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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DOC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2. 7. 6.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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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4년 데뷔한 한국의 3인조 힙합 그룹.

 

맴버 구성

이하늘 - 리더, 랩
김창열 - 보컬
정재용 - 랩

 

특징

초창기에는 댄스 그룹으로 시작했으나, 현재는 힙합으로 그 성향이 바뀌었다. 뛰어난 곡들과 실력만큼이나 멤버들의 양아치 성향으로도 유명하다. 한 때 농담삼아 떠돌던 말이 "한국에서 제대로 된 갱스터 힙합하는 그룹은 DJ DOC가 유일하다."라고 했을 정도.

그들의 거친 이미지 때문에 오래 남지 못한 가장 아까운 이미지는 20세기 말에 가장 진보적인 메시지를 담은 음악을 대중매체에 공개적으로 발표했다는 것. 동성동본 결혼[], 직장 내 비정장(청바지) 착용[], 노년세대의 자기표현[], 교복의 정형화[] 문제 등 한국사회 내 고정관념들을 정면공격하였고, 그런 당대 가장 민감하던 소재를 진보적이고 유쾌한 가사와 신나는 리듬으로 풀어내는 곡들을 만들어 히트시켰던 상당한 뮤지션이다.

그들이 그런 곡들을 발표하고 나서 오래지 않아 수년 뒤에 그런 일들이 한국에서 상당부분 현실화되었기에 더욱 놀라운 부분. 그들이 그 곡들을 발표할 때만해도, 각 소재들에 대해 기성세대 뿐만 아니라 청년세대들조차 고정관념을 가지고 "그건 좀 그렇지 않냐"는 반응을 보이던 현실이었다.

멤버는 이하늘, 김창열, 정재용으로 세 명 모두 DJ 출신, 폭력전과자며 고등학교를 중퇴했고, 가정사가 좀 좋지 않다. 이하늘의 경우, 부친은 이하늘이 초등학교 2학년 때 낚시 도중 물에 빠진 친구를 구하러 갔다가 숨졌고, 이후 혼자가 된 모친은 재혼한 뒤 자녀들과 이별하면서 버림받아 할머니 슬하에서 자랐고, 김창열은 아버지가 1998년에, 어머니가 2000년에 차례차례 타계했으며, 정재용은 늦둥이 외아들로 14년 간 아버지 병간호를 했으나 결국 운명하였다.

원래 1집 때는 이하늘, 김창열, 박정환 라인업이었다가 박정환이 1집 활동 이후 탈퇴했고, 2집부터 빈 자리를 메꾸기 위해 정재용을 영입하여 현재까지 체제를 유지 중이다. 참고로 정재용과 김창열은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다.

정재용과 이하늘의 경우 데뷔 당시 업소 쪽에서는 최상급으로 평가받던 DJ 겸 댄서였고, 전 세대 댄서로 유명한 이주노, 박철우 등에게 미묘한 컴플렉스와 우월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는데 "그 형들은 춤만 추지만, 우리는 노래도 한다."[]라는 식이었다.

원래 DOC의 의미는 Dreams of Children이지만 당연히 현재의 모습과 심히 안 어울리고 기획사 소속일 때 붙은 억지 네이밍이다 보니 독립을 한 이후부터는 잘 언급하지 않는다.

데뷔 초에는 'DOC'를 '덕'이라고 읽었다가 박정환이 탈퇴한 2집때부터 DOC를 '디오씨'로 읽기 시작했고, '디제이 덕'과 '디제이 디오씨'를 병용하다가[] 4집의 '디오씨와 춤을'부터 디오씨라고만 발음하고 있다. 초창기 음악을 들으면 "디제이~ 덕!"이라고 음악에서 본인들이 분명히 외치고 있고 언론에도 그렇게 보도되었다. 왕년 주먹다짐으로 파출소 신세를 많이 지던 시절에 "가수 디제이 덕 맞죠?"라고 물어보는 순경의 질문에 "덕 아니고 디오씨거든요, 디 쩜 오 쩜 씨!"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도 있다. 또한 오리를 뜻하는 영단어 'duck'과 발음이 비슷해서 도날드 덕이나 동화 <미운 오리새끼>랑 뭔 관계가 있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단, 언론 보도는 98년도까지 계속 '디제이 덕'으로도 나갔다. 물론, 이게 편해서 아직도 '디제이 덕'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있다. 2010년대 중반으로 치면 EXID를 불러달라는 대로 '이엑스아이디'로 안 부르고 '엑시드'라고 부르는 식이긴 한데, DJ DOC는 초창기부터 본인들이 디제이 덕이라고 불렀다가 바뀌었으니 경우가 다르긴 하다.

