당 천만 원 중반 정도가 깨졌다고. 당시 흑 또는 백색 점퍼를 입고, 거친 랩을 쏟아내던 영상은 지금도 떠돌아다니는 레전드급 무대로 회자된다.
또한, 음반 제작뿐 아니라 자작곡을 쓰던 락 밴드 이브의 음악을 제외한 대부분의 곡을 작사, 작곡하면서, 자신의 음악적 역량을 뽐내기도 했다. 전성기 때는 지금보다 더 정확한 정산이 안 되던 시절이었음에도, 저작권료만 한 달에 무려 1,500만 원을 벌었다고 한다. 1990년대 후반의 1,500만 원은 절대로 작은 돈이 아니다.
99년 당시 국내 굴지의 초거대기업의 영상사업단에서 그를 계약금 15억, 연봉 5억에 총괄 프로듀서로 영입하고자 연락을 취하기도 했다. 지금 기준으로 봐도 엄청난 액수이지만, 당시 물가를 고려해보면 실로 어마어마한 금액이 아닐 수 없는데, 이상민은 그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는 이야기를 했고 늘 주위 사람들을 통탄케 한다. 농담이 아니라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지금의 SM, YG, JYP 3대 기획사만큼 충분히 소속사가 성장할 가능성도 있었다.
이상민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다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자신의 회사 '상마인드'를 만든 뒤, 99년에 이뤄낸 성공으로 지은 사옥이 SM의 바로 건너편에 위치해 있었기도 했고, 음반 제작자로사의 욕심이 많았던 이상민이 시설 투자를 상당히 많이 한 편이라서, SM 소속 가수들이 이상민의 기획사로 자주 스튜디오 견학을 오기도 했었다. 청담동의 한 명품 브랜드 사옥 건물을 통째로 임대해서, 지금의 대형 기획사처럼 음악 제작뿐만 아니라 의상 제작, 연습실까지 모두 한 건물 내에 구현해버렸다. 당시 JYP 사옥이 9억 하던 시절, 길건너 SM 사옥을 이수만이 99년 20억에 매입했을때, 이상민에게는 48억 규모의 현금이 있었다고 한다(실질적으로 48억원의 현금이 있던것은 아니지만, 당시 본인 소유의 자산을 현금으로 모두 바꾼다면 48억 규모의 현금의 가치가 있었다는 것.)
인도 오리엔탈 컨셉을 전면적으로 내세운 샤크라]와 걸스 힙합을 거의 처음으로 시도한 디바 1집, 웃기는 가수 듀오 컨츄리꼬꼬 등등, 다양한 음악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시도를 했었고 모두 성공시켰다. 또한 좋지 않은 이별로 끝났지만, 스캔들 이후 지지부진한 활동을 하고 있던 백지영에게 발라드 가수를 제안한 것도 이상민이었다.
다만 잘 나가는 소속사 사장이었다고 보기엔 조금 무리가 있는데, 막상 본인이 대표가 되는 상마인드 엔터를 차리고 나서 배출된 엑스라지는 역대급으로 망했으며 이후 클레오 4집과 이혜영 1집, 백지영 4집, 김지현 2집, QOQ 등의 앨범을 발매했지만 이중에서 확실하게 성공을 거둔 앨범은 없었다. 클레오는 4집때 이상민이 프로듀서를 맡은 것이라 본인이 제작한 팀이라고 보기에도 뭣한 수준. 브로스 활동 당시 참여한 바비킴도 이상민 휘하라는 말이 있는데 브로스 활동 때만 잠깐 데려온 것이다. 타 기획사에서 프로듀서로 있던 시절과 A&B 엔터[]에서 프로듀서로 활동할때 초반 제작한 가수들은 성공했지만 본인이 대표 이사직이 되는 상마인드를 차리고 본격적으로 뭘 좀 하려고 하니까 이때부터 일이 안풀리게 된 것이다.
