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라가 잠정 해체한 1997년, 채리나를 중심으로 LA 출신 비키(본명 김가영)와 뉴욕 출신의 막내 지니(본명 김진)가 합류해 결성된 여성 3인조 그룹이다. 룰라 해체 이후 기존 소속사에 유일하게 잔류했던 채리나를 회사 측에서는 솔로로 데뷔시킬 예정이었지만, 채리나는 이를 고사하고 본인이 평소 동경하던 TLC 같은 그룹을 만들고 싶다는 일념 하에 디바를 결성했다.
디바 특징
멤버 두 명을 미국에서 데리고 온 것도 채리나였고 그룹의 리더, 메인보컬, 메인댄서였기에 다방면으로 역량이 많았고, 당시 채리나의 음악적 파트너였던 윤건[]이 내주던 시너지 효과 또한 빛을 발했다. 이후 99년에 채리나가 룰라 재결합으로 탈퇴하고, 2집 활동 이후 영주권 문제로 탈퇴했던 지니를 대신해 3집에 합류한 이민경, 그리고 계속 남아 있던 비키의 3인조로 2000년부터 새로운 체제를 구축한다.
3집은 표면적으로는 대만 활동으로 인해 짧게 마감되었고 이후 지니가 다시 돌아와 브로스 활동시엔 디바 4명이 모두 한무대에 서기도 한다. 4집 준비를 하면서 룰라 활동과 개인 활동을 하기 위하여 팀에서 탈퇴한 채리나로 인해 남은 멤버들은 생활고를 겪기도 했다고...[ 다만 채리나는 당시 위암 투병과 더불어 개인활동 조차 쉽지 않았던 90년대 말에 룰라와 디바 사이에서 심적인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서로의 상황이 다 있었고, 나이도 어렸기에 결국 헤어져야 했던 것.
채리나가 이끌던 1~3집 시절의 디바는 10대 소녀들이 가지고 있는 발랄함과 채리나가 지향했던 힙합 패션이 적절히 믹스되어 말괄량이 같은 건강한 걸스힙합 색채가 지배적이었다면, 새롭게 주축된 이민경, 비키, 지니 체제 당시에는 트립합과 랩을 주무기로 한 4집이 크게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댄스 장르와 스페니쉬 풍의 발라드, 소울 등을 넘나들며 다양한 장르 변화 속에서 당당하고 멋있는 주도적인 여성상의 이미지를 주로 보여주었다. 오히려 디바가 센 그룹으로 회자되는 것에 대해 음악적인 반증을 들어보자면 채리나가 있던 시절보다 4집 이후의 디바 음악이 더 센언니 노선에 적합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정규 앨범을 많이 낸 걸그룹으로, 총 8장의 음반을 발표했다. 멤버 교체도 많지 않았고[] 활동기간도 1997~2005년으로 상당히 롱런한 팀이다.
2세대 걸그룹들이 디바의 곡들을 무대에서 많이 선보였었다. 카라의 왜불러, 씨스타의 이겨울에, 브아걸의 이겨울에 등 디바의 대표곡들은 후배 걸그룹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당시의 젊은 여성 가수들처럼 청순과 섹시로 이분되는 컨셉이 아닌, 걸스힙합 컨셉을 선보여서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이 팀은 노래들도 노래들이지만 무서운 걸그룹으로도 유명했던 팀이었다. 안 그래도 힙합이라는 (당시 기준으로) 거칠고 생소한 컨셉을 밀던 팀이었는데, 폭행 사건에 연루되는 등의 일들까지 터뜨리면서 현재도 디바하면 센언니 걸그룹으로 여겨진다.
여담이지만 몇몇 인터넷 상에 기재된 디바의 데뷔일은 1997년 8월 29일이지만 이것은 잘못된 날짜이고, 팬덤과 당시 소속사에서 지정했던 공식적인 데뷔일은 1997년 9월 5일이다. 이 날 충전 100%쇼에서 첫 방송 데뷔를 가졌다
디바 사건사고
한편 이 시기에 몇 가지 사건에 휘말리면서 활동 기간 내내 거칠다는 이미지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일명 여자 DJ DOC.[] 본인들도 우스갯소리로 자학성 멘트 삼아 이야기 하기도 한다.
첫 사건은 2000년 지니가 길거리에서 일반인과 폭행 시비에 연루된 사건으로, 2년 여의 긴 법정공방 끝에 지니가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지만 재판부가 지니를 유명인이고 본인의 징역 회피 의사가 없는 것으로 판단해 구속하진 않았다.