2022년 현재는 다시 활동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보면 된다. 2021년에 이현배가 급사하면서 이하늘과 김창열 두 사람의 사이가 루비콘 강을 건넜다고 봐도 될 정도로 확 갈라섰기 때문

 

1집 활동

1992년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클럽 DJ로 활동 하던 이하늘은 철이와 미애로 유명했던 신철을 만나게 되었다. 이후 대구광역시의 클럽으로 옮겨 랩퍼로 유명한 박정환을 만나고 신철의 제안으로 서울에서 유명한 DJ였던 김창열까지 모여 1994년 2월 합숙훈련에 들어가 6월에 DJ DOC라는 그룹을 결성한 후, 9월에 1집을 내고 10월 초 KBS2 <토요일 7시가 좋다>를 통해 방송 무대에 데뷔했다.

11월 초부터 데뷔곡인 '슈퍼맨의 비애'가 지상파 가요 순위프로에서 10위 권에 랭크됐다. 특히 SBS <생방송 TV가요 20>에서는 1위 후보에 오르는가 하면, 신문에 기사가 날 정도로 반응이 괜찮았다. 나름 이 노래로 식혜음료 CF도 하나 따 내는 등[] 신인으로서의 행보는 순탄했다.[]

사실 1집 데뷔곡인 슈퍼맨의 비애는 우선 앞부분 반주부터가 왕년 인기 그룹이던 Creedence Clearwater Revival이 1969년에 발표한 Proud Mary 음악을 그대로 써먹었고 랩에서는 Tag Team이라는 2인조 흑인 그룹의 마이애미 베이스 넘버 <Whoomp!(There it is)>의 표절곡이며 활동 당시부터 이미 PC통신 네티즌들 사이에서 표절 의혹이 오르내렸고, MBC <시사매거진 2580> 1995년 2월 19일자 '표절과 창작사이(김형철 취재)'에서 가요계 표절을 다룰 때 두 노래를 같이 틀어주면서 표절 의혹이 있다고 제시했다.[] 이후 1집 시절을 흑역사 취급하면서 잘 언급하지 않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참고로 노래 제목을 후크로 연호하는 부분(슈퍼맨의 비애에서는 슈~퍼~맨~)이 유명해서 슈퍼맨의 비애를 몰라도 표절원곡 역시 유명하기 때문에 이쪽이든 저쪽이든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다 싶을 것이다. 이 후크는 간혹 샘플링으로도 쓰인다.

이외에도 알려지지 않은 앨범 수록곡으로 덩달이 시리즈가 있는데, 곡 자체는 특별할 것도 없이 통기타 솔로 잼에 랩만 읊은 거지만, 당시 유행하던 덩달이 유머 시리즈를 소재로 한 가사가 일품이다. '철이형 덩달이 시리즈 너무너무너무 썰렁 썰렁' '그 다음날 아침 덩달이는 꽁꽁 얼어죽었대'하는 후크도 포인트.