물론 프로듀서로서 여러 팀을 런칭시켰으며 자신이 제작한 룰라 재결합 앨범과 여러 가수들의 프로듀싱을 도맡아서 저작권료로 돈방석에 오른 것은 사실이었다. 당시 앨범 한장을 제작할 경우 받는 로열티가 1억 선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이상민은 룰라가 <날개 잃은 천사>로 히트를 치기 시작한 1995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정상급의 프로듀서이자 성공한 사업가로 성공가도를 달렸고, 무지막지한 돈을 벌어들이면서 재벌 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며 행복한 인생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본인의 무리한 사업 확장 의지와 돈 관리 실패, 프로듀싱 실패, 그리고 본인이 언급한 당시의 '허세'로 이상민의 인생은 2000년대 중반부터 바닥을 치기 시작한다.
프로듀서로 초반 성공가도를 거두자 본인의 회사를 차리고 사업을 여러개 확장하면서부터 몰락의 조짐이 보였는데 디바와 샤크라는 회사 사정이 기울어지자 소속사를 옮겼고 수십억을 들여 MC 해머를 참여시켜가며 만든 그룹 엑스라지의 실패, 그리고 최정철이 속한 5인조 보이그룹 Q.O.Q[] 또한 멤버들이 공연차 제주도를 방문하던 중 교통사고가 일어나는 바람에 팀이 와해되면서 시작되었다. 본인이 당시 엑스라지에 투자된 순수 금액만 17억 정도였다고 밝힌 바 있다. QOQ에게는 11억을 썼을 정도였다.
룰라2로 기획했던 R2는 없던일이되었다.
샤크라 역시 2집 '끝'의 히트에도 재정난으로 활동 후반부턴 부득이하게 신생 기획사로 매니지먼트를 위탁하게 됐고 아예 3집 앨범부턴 이곳과 계약해 발매하게 된다.[] 3집때부터 이상민이 손을 뗐다고 알려지기도 했는데 그건 아니고 3집 타이틀 곡 '돌아와'의 작사가는 이상민이다. 하지만 아직 빙산의 일각. 돌이킬 수 없는 실패의 연속으로 회사는 상상조차 못 해본 부도를 맞게 된다. 뿔뿔이 흩어진 위의 팀들 역시 하락세를 극복치 못하고 해체되고 만다.
이 와중에 이상민은 외식 사업에 눈을 돌려, 2004년 이종격투기와 트랜스젠더 쇼, 치어리더 쇼, 디제잉, 라이브 공연, 서빙걸 패션쇼 등을 보며 룰렛과 슬롯머신, 블랙잭, 포켓볼 외 수많은 보드게임 등을 즐기며 식사를 할 수 있는 레스토랑 김미파이브를 개관하게 된다. 1,000여 평의 공간에 1,200명이 입장 가능한 레스토랑 김미파이브는 127억이 투자된, 종전에 볼 수 없었던 대형 레스토랑이었다. 그러나 리노베이션 단계에서 주주들 간의 의견 충돌이 발생하면서[] 이상민은 1호점에서 나왔고, 얼마 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연락을 받아 2호점을 차리는 계약까지 성사시킨다. 그러나 손을 뗀 1호점에서 격투 경기 중 선수 사망 사고가 발생하고, 결국 김미파이브는 문을 닫고 성사됐던 2호점 계약까지 파기된다. 그리고 비록 손을 뗐지만, 김미파이브의 얼굴이었던 이상민은 이 일을 통해 적지 않은 피해 보상금을 지불하게 되며, 경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기도 했다. 음반 사업과 외식 사업의 실패가 연달아 이상민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2005년 11월 2일 최종 부도처리 되고, 그렇게 그는 69억 8천만 원이라는 엄청난 빚더미에 앉게 되고, 빚쟁이들에게 쫓기며[] 20여 일을 차 안에서 이온음료만 마시고 버텨야 되는 그런 나날들을 보냈다. 불과 몇년 전까지 현금 48억을 손에 쥐고 있던 사람의 이야기다. 참고로 이 때 JYP 엔터테인먼트의 회사 가치가 9억이다.