두 번째 사건은 팀내 왕따 사건. 비키는 지니를 데뷔 전부터 왕따시켜 지니가 데뷔 앨범 준비 도중 잠적해버리기도 했고, 데뷔 후에도 왕따를 심하게 했다고 스스로 밝혔었다. 이후 지니는 2집 활동을 끝낸 뒤 비자 문제로 탈퇴했고[] 이민경이 3집부터 합류했으며, 3집 활동 종료 후 채리나가 탈퇴하고 브로스에 합류하며 한국에 돌아온 지니가 재합류하게 된다. 2010년 현장토크쇼 TAXI에 나와 해당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풀기도 하였다. 지금 와서는 당사자 모두 그냥 예전의 투닥거림 정도로 여기는 듯. 이후 지니와 비키는 자매같은 사이로 발전하여 아직도 막역한 사이로 지낸다고 한다.
세 번째 사건은 베이비복스와의 충돌 사건. 2001년 당시 음악 방송 리허설 중에 디바가 관객석을 가로 질러 대기실로 가던 와중 자리에 앉아있던 간미연이 졸고 있는 것을 자신들에게 인사를 대충하는 것으로 오해해 가던 길을 멈추고 비키가 간미연의 귀에 대고 '인사를 할거면 제대로 하던가, 아님 하지 말던가'라고 대뜸 경고를 줬고 이때 간미연은 화장실로 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비키는 당연히 자신이 나이가 더 많고 선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실 베이비복스가 디바보다 3달 먼저 데뷔한 선배였으며, 베이비복스의 원년멤버 김이지와 이희진은 비키와 지니보다 데뷔가 빠르고, 간미연은 중간 합류라 비키와 지니보다 데뷔가 늦긴 하지만 가요계에서는 그룹 데뷔를 원칙으로 선후배를 나눈다. 비키와 지니가 모두 20대에 데뷔를 하고 상대적으로 연령대가 낮았던 베이비복스를 단순히 후배로 생각했을수도... []
다른 멤버들은 이 사건당시 자리에 없었고 이후 지금 상황에 대해 판단해본 결과 원년멤버 채리나가 있을땐 디바가 선배지만 탈퇴 후인 디바는 분명 베이비복스가 선배가 된 상황이고 (참고로 이것도 따져보면, 디바 탈퇴 멤버 채리나는 1995년 룰라 데뷔, 베이비복스 탈퇴 멤버 중 이가이는 1988년 세또래 데뷔이다.) 화가난 멤버 심은진은 채리나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해고 이해해야 하는지를 따져물었지만 두그룹 다 이해관계가 얽혀있던 채리나는 직접적인 해결역할을 하지 못했고 생각에 변화가 없던 베이비복스는 이후 디바와 같은 공간을 스쳐가는 일이 있어도 절대 인사를하지 않았다. 이로인해 2002년 KMTV 시상식에서는 디바가 베이비복스와 같이 무대를 하기 싫다며 방송을 펑크 내고, 당시 디바가 케이블 방송에 나와 실명 거론을 하며 '한 번만 더 인사를 안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공개 경고를 하기도 했다. 방송에는 묵음 처리가 됐지만. 이후 2012년 쯤에, 비키와 지니는 김이지, 이희진과 함께 강심장에 출연해 오해를 풀었다.
하지만 이 사건의 반전이 있었으니... 방송 펑크 사건은 당시 기자들이 설레발식으로 낸 오보였다는 것. 비키가 2016년 호박씨에 출연해 밝혔다. 실제로는 그 날 무대에서 디바가 펑크를 내려 했던 게 베이비복스와 불화가 아니라 출연 가수들 중 본인들만 상을 받지 못해서 방송을 못하겠다고 선언했던 것인데, 그 자리에서 '베이비복스도 받는 상을 왜 우리도 못 받냐'라는 발언에 기자들이 베이비복스라는 단어만 집중한 나머지 결국 잘못된 기사를 내 버린 것이다. 그 당시 베이비복스와 냉랭한 관계는 인정했지만, 직접적으로 싸운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날 방송에서 비키는 같은 미용실을 다니고 있던 베이비복스가 먼저 자신들에게 와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들을 견제하고 비난했다는 것인데, 사실상 베이비복스가 디바보다 선배였고, 베이비복스 쪽이 멤버 교체가 있었다 해도, 김이지와 이희진은 원년 멤버이며 나이 차이가 고작 1~2살 밖에 나지 않았다는..
디바 평가
이런 저런 구설수에 많이 올랐어도 디바는 걸그룹 역사에서 꽤 중요한 그룹으로 평가받을 만한 팀이라고 할 수 있다. 데뷔 자체는 베이비복스보다 늦었지만 당시 베이비복스 1집은 흥행에 실패한 상황이었고 이들보다 2달가량 늦게 데뷔한 디바의 경우에는 데뷔하자 마자 채리나의 후광과 탁월한 곡 선정으로 여성그룹이라는 개념 자체가 희미했던 90년대 후반에 가장 먼저 여성 그룹으로서 신호탄을 터뜨린 그룹이었다.