표절 논란 및 멤버 박정환의 탈퇴 등으로 이후 1집 활동 시절을 그룹 스스로도 흑역사화 하는 편이라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DOC 1집은 의외로 당시(90년대 초)의 나름 최신 미국 랩음악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당시 인기를 끌던 MC Hammer, Tag team, DJ Jazzy Jeff and the Fresh Prince등의 오마주가 곳곳에 숨어 있으며, 특히 Kriss Kross 1집 Totally Krossed Out의 복제나 다름없는 느낌. 그 유명한 'Jump'를 쬬 쬬(...)로 써먹는다거나(절교선언), 특히 '나만의 비밀'같은 곡은 마치 맥 대디가 살아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2집  3.5집 활동

그 뒤 '두근거리는 상상' 등의 후속곡으로 1집 활동을 마무리한 다음 기존 멤버였던 박정환이 갱스터 랩 그룹을 만들기 위해서 탈퇴했고, 이하늘, 김창렬과 같은 클럽DJ 출신인 정재용이 새 멤버로 중간 투입되어 1995년 여름에 정규 2집을 발매했으며 타이틀 곡인 '머피의 법칙'으로 1위를 여러 번 차지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1996년 3집 앨범들을 통해 '겨울이야기', '미녀와 야수'를, 3.5집 여름 스페셜 앨범을 통해 '여름 이야기' 등의 1위 곡들을 배출해 내면서 성공가도를 달렸다.

DJ DOC 멤버들은 원래 본격적인 미국식 음악을 하고 싶어했지만 데뷔 초에는 기획사의 요구로 댄스곡을 했으며, 1996년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으로 인해 국내에서 일본을 규탄하는 분위기가 거세지자, 이들은 선배 가수 정광태와 함께 <대한민국만세>라는 음반을 내서 판매 수익금을 독도박물관 및 독도 등대 건립비용으로 쓰도록 했다. 3집 활동 종료 후 미국에서 곡 작업을 한 뒤 4집 이후부터는 점점 자신들이 추구하는 음악 색을 찾기 시작했다.

 

4집 활동

1997년 4집의 타이틀곡[15]인 'DOC와 춤을...' 으로 엄청난 히트를 쳐서 1세대 아이돌로 바뀌는 시대였음에도 가요프로그램에서 여러 번 1위를 차지했다. DJ DOC를 모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이 노래만큼은 아는 경우가 많아 '국민가요'라고 해도 무리가 없었을 정도의 인기였다.

심지어 김대중 대통령이 선거에 "DJ와 춤을"로 개사해 홍보송으로 사용했는데 후보자의 이미지메이킹에도 도움이 돼 당선에 혁혁한 공로를 했다. #] 당선 이후 DJ DOC 멤버들이 청와대에 초대받았다고.[]

사실 이 4집은 DJ DOC의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DJ DOC는 초창기부터 힙합을 추구해 왔고[] 그에 맞게 랩도 잔뜩 넣는 등 그러한 분위기를 내려 노력했지만 4집 전까지 정작 가사의 내용은 옛날 민담처럼 해학스러웠다. 어떤 비트를 따와도 가사 내용은 항상 그랬다. 슈퍼맨의 비애도 그랬고[] 깡패의 천국은 쿨리오의 Gangsta's Paradise를 그대로 따왔으면서 정작 마지막은 '깡패한테 걸렸는데 여자친구가 깡패를 때려잡더라. 여자는 무섭다'로 끝난다. 말하자면 비트는 미국의 갱스터인데 내용은 한국식의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는데 뿜빠라뿜빠뿜빠빠"였다.

이들이 미국 본토 스타일에 얼마나 목말랐는지는 3집 앨범 부클릿 Thanks to만 봐도 알 수 있는데 여기서 이하늘은 '투팍에겐 괜히 고맙다'라고 적어뒀다. 이후로도 기회만 있으면 갱스터랩이나 본토 힙합에 대한 얘기를 해온 것만 봐도 이들이 이러한 음악에 얼마나 목말랐을지 알 수 있는 부분.

4집은 비록 과도기에 있던 앨범이라 기존의 해학적인 요소가 많이 남아있지만[] 타이틀곡인 'DOC와 춤을', '뱃놀이'[], '삐걱삐걱'[], '모르겠어?'[], everybody 등의 트랙에서 사회 및 가요계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드러내고 있으며 이러한 성향은 이후 앨범들에 쭉 이어져 내려오게 된다

 

5집 활동

4집 활동 이후 꽤 오랜 기간동안 잠적했던 DOC는 3년만인 2000년 5집, The Life... Doc Blues 5%로 컴백, 'Run to You'로 인기 몰이에 성공했지만.... 자세한 것은 바로 아래의 'Run to You' 관련 부분 참조.