참고로 이제는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가 되었지만, 이상민의 레스토랑 '김미파이브'는 단순히 요식업에다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접목한 정도가 아니라, 종합 격투기가 국내에 소개는 되었지만 아직까지 토종 격투기 대회는 미미하던 시절에 국내 토종 종합격투기 대회의 초석을 다지는 뿌리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사업이다. 실제로, 국내의 1세대 격투기 선수들 중에서는 김미파이브에서 데뷔한 선수들이 많이 있다. 더욱이 정우성 이 출연했던 모 휴대전화 광고도 이곳에서 촬영될 정도였다.
백 명이 넘는 선수가 출전했으며, 천여 경기 이상이 치러졌다고 한다. 실제로 올드 격투기 팬들은 아직도 김미파이브를 기억하고 있고, 국내 종합 격투기가 본격적으로 태동할 때 김미파이브 전적을 커리어로 걸고 데뷔, 출전한 선수도 상당히 많았다. 당시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던 김미파이브가 실패하지 않았다면, 단순히 이상민이 몰락하지 않는 것을 떠나 대한민국 토종 종합 격투기 산업의 판도가 뒤바뀌었을 것이다. 본인의 흑역사 속에서도, 본업인 음악이 아닌 타 분야에서도 이 정도의 흔적을 남긴 것을 생각해보면, 사업적 센스는 확실히 대단했지만 안타깝게도 수완이 뒷받침을 못해줬다고 할 수 있다.
조금 위로를 하자면 불과 3년 뒤 불어닥칠 세계금융위기를 두고 더 크게 사업을 벌렸더라면 아예 재기 불가능한 타격, 목숨이 위험할 타격을 입게 됐을지 모른다. 그나마 거기서 끝난 것이 사업을 여기저기 벌려놓은 입장에서는 차라리 다행이랄까. 미국과 유럽에선 물경 수조 원의 자산가도 위기에 몰려 자살했다는 흉흉한 보도도 있었던 때였다
이상민 암흑기와 도박사이트 운영
2004년, 오랜 기간 연인 사이였던 이혜영과 결혼했지만, 채 2년이 지나기 전 이혼하였다. 서울지방경찰청에 이혜영이 제출한 고소장에 따르면, 이상민이 결혼 전인 2004년 초부터 2005년 8월 이혼하기까지 22억여 원을 가로챘었으며, 결혼 전 모바일 화보용으로 누드 사진을 찍을 것을 이상민으로부터 강요당했다고 한다.
이상민이 계약금과 이익금을 가로채고 이혜영의 명의로 승용차를 구입한 후 할부금을 상환하지 않아 피해를 입힌 것은 물론, 이상민이 이혜영의 명의로 차용증서를 쓰거나 이혜영과의 친분 관계가 있는 제3자에게 자금을 빌리는 등의 형태로 이혜영에게 피해를 끼쳤다는 주장도 덧붙여졌다. 하지만, 누드 사진을 찍으라고 강요했다던 주장과 다르게 그 당시에는 이상민의 사업이 굉장히 잘 나가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이혜영 본인도 "강요한 것이 아니다" 라고 직접 해명하였다. 아마도 기자들이 언론플레이로 거짓말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혜영 측 변호사가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공문서 위조 및 위장 이혼이라는 누명과 이혜영 본인은 알지 못했던 18억 원의 민사 및 채무 독촉, 사기 혐의로 형사 고소가 들어와 법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소를 결정한 것이며 이 부분만 확실해진다면 고소를 취하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이에 부합하듯, 이상민이 기자 회견을 통해 고소 내용에 대해 자세한 해명과 함께 모든 채무는 자신이 갚을 것이란 뜻을 밝힌 후, 이혜영 측은 고소를 취하했고, 후에 김수미의 《쇼킹》에서 이상민은 이혜영과 관련된 모든 채무를 이자까지 확실히 모두 갚았음을 밝혔다. 그 외의 채무는 현재까지도 여전히 갚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여담으로 이 기자회견 당시 이상민의 지인인 최민수도 바이크 라이더 옷차림으로 참석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최민수는 그게 이상민의 기자회견인 줄도 모르고 왔다가 얼떨결에 참석한 형태였다고.