그 이후 S.E.S, 핑클 등이 등장하고 베이비복스가 2집부터 상승곡선을 달리고 나서부터 이들보다는 조금 뒤로 밀린 느낌이긴 했지만 당시에는 드물었던 걸스 힙합 장르와 랩 장르를 선보여 여성스러움과 귀여움이 득세하던 여성그룹 시장에 독보적인 컨셉으로 꾸준히 이슈를 몰고 다닌 그룹이었다. 그래서 아무래도 남팬보다는 여학생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2000년대 후반 등장한 2NE1의 시조격되는 그룹으로 평가받기도 했으며 실제로 2NE1 자체도 음악 관계자들에게 우리나라에도 TLC같은 그룹이 나온다며 주목을 받은 바 있는데, 원조 TLC를 표방한 그룹으로서 당시 유행하던 힙합 패션과 여성 힙합 그룹의 1세대라고 볼 수 있다.
실력적으로 인상 깊은 평가를 받지는 않았지만 립싱크가 득세하던 시절 라이브를 자주 선보인 그룹이기도 했다. 사실 진짜로 실력이 없었다기 보다는 저평가된 측면이 더 크다. 노래들이 당시나 지금 기준으로 봐도 난해하다 싶을 정도로 키가 높았고,[] 안무 역시 단체로 옆덤블링을 한다거나 하는 등 지금봐도 꽤 격렬한 동작의 안무들이 많았다. 애초에 채리나는 룰라 시절에도 탈퇴 이전 김지현이 담당하던 고음을 완벽히 소화하면서 댄스 라이브도 손꼽힐 정도로 잘하는 가창력의 소유자였고, 지니도 전문적인 트레이닝 없이 순수한 끼만 보고 캐스팅되던 90년대 댄스가수 기준으로는 라이브 소화 능력과 춤 실력 모두 나쁘지 않았다. 특히나 지니의 허스키보이스로 때려박는 랩핑은 좋은 평가를 받았었다. 3집 시절부터 활동한 이민경은 채리나를 잇는 메인보컬로 활약하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민경은 디바활동 이후 뮤지컬배우로도 활동했을만큼 가창력은 훌륭했다. 넷 중 실력적인 면에서 가장 비판을 받는 비키조차도 가창력은 좋은 소리를 못 들었으나 랩은 꽤나 준수하게 소화했다.
지니와 비키는 업타운 4집 game, 여성 블랙뮤직 뮤지션으로 구성된 gaiA 앨범, 김진표, 팀 등 다수의 앨범에 랩 피쳐링을 하기도 했다.
또 90년대 후반 2집으로 한창 잘 나가던 시기에 대만에 진출해 꽤 선풍적인 인기를 누린 걸로도 유명했다. 당시 S.E.S 등과 함께 대만 4대 천왕 콘서트에 참가하기도 했으며 국내에서는 드물었던 영어 음반을 출반해 전략적으로 공략하기도 했다. 하지만 채리나 탈퇴 이후에는 대만 시장에는 손을 놓았으며 이후 국내 활동에만 집중했다. 대만에서 한국 걸그룹 인기의 시초가 디바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디바가 대만 프로모션을 갈때면 수십개의 언론매체에서 파파라치처럼 따라다니며 특집 프로그램을 편성할 정도였다.
디바 소속사 변화
디바를 비롯한 이상민 프로듀스 하에 데뷔한 그룹들(특히 샤크라[])이 소속사를 자주 옮겨다녀 제대로 된 정보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짚고 넘어가자면 디바는 룰라의 소속사 서울 인 프로덕션에서 데뷔했다.[] 그리고 계약이 종료되자 이상민이 대표 프로듀서로 있고 김균민[]이 대표이사를 맡은 A&B 엔터테인먼트로 이적한다. 이것이 첫 이적.
4집 활동 이후 A&B는 코요태, 파파야가 소속돼있던 원섬미디어[]와 UN, 임창정이 소속돼있던 천일기획을 흡수하고 잼(Jam) 엔터테인먼트로 사명을 바꾼 뒤 디바의 6집까지 제작했다.[] 잼 엔터와 계약이 만료된 뒤 2003년에 BM 뮤직(BM 기획)으로 두번째 이적을 해 2006년 5월까지 가는 계약을 맺고 7집, 8집까지 냈다. 그 이후에는 이민경이 재계약을 고사했고, 비키와 지니가 2인조로라도 활동하기 위해 1년간 국군방송과 행사를 하며 자금을 모았지만 지니가 뉴욕으로 돌아가면서 결국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06년 당시 BM 기획에서는 재계약을 제시한것으로 보이며 리더 비키는 해체보다 "따로 또 같이"를 원했지만 멤버 동생들이 각자의 길을 원해서 재계약을 포기하고 각자의 길을 가게 됐다.
비키는 2016년 호박씨에 출연했을 당시 "저희 계약 2번이나 옮겼어요"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는데 정확히 기억한 것이다. 디바는 활동 기간 동안 총 3개의 소속사에 몸을 담았으며, 두번째 소속사가 중간에 이름을 한 번 바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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