이 5집은 개인적인 사정에 의해 김창렬의 비중이 극히 적었고[] 이하늘과 정재용의 랩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극히 힙합스러운 앨범이다.[] 특히 'L.I.E'[]나 '포조리’등의 직설적인 욕설이 들어간 곡들을 통해 공권력 및 찌라시 기자들에 대한 강도 높은 메시지를 설파했다. 욕설 때문에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청소년 유해매체'로 판정받아 19금 딱지가 붙여졌고, 지상파 방송 3사에서 전 곡이 방송금지 처분을 받았다가 6월에 축소판으로 심의를 의뢰해서 MBC에서 먼저 통과했다. 그런고로 대학축제, 지역 민방 프로그램 등지에 간간이 나오다가 7월 이후 방송 활동 및 전국투어 공연도 진행했다.(한겨레21 인터뷰, 문화일보 인터뷰)

경찰 측도 2000년 5월 16일 서울강남경찰서장 장기택 등 21명의 명의로 작곡자 이하늘과 제작사인 (주)새한을 상대로 음반 배포를 중지해 달라는 가처분신청을 서울지방법원에 냈다. 경찰 측은 검찰 측에도 명예훼손 고소 방안을 자문하고자 했지만 법원 실무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접수를 하루 늦추라고 지시했고, 다음날에 언론 보도가 나가자 표현의 자유 침해 여론을 의식한 경찰은 이를 보류시켰다. 그럼에도 강남경찰서 측은 동월 26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특설 야외무대에서 열리는 채널V <코리안 톱 20> 공연에서 DJ DOC가 출연할 시 안전관리를 책임지지 않겠다며 마찰을 빚었다.

출시 당시에는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으로부터 정통 힙합이 아니라며 비판을 받았고,[] 전술한 욕설 등 사고뭉치스런 행보 때문에 논란을 낳기도 했으나, 라임 면에선 발전됐다는 평가를 받아 DJ DOC의 본격적인 힙합 앨범으로 평가받는다. 발매 일주일 만에 10만장이 팔리는 기염을 토했으며,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서 2차 65위, 3차 60위를 차지한 기념비적인 앨범이다.

D.O.C. Blues에서 적나라하게(...)리얼한 스크텔레콤 아가씨 목소리 당시 전화번호 011-309-9981로 전화건 팬들이 많았다 카더라 묘사되듯 멤버들의 정신적, 물질적 곤궁이 최고조에 달했던 때이며, 김창렬의 비중이 적었고 전 앨범들처럼 상업적 성공의 압박이 적은 상태에서 본인들이 하고 싶은 랩음악을 처음으로 시작한 앨범이다.

타이푼, 후니훈 등도 피처링에 좋고 그리고 심지어는 나얼도 앤썸시절 피처링도 들을 수 있다. 무엇보다 전 트랙에서 버릴 노래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높게 살 만하다. 한국 100대 명반에 들어갈 정도의 앨범이면 거의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Run to You'에선 뮤직비디오와 공연에서 가희가 백댄서로 출연한 적이 있고, 음악 외적으로 인터넷방송국 '아이팝TV'에 개인 홈페이지를 개설하기도 했다.

겜생 상담소에서 밝힌 바로는 당시 NC에서 김창열이 리니지를 한다는 걸 접하고 앨범에 리니지 15,20일 무료 쿠폰을 넣어주면 스톡옵션을 주겠다고 했는데 이하늘이 반대했다고 한다. 현재 가치를 계산하니 30억이 넘는다고 한다. 김창열은 "내 돈이 아니구나" 했지만 이하늘은 크게 후회했다고 한다.