2010년,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 및 사기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당시 경찰의 수사 발표 내용에 따르면, 이상민은 2006년 5월 말부터 7월까지 전국에 80여 개 가맹점을 둔 인터넷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며, 도박 사이트 수익금 54억 원 중 2억 1000만 원을 배당받았다고 한다. 이후 재판을 받게 되었고, 1심 법원은 무죄 판결을 내렸지만, 2심 법원은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 사회 봉사 160시간과 추징금 2억 1000만 원을 선고하였다. 당시 2심 재판부는 “경찰 수사 단계에서 특별히 거짓을 얘기할 이유가 없다고 봤으며, 당시 수집된 이 씨 등의 범행에 맞는 증거를 믿는 것이 합리적이라 판단했다”고 밝혔다.
3심(대법원)까지 상고를 했으나 기각되어 2심 재판으로 판결이 확정되었다. 이 일로 지상파 방송에서 출연정지 처분을 받았다. 잇따라 룰라의 신정환, 고영욱도 역시 도박, 성폭행으로 같은 길을 걸었다.
후에 이상민은 tvN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에 출연하여 유죄 판결을 받은 것에 대해 도박장 운영자는 자신이 아니라 매형이었다고 주장, 억울함을 토로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현행법이 없어 불법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사업을 벌인 매형이 자신에게 생활비로 돈을 보내준 것'과 '매형이 동업자와의 수입 배분이 미심쩍어 전산을 확인해달라 요청하여 전산 센터를 방문한 것', 이 두 가지 사안이 왜곡된 것이라고 한다. 또한 1심 선고 후 2심 재판 도중 매형이 사망하여, 자신이 무죄임을 증명하지 못해 유죄가 나오게 되었다고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이는 법적으로 논리 있는 주장은 아니다. 형사 재판에서 입증 책임은 피고인이 아니라 검찰 측에 있다. 즉 피고인은 무죄 추정을 적용받기 때문에, 피고인은 자신이 무죄임을 증명할 책임이 없고, 검찰 측에서 피고인이 유죄임을 증명해야 한다. 이상민은 자신이 무죄임을 증명하지 못해 유죄가 나왔다며 억울해 했지만, 피고인이 자신이 무죄임을 증명하지 못했다고 유죄 판결을 내리는 형사 재판은 없다. 유죄 판결이 나왔다는 것은, 법원 측에서는 도박장 운영자가 이상민이라는 사실을 검찰이 충분히 입증했다고 판단했단 의미다.
다만 무죄추정의 원칙하에서라도 본인이 무죄임을 증명할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원고인 검찰 측이 유죄의 증거와 증언 등을 근거로 제시하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 반박할 만한 증거 혹은 증언을 확보, 제시해야 하는 것은 온전히 피고의 몫. 사망한 이상민의 매형은 본인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줄 수 있을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상민의 위 발언은 무죄 추정의 원칙에 의거한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한 채 단지 억울함을 표명하며 나온 것일 가능성이 크다. 해당 발언의 법적, 논리적 타당성은 진실과는 별개의 사안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진실이 될 만한 세 가지 경우의 수는 첫째, 유죄 판결이 억울하다는 이상민의 주장처럼 정말 이상민이 도박장 운영자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것. 즉 법원이 오판한 것일 수도 있다. 둘째, 반대로 이상민이 유죄 판결을 받았음에도 이미지 세탁을 위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셋째, 법적으로 볼 때 이상민은 도박장 운영자가 맞지만, 이상민은 자신이 도박장 운영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오해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법적 결과물은 담당 재판부가 '도박장 운영자 = 이상민'이라는 사실이 검찰이 제출한 증거에 의해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충분히 증명됐다고 판단하여 내린 유죄 판결이다. 형사 소송법 상 형사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내리기 위해서는, 재판부가 보기에 피고인의 범죄 사실이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이 되어야만 한다. []
상민이 갚아나가는 돈 중 2억 3천만은 그의 빚이 아니다. 미운 우리 새끼에서 밝혀졌는데 상민이 이사님이라고 부르는 한 채권자가 말하길 과거 상민의 회사 임원 중 한 사람이 상민의 이름을 걸고 그 이사님에게 투자를 받아냈다. 그 이사님이 전 재산을 투자해줬는데 그 사람이 받은 돈을 들고 해외로 날아간 것. 전 재산을 사기당한 그 이사님이 지푸라기라도 잡을 심정으로 상민을 찾아가자 상민이 책임져주겠다며 그 2억 3천만도 자신의 채무에 포함시켰다. 그때 당시 그 이사님의 얼굴을 보니 이대로 보냈다간 극단적인 선택을 할 상태임을 눈치를 채고 책임을 져주겠다고 한 것이다.
이렇듯 이상민은 2000년대 중반부터 약 10년간 최악의 내리막길을 걷는다. 주위 사람들이 그 곁을 떠나가기도 했고, 뉴스 사회면에 자주 출연하면서 안 좋은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그의 발목을 잡고 있는 엄청난 채무로 금전적 고통을 안고 살게 되었다. 하지만 결코 비참한 채로 그의 인생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의 모습 그대로를 진실하게 드러내며 다시 대중 앞에 서게 된다.
이상민 전과
형법 247조(도박장소 등 개설) 위반: 2010. 05. 13 선고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 추징금 2억 1000만 원, 사회봉사 160시간
이상민 자숙 이후 예능으로 다시 우뚝서게 되다
힘겹게 채무를 갚아가며 방송계와 등진 채 살아가던 2012년, 엠넷의 모큐멘터리 예능 프로그램 《음악의 신》의 주인공으로 예능에 입문했다. 예능에 잘 나가지 않고 소속 가수들을 내보내곤 하던 과거의 살짝 시건방졌던 성격 그대로, 프로그램 출연을 한사코 고사하다가 '《음악의 신》은 이상민을 망가뜨리는 프로다' 라는 말에 흥미를 느껴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다.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이상민이라는 사람은 힘든 세월 동안 술로 밤을 지새워 살이 엄청나게 붙은 모습이었다. LSM 엔터테인먼트라는 이름의 연예 기획사를 차린다는 내용인데, 그의 과거가 과거인 만큼 동료 연예인들의 멸시, 원망, 동정을 한 몸에 받는다. 그 자세한 내용은 《음악의 신》의 게스트 항목 참조. 한창 잘 나가다 같이 진행하던 고영욱의 미성년자 성폭행 추문 때문에 위태위태했으나, 고영욱이란 치부를 솔직히 드러냄으로써 위기관리의 신이란 평가를 받으며,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했다. 프로그램 특유의 개그 코드가 인기를 얻으면서, 처음 계획인 12회보다 1회 연장한 13회를 끝으로 종영했다. 원래는 최대 4회까지 연장하여 최종 16회까지 방영하는 것을 검토했으나 아쉽게도 무산되었다. 이후 CJ E&M 채널들을 위주로 《더 벙커》 같은 여러 케이블 프로그램들에 지속적으로 출연하며 나름대로 방송에 잘 복귀한 사례.
2013년 1월 11일부터 2013년 5월 27일까지 JTBC에서 김구라, 이훈, 장성규와 함께 《남자의 그 물건》도 진행하였었다.