 

6집 활동

2001년에 이하늘이 독자 레이블 '부다사운드'를 세운 후, 2003년 싱글 'Street Life'와 2004년 6집 'Sex And Love..Happiness' 이후 꽤 장기간 잠수했다.[] 특히 6집앨범은 김창렬이 프로듀싱을 하였다.[ 이전에 발매한 싱글앨범의 곡도 6집에 함께 수록되었다. 5집이 이하늘, 정재용의 위주로 힙합스타일인 비중이 컸던 반면 6집은 김창렬 스타일의 발라드스타일인 비중이 절반이었다.

6집앨범 타이틀곡인'I wanna' 로 활동하고 싸이가 작곡한 '수사반장' 으로도 활동을 하였다. 수록곡 중 '끝나버린 이야기' 는 이현도가 작곡하였다.

 

7집 활동

2010년에 7집 '풍류'를 내고 활동하면서 다시 뮤지션으로서 대중들의 관심을 얻기 시작했다. 7집 타이틀곡은 싸이가 프로듀싱을 맡은 '나 이런 사람이야'. 발매 직후부터 음원차트 올킬, 음반차트의 경우 샤이니, 같은 시기 복귀한 보아나 SE7EN 등 아이돌들과 경쟁했다.

7집 수록곡 중 이하늘의 솔로곡 '부치지 못한 편지'가 강원래를 디스하는 내용이 아니냐는 추측으로 꽤 화제가 됐는데, 본인들이 인터뷰에서 강원래 맞다고 밝혔다.[] 이 노래가 나오게 된 원인은 라디오 스타 때문. 2010년 3월 10일, 17일에 클론과 박미경이 출연했고, 방송 중 강원래와 이하늘 사이의 이야기가 나왔는데... 속된 말로 그걸 보고 이하늘이 빡돌아버린 것. 가사에서만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을 뿐, 숨김없이 깠다.

7집 활동 당시 SBS 강심장 출연 거부로 인해 같은 방송사의 인기가요 무대가 취소됐다고 밝히면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룹 평가

한국 가요계 역사상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만한 댄스그룹, 힙합그룹이다.

이하늘의 랩과 작곡, 프로듀싱 능력은 90년대 기준으로는 단연 앞서나갔으며 인기 댄스그룹이었음에도 의식적으로 힙합을 지향하고 성공시켰다.[] 댄스그룹 보컬로서는 최고 수준인 김창렬의 보컬, 주요 활동 기간에서는 댄스와 예능멤버이자 사고도 거의 치지 않는 정재용 등 나름대로 구성은 되어 있었다.

1994년에 데뷔해서 2010년에 이르기까지 8장의 풀렌스 앨범을 발표했고 6집 한 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차트 정상을 밟았다. 6집 역시 1위를 못했지만 충분히 대중적인 반향이 있었고 성공한 앨범에 속한다. 평범하게 차트 정상을 찍은 수준이 아니라 큰 인기를 끌은 노래도 제법 있다. 아이돌 느낌나는 댄스그룹으로 시작해서 4~5집부터 본격적인 힙합그룹으로 전환하고 대중성과 평단 양쪽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없는 사건사고로 인한 구설수, 돈을 많이 벌었어도 꾸준히 엿보이는 금전적인 어려움, 멤버간의 불화 등으로 앨범 작업이 극도로 둔화된 아쉬움,[] 그로 인해서 저평가를 받는 아쉬움이 있는 그룹이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자업자득인 측면도 있기 때문에...

 

각종 사건사고

이 그룹하면 떠오르는 건 역시 단연 폭행 사건들일텐데, 특히 그 중 김창렬이 가장 유명했다. 김창렬의 경우는 DJ DOC 멤버들 중 가장 성격이 더러웠다. 오죽하면 함부로 자신을 처다보았다는 이유로 상대에게 주먹부터 내지르는 걸로 악명이 높아서 별명이 "메두사"였다.