비슷한 기간인 2013년 4월 26일부터 2013년 7월 12일까지 tvN 《더 지니어스:게임의 법칙》에 출연, 좋은 활약을 보여줬으나 아쉽게도 마지막 회를 앞두고 탈락했다.
2013년 12월 7일 첫 방송이 예정된 시즌2 《더 지니어스:룰 브레이커》에도 출연, 메인 매치 9회 우승의 위엄을 달성과 함께, 결승전에서도 임요환을 꺾고 드디어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탈락한 이두희를 앞에 두고 훈계질을 하는 장면으로 쌓아둔 이미지를 다시 깎아먹기도 했다. 지나친 정치질에 의존한 플레이는 갓상민과 혐상민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연출해냈다.
그리고 더 지니어스의 왕중왕전, 《그랜드 파이널》에 홍진호, 장동민과 함께 출연하여 기대를 모았다. 1, 2화를 연달아 우승하며 메인 매치 10 연승의 전설을 기록했으나, 3회전 탈락의 고배를 마셔 더 지니어스의 커리어를 마무리 지었다. 인지도 면에서 이상민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프로그램은 누가 뭐래도 《더 지니어스》였다.
한편 같은 시기에 방영하는 MBC every1의 오락 프로그램인 《우리집에 연예인이 산다》에 출연, 싱글 맘 가정의 아이들을 돌봐주면서 자상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헤어지는 날 아이가 통곡하며 가지 말라고 애원하는 통에 뜨거운 눈물을 보였는데, 이런 훈훈, 애잔함은 《더 지니어스》에서의 그 무서운 정치 캐릭터와 극명하게 판이하다. 천의 얼굴로 불릴 만하다 하겠다.
2014년 11월 22일자 《SNL》에 출연하여, 자신의 등 문신과 관련된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상민 본인도 이 이야기를 하며 힘겹게 감정을 억누르는 모습을 보였다.
2016년 2월 19일 《음악의 신 2》 촬영이 확정됐다. 작은 팬덤의 이상민 팬들은 잔치 분위기. 사실 《음악의 신》을 통해 성공적으로 재기한 그였기에, 프로그램 후속편에 대한 애착도 남다를 것이다. 공개된 바에 따르면, 《음악의 신 2》는 탁재훈의 성공적인 복귀를 중점적으로 다룰 예정인 듯하다. 헌데 그 속사정을 살펴보면 그러한 결정은 보통 도량 넓은 게 아니다. 시즌 1 당시, 이상민은 탁재훈에게 원래 고영욱의 포지션을 기대했다. 하지만 탁재훈은 이상민과 거리를 두고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으려는 컨셉으로 나왔었는데, 컨셉이기 이전에, 탁재훈이 한 달째 이상민의 전화를 받지 않고 잠수를 탄 것은 사실로 보인다.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에서 인증된 바 있다. 또 2012년 7월 9일자 《비틀즈코드》를 보면, 탁재훈이 이상민에게 왜 동료 가수의 전화를 피하냐고 묻자 이상민이 "형도 안 받았잖아요, 내 전화" 라고 대꾸하기도 했다.
범법으로 제명당한 연예인의 복귀작에 고정 출연하는 것이 부담이 될 수도 있고, 인기 몰이에 실패할 것이라 여길 수도 있었을 테지만, 이상민도 어느 정도 서운함은 느꼈을 터. 그런 탁재훈이 도박으로 3년을 쉬고 복귀를 염원하자, 이상민은 선뜻 자신의 모태와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시키고 주연 포지션도 사실상 양보한 것이다. 그야말로 이상민은 컨츄리꼬꼬와 《음악의 신》이라는 카드로 탁재훈의 부활을 두 번씩이나 지원한 셈이다. 한편, 《음악의 신》 시즌1 방송 중 이상민이 매니저 백영광에게, '토크쇼에서 탁재훈의 치부를 다 드러내 3년을 쉬게 만들 것'이라고 말하자 백영광이, '《음악의 신》 시즌 2 그거 탁재훈이 하면 되겠네' 라는 예언 돋는 발언을 한 바 있다.