김창렬이 겪는 패턴은 주로 폭행시비가 터진다 - 유명연예인의 입장에서 조용히 끝내는 게 좋으므로 깽값 물어준다 - 이 점을 노린 다른 누군가가 일부러 시비를 걸어온다 - 폭행시비가 터진다…의 악순환이었으며 언젠가 김창렬이 합의금을 충당하기 위해 나머지 멤버들에게 급히 전화하여 전혀 어울리지 않는 LG화학 발코니창 광고를 찍어야 했던 과거도 있다. 참고로 공식적으로 보도된 폭행 사건은 17건이라고 한다. 이 외에도 조용히 묻어가는 대신 합의한 사건까지 합치면 꽤 되는 듯. 합의금 충당용 CF # 이런거 다 모았으면 제대로 된 기획사 몇 개는 차렸을 듯….

그래도 김창렬의 경우는 일찌감치 결혼하고 자식도 가졌고, 이경규의 도움으로 갱생에 성공해서 부드러운 남자로 거듭나 안정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편이었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기 들어서는 다시 본인과 관련된 각종 사건사고 및 논란들로 인해서 다시금 비호감으로 추락한 상태이다.

반면 이하늘은 그야말로 시궁창스러운 처신으로 점점 추락하고 있다. 분명 이하늘도 '재용이의 순결한 19'의 MC를 맡은 바도 있는 정재용과 더불어 '천하무적 야구단'이나 '명랑히어로' 등의 각종 예능 프로그램들을 거치면서 늦깎이 예능 전성시대를 누리게 됐지만, TV 출연이 잦아지기 시작한 이 과정 중에 각종 논란과 거짓말들이 난무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물 중 하나가 바로 전멤버 박정환의 고소건이다. 자세한 것은 '전 멤버 박정환과의 갈등'에서 후술되어 있다.

이하늘은 과거에도 베이비복스를 '미아리복스'[]라고 까서 논란의 중심에 선 일이 있었다.

'여름 이야기'가 실려있던 스페셜 앨범의 경우, 동앨범에 실린 '신당동떡볶이집 허리케인박'이라는 노래가 무단도용표절시비가 있었던 적이 있다. 장두석, 이봉원이 시커먼스 이후 선보였던 두번째 음악개그듀오 니캉내캉 시절 작곡/작사해서 불렀던 노래인데, DOC 측에서 구전가요로 알고 그냥 사용한 것. 이 곡은 장두석, 이봉원 외에 장두석과 자주 작업한 작곡가 홍정완도 작사/작곡으로 참여했는데, 실질적인 표절관련 고소는 홍정완이 한 것으로 보인다. "그룹「DJ 덕」히트곡 「허리케인 박」표절고소" 어찌됐건 잘 마무리돼서, 해당곡의 저작권자(작사작곡자)는 장두석, 이봉원, 홍정완으로 등록돼 있다. 이후 장두석은 2007년 9월 13일에 김창열이 진행하는 김창열의 올드스쿨에 출연했는데, 이때 김창열은 저희들은 구전가요로 알고있었다며 사과를 했고 장두석은 내가 직접한 고소는 아니었던터라 나도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적당히 훈훈한 광경이 연출됐다. 참고로 장두석이 모를 수는 없다. 인기곡이 아니라서 미미하긴 하지만 어쨌든 관련된 저작권료는 들어오니까...

이하늘은 부다 사운드라는 레이블을 설립, 후배 뮤지션들을 양성에 힘쓰려고 한 적이 있었지만, 사정이 영 여의치 않았는지 결국 친동생 이현배가 리더로 있는 45RPM은 YG 언더그라운드쪽에 매니지먼트를 넘기고 Leo Kekoa도 스나이퍼 사운드로 떠나보냈다. 남아 있는 건 라임버스 정도였으나 그 라임버스도 얼마 안 가 활동을 중단하고 흩어졌다. 본인이 놀러와 에서 "요즘은 부도 사운드다"라고 했던 것으로 보아 별로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던 듯. 현재는 바스코와 라임버스의 J-dogg도 나간 상태. 45rpm은 다시 돌아왔는데... 45rpm에서 J-Kwondo가 탈퇴했다.[]