그리고 2016년 3월 30일, 시즌 2가 첫 선을 보였다. 처음에는 몇 개의 짧은 클립들을 네이버TV에 선 공개한 후 반응을 볼 예정이라고 한다. 이후 온라인 본편 8회 전부가 방영되었고 예정했던 목표치에는 달하지 못했지만, 반응이 좋아 정규 편성이 확정되었다. 5월 5일 첫 방송을 시작해 7월 7일 종영. 시즌 1과 같은 안습함과 절실함이 떨어진다는 비판 속에서도, 레전드 춤신춤왕을 탄생시키고 브로스 2기를 출범시키는 등의 활약으로 이상민은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갔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시즌 2 최고의 결과물은 역시 이상민 자신이 프로듀싱한 걸그룹 C.I.V.A다. 이는 시즌1의 연습생 이수민과 프로듀스 101 출신 김소희, 윤채경이 소속된 걸그룹이다. C.I.V.A라는 작명만으로 화제가 되었고 이들이 정말로 데뷔하게 될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결국 이상민의 프르듀싱 하에 디바의 《왜 불러》를 리메이크, 《엠카》에서의 무대까지 서게 되는 등 큰 인기를 누렸다. C.I.V.A는 배우로서 긴 공백을 겪고 잠적하던 이수민에게도, 아이오아이의 최종 멤버로 데뷔하는 데 실패한 기획사 연습생 김소희와 윤채경에게도 실로 꿈같은 활동이었다. 이상민 역시 예능인으로서의 활약 도중 정식 프로듀서로서의 첫 컴백이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프로듀싱이었다 할 수 있다.
2016년 4월 11일, 18일 방영분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동료 가수인 김원준과 출연했다. 흑역사를 거론하면서, 김원준의 아내 될 사람이 법조인이어서 김원준 결혼식을 가기가 조금 겁나고, 공소시효 등 다양한 법조계열 언어도 무척 와 닿는다고. 본인의 냉장고는 요리사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다양하고 클래식한 재료들로 가득했다. 야매로 요리하는 스킬과 경험이 상당한 듯하여, 프로그램 내 아마추어 요리사인 김풍, 홍석천의 자리를 위협하는 요도남(요리하는 도시 남자) 기믹을 얻었다.
2016년 4월 25일, KBS 출연금지 명단에서 해제되었고, 《배틀 트립》과 《안녕하세요》에 출연하면서 사실상 지상파 방송에서 이상민을 볼 수 있게 될 전망. # 《개그콘서트》, 《해피투게더》, 《1대100》, 《열린음악회》, 《불후의 명곡 2》 등 KBS 프로그램에 연달아 출연하였다. 《열린음악회》 출연 당시 얼마나 감격했으면, 관객들에게 큰절을 올렸다. 본인과 팬들 모두 감동의 순간.
2016년 6월 12일자 《복면가왕》에서 합리적 이성 아폴론이라는 가명으로 나오면서 MBC 출연 금지 해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으며, 이로써 모든 지상파 방송 금지가 해제되었다. 지난 5월에 전격적으로 해제되었다고 하는데, 기자들도 몰랐는지 《복면가왕》 참가 이후 기사를 쏟아냈다.
해당 방송에서는 1라운드 전설의 포수 백두산과 듀엣 곡 《챔피언》을 불렀으며 5표 차 접전을 벌였다. 누가 어느 부분을 불렀는지를 모르는 혼선이 벌어지면서 2절 때는 합창으로 변했다. 이 때문에 판정단들이 "누가 어느 파트를 불렀는지 모르겠다"며 누굴 뽑아야 할지 몰라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일어났다.