소속사와의 불화로 인해 꽤나 여기저기를 전전한 그룹이다. 앨범판매량이 일정수준 이상이 나오면 추가수당을 받는 식으로 계약을 했는데,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해도, 음반판매량 순위에서 1위를 먹어도 소속사 측에서는 계약에 명시된 판매량에 못미친다며 돈을 지불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챠트상으로 자신들보다 순위가 낮은 다른 가수들은 자신들의 목표 판매량 이상으로 앨범이 팔린 불가사의한 상황이 계속되자 결국 소속사에 대한 불신 때문에 막대한 해약금을 지불하고 다른 소속사로 이전. 이런 짓을 서너번 반복했다고 한다(…).

다만 이런 식의 행태는 비단 DJ DOC만의 문제라기보다는 90년대에 데뷔하거나 활동한 가수들이라면 피차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할 말은 하고 살았을 것 같은 대형스타(국민가수)들도 결국 기획사가 이야기해주는 음반판매량을 그대로 믿고 정산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엉뚱하게 값비싼 외제승용차를 덜컥 사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보너스를 챙겨주기는 했지만, 결코 정확하게 정산을 해주는 경우는 없었다고 보면 된다. 동시대에 활동하면서 역시 많은 히트곡을 터트렸던 R.ef의 이성욱은 라디오 스타에 출연해서는 '그때보다 밤무대 나이트 뛰는 지금이 훨씬 많이 번다'고 이야기했을 정도. 그나마 1980년대 말부터 계약서라도 쓰고 가라라도 어느정도 정산해 주는 관행이 생긴 거지,[38] 그전에는 진짜 주먹구구식이였다. 일례로 1970년대 말~80년대 초반을 강타했던 산울림은 수많은 음반을 팔고 방송에 출연했지만, 실제 가수활동으론 수입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동생들은 취직했다고...

덕분에 왕년에 절대적인 인기를 자랑했던 그룹임에도 멤버들은 상당히 빈곤한 생활을 계속해 온 모양. 특히 3집의 경우 비공식 판매량 270만장을 기록했지만 소속사 집계로는 98만장에 그쳤고, 이에 멤버들은 다른 계약사와 계약을 맺고 계약금을 전 소속사 위약금으로 지불했다고 한다. 이때 받은 계약금이 무려 30억원. 하지만 한 푼도 만지지 못했다고 한다. 그 당시 30억이면 강남구에 빌딩이 한 채.

그 와중에 가장 조용하던 편인 정재용도 기어이 폭력 사건에 휘말렸다. 2010년 1월 27일,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이혁재의 폭행 사건의 여파가 아직 가시기도 전에, 정재용이 "유흥주점 여종업원을 폭행"한 혐의로 피소를 당한 것. 이에 대해 정재용 본인이 자신의 여자친구와 여종업원 간의 다툼을 말리는 과정에서 오해를 받은 것이라 해명을 했으며, 부다 레코드 측에서도 대표가 직접 나서서 공식사과를 하였다. 다만, 이미 DJ DOC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았던 상황이고 수습이 빠른 편이었는데다 정재용이 아무래도 팀 내에서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약한 편에 속하는 멤버인지라 이 때 사고를 친 걸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다행인가?

동아일보 지면에 해당 기사가 실리면서 올렸던 사진으로, 기사보다 사진이 더 화제였다(...).

2010년 8월 13일에는 KBS 뮤직뱅크에서 1위를 한 보아가 준 꽃을 갑자기 집어던지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보아의 1위가 발표되자 이하늘은 반 장난식으로 투덜거리는 제스쳐를 취했는데, 여기까지는 별 문제 없었지만, 이후 보아가 준 꽃을 이하늘이 던지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고, 상반신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김창렬이 떨어진 꽃다발을 발로 차는 듯한 모션이 찍혀서 더 문제가 되었다. 이후 김창렬의 트위터에 자신의 회사가 크지 않고 음반을 사재기하지 못해서 1위를 하지 못했다는 식의 글이 올라왔다.

이 일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투덜대는 퍼포먼스까지는 그렇다 쳐도 너무 심했다는 의견과 화날만도 하다는 의견, 개그를 위한 퍼포먼스를 가지고 뭘 그러냐는 의견 등 여러 의견이 충돌하는 중이다.

하지만 애초에 김창렬 트위터 발언의 진위 여부와 관계없이 그가 뮤직뱅크 점수 산정방식을 몰랐던 것도 이런 발언을 한 이유로 볼 수 있다. 뮤직뱅크는 매주 한터차트,신나라레코드,핫트랙스 1위~100위까지 전체 판매율 판매량을 기준으로 각 음반의 판매량 비율을 따져 점수를 주는 방식이며, 그러한 상황에서는 충분히 1800 대 9600이라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그 후, 2010년 8월 20일 뮤직뱅크에서 다시 1위를 한 보아에게 사과 퍼포먼스를 보여주었고, 2010년 9월 2일 tvN의 현장토크쇼 TAXI에서도 퍼포먼스였다고 해명했다.

2010년 GSL 개막전에 초대된적이 있다. 그땐 별 이야기가 없었으나…. 2010년 12월 4일 던전 앤 파이터 남자 격투가 발표 쇼케이스에 초대되어 특별무대를 가졌다. 이전에 등장했던 레인보우와 윤하, 김세황 모두 싸늘한 반응 속에 뻘쭘하게 무대를 마쳤는데, DJ DOC는 관객들에게 일어날 것을 종용하고 관객들에게 앉아 있는게 일인 겜덕이라고 디스하는 등 특유의 광역어그로 시전을 보여줬다. '자리에서 일어났으면 그대로 돌아 나가서 게임하러 가라', '맨날 키보드만 쓰는 손 좀 위로 들어봐라' 등 관객들이 충분히 비아냥으로 들릴만 했기 때문에 말이 많았다. 현재는 던전 앤 파이터에 대한 시각이 워낙 좋지 않아진지라 유저들을 까거나 비웃는 경우가 많지만 고작 '정공겜 수준 하고는 ㅉㅉ'같이 단순하게 볼 만한 부분은 아니다. 물론 당시에도 '기껏 초대가수 불러줬더니 갑분싸 만들고 그럴 거면 그냥 집에서 보지 뭐하러 현장관람을?' 같이 이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긴 했으나 또 유저들 입장에서는 애시당초 게임과 관련된 정보+행사를 보러 온 것이지 가수들의 축하 공연을 보러 온 것이 아닌데다 하다못해 관련이 있는 가수면 몰라도 전혀 게임과 관계 없는 가수들이 와서 공연을 한 탓에 이런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있었다.

그렇다 한들 공연 온 가수들이 잘못도 아닌데 호응 좀 해주는게 어떠냐는 의견도 있고 그 의견 역시 틀린 것 하나 없지만 그 행사의 성격을 생각하면 키보드나 두들기는 씹덕들이라고 단순하게 비웃을 일은 아니다. 이러한 사건들을 겪고 이후에도 던파는 여러 행사에서 가수들을 불러 축하 공연을 했지만 하나같이 부정적이었던 던파 유저들의 요구에 결국 축하 공연은 생략되는 형식으로 변화했다. 더불어 당시 행사가 있던 장소는 소극장으로 공연에 대한 호응은 둘째치고 흔히 아는 극장과 같은 의자가 배열 된 탓에 자리에서 일어서서 공연에 호응하기에는 알맞지 않은 장소였다. DJ DOC의 종용에 의해 일어선 사람 들도 공간 특성 상 불편한 상황이었다.

2021년 학교폭력 폭로 사건이 사회적 이슈로 확산됨에 따라 한국 연예계와 체육계를 풍비박산낼 수 있는 중대한 문제가 되자 네티즌들 사이에서 DJ DOC 멤버들의 부정적인 행보가 재조명되고 있다. 물론 긍정적으로 재평가받진 않고 부정적인 재평가가 대부분이다. 네티즌들의 재평가의 요지는 DJ DOC이 저지른 사건사고에 비해 사회적 책임을 충분히 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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