개인기 시간 때에는 본인의 장기를 간지럼 참기라고 말하자, 이에 자극을 받은 김구라가 친히 간지럼을 태우러 무대까지 올라왔는데 여유롭게 버텨내는 금강불괴지체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김구라가 말하는 방법이 진짜 효과가 있는지 김기리에게 실험해보자 0.41초 만에 쓰러졌고, 백두산은 0.39초 만에 쓰러졌다.
그 뒤 본인의 애창곡 《내 생애 봄날은》을 부르며 정체를 공개했으며 곡 자체의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이상민이 워낙 다사다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기에 더욱 공감이 가고 감동적이였다는 평이 지배적. 특히 후렴구 자막의 랩이 아닌 노래로, 그룹이 아닌 솔로로.라는 자막에서 울컥했다는 시청자들도 많았다. 참고로 가면 이름에서 복선이 있었는데, 그리스 로마 신화의 아폴론은 음악의 신이기 때문. 그래서인지 가면 생김새가 그리스 석고상이랑 똑같이 생겨서 "본인 얼굴을 그대로 본떴다", "가면이 아니라 얼굴에 흰 칠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2016년 7월 4일, 《냉장고를 부탁해》 방송에 스페셜 셰프로 출연하였다. 처음에 정체를 공개하지 않고, 한식, 중식, 일식, 태국 음식에 야매 요리까지 다 되는, 9살부터 요리를 시작했다는 소개와 함께 복면을 쓰고 출연했는데, 정체가 드러나자 셰프들이 어이없어 하는 장면이 나왔다. 첫 상대는 김풍으로 결정. 자세한 사항은 이상민(룰라)/냉장고를 부탁해 문서 참고.
2016년 8월 3일, 7년 만에 《라디오 스타》에 출연했다. 2009년 출연 당시 레전드 에피소드 '이애기'에 관한 에피소드가 다시 언급되었으며, 온갖 세상 풍파를 다 겪어본 연예인이라 그런지, 후배 연예인들에게 온갖 상담을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프로그램 막판에는 같이 출연했던 경리, 솔비와 함께 《날개 잃은 천사》를 불렀고, 과거 남성 멤버들의 파트를 모두 소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6년 12월 22일, 《해피투게더》에 출연하여 곧 빚 청산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공개했다! 하지만 하술(下述)할 인터뷰를 보면 그냥 한 말인듯.
2017년 2월 1일, 좌초된 줄만 알았던 브로스의 컴백 티져를 본인의 SNS에 업로드하!였으나… 아쉽게도 광고를 위한 스페셜 기획이었다고.
2017년 3월 12일, 《마리텔》 녹화에 참여했다. 하이라이트, 구구단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2017년 8월초 화보 촬영 직후 인터뷰에 따르면, 최근 일이 많아져 2년 안으로 빚 청산을 알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발언했다. # 그리고 이걸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런 기사까지 나왔다.
2018년 2월 9일, 솔로곡 <길 따라 블루스> 의 티저가 업로드되었다.[14] 그리고 이틀 후인 2월 11일 18시, 정식 음원과 뮤직비디오, 스페셜 클립을 공개했다. 티저와 뮤직비디오는 박현철 감독의 단편영화 <개들의 침묵> 과의 콜라보.
2019년 11월 10일 빚을 다 갚진 못했지만, 신용 회복으로 은행제한이 풀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실상 개인빚은 당분간 안받아도 문제가 없다는 수준까지 올라왔다는 것이고 남은건 가족 명의의 빚 뿐이라는 소식도 있다. 은행거래가 가능하게 되면 변제에도 굉장히 유리하니 빚 없는 이상민의 청신호가 켜진셈.
하지만 빚쟁이 생활을 운운하면서 호화로운 집을 장만한다던가와 같은 모습이 TV에 계속 비친 탓인지 역풍이 불기 시작했다. 2022년 2월 말 미운 우리 새끼 방영분에서 "빚이 16억으로 늘어서 고통받고 있다" 라고 언급한 것과는 달리, 그가 이사를 간 장소가 월세 200만원의 복층 주택이었음이 확인되며 구설을 빚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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