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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비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2. 8. 13.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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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8월 7일에 대성기획(現 DSP미디어) 소속으로 데뷔한 대한민국의 7인조 보이밴드이다.

2015년, 13년 만에 드디어 7명의 완전체로 재결합했으나 이후 다시 사실상의 무기한 활동 중지에 들어갔다.

DSP미디어에서 기획된 팀으로 SM엔터테인먼트에서 기획한 H.O.T.에 맞서 젝스키스를 만들었고 S.E.S.에 맞서 핑클을 만들었듯이, 클릭비는 신화의 라이벌 격으로 만들었던 그룹이다.

이른바 'SM+1'이라 하여 젝스키스가 6명 (H.O.T.+1), 핑클이 4명 (S.E.S.+1) 으로 멤버를 구성했듯이, 클릭비 역시 7명 (신화+1) 으로 멤버를 구성했다.

팀명의 뜻은 성공, 히트하다, 의기 투합한다라는 뜻의 Click과 Band, Boy's, Best 등 B로 시작하는 여러 긍정적인 낱말의 이니셜이다. 

한국식 아이돌 밴드의 원조라고 볼 수 있는 그룹으로, 초기에는 기타, 드럼, 베이스 기타, 키보드가 모두 갖추어진 밴드의 형태를 띠고 락과 댄스가 조합된 음악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이후 3명의 멤버가 탈퇴하면서 음악적 전환이 불가피해 지자 4집 이후부터는 밴드 없이 댄스 그룹으로만 활동했다.

아이돌 밴드에 대한 평가가 대체로 그러하듯, 이들 역시 실력은 준수했으나 활동에 있어 진정성을 의심받기도 했다. 악기 연주를 제대로 할 줄도 모르는 애들이 어설프게 흉내만 낸다는 비난과 비아냥이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하지만 클릭비 활동이 중단된 이후에도 개인적으로 밴드 활동을 이어가거나 꾸준히 음악 활동을 해나가는 멤버들의 행보들을 보면 멤버 본인들은 악기 연주와 무대에 생각보다 훨씬 진지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악기를 맡은 멤버들은 꾸준히 레슨을 받으며 실력을 증진하거나 원래부터 실력이 있었다.

당시 1세대 아이돌 중에서는 멤버들의 평균적인 비주얼이 가장 준수했던 팀으로 평가받고 있다. 클릭비는 7인체제 밴드로 시작해서 꽃미남 아이돌로 팬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7인 체제 밴드와 댄스의 조합. 그리고 예능이면 예능. 얼굴이면 얼굴. 노래. 춤 모든 게 완벽했기에 많은 소속사들의 경계대상이었으며 특히 H.O.T.의 토니 안은 클릭비를 처음 봤을 때 어떻게 저렇게 예쁘고 잘생긴 애들로만 7명을 모아놨는지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과거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특이사항으로는 방송국에서 동시간대 예능은 허용이 안됐으나 유일하게 클릭비만 허용이 되었던 적도 있다. 그리고 4인 체제의 첫 앨범 4집 <Cowboy> 로 활동할 당시 NRG와 라이벌 기믹이 섰다.

공식 팬클럽의 이름은 니지(虹).
일본어로 '무지개'라는 뜻으로 멤버가 일곱 명이라 그에 맞게 지어졌다.
풍선 색은 초록색이다.

여담으로 노민혁을 제외한 멤버들 모두 여동생이 없다.

클릭비는 사실 활동 당시보다 해체한 뒤 더욱 노래가 인정받은 케이스다. 활동 당시에는 아이돌이라는 한계로 인해 그들의 음악성과 무대에 대한 비아냥들이 많았으나 이후 작곡가 주영훈은 복면가왕에 오종혁이 나오자 클릭비가 여러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노래들을 했던 그룹이라고 말하기도 했고 심폐소생송에 완전체로 등장했을 때는 대선배인 가수 이현우가 이들은 춤과 밴드를 합친 정말 파격적이고 도전적인 음악을 했던 재미있고 매력 있는 팀이었다고 극찬을 했다.

비를 누른 가수라 카더라

 

맴버

그룹 역사

1999년 8월 7일 1집으로 데뷔했고, 2002년 3.5집까지 발매하며 7명의 멤버가 함께 활발한 활동을 했다. 하지만 이후 밴드 포지션의 핵심이었던 하현곤, 노민혁을 비롯해 에반까지 세명이 계약만료로 탈퇴하면서 4인조로 재편된다. [


이후 남은 우연석, 김태형, 오종혁, 김상혁의 4명으로 댄스 그룹으로 전환해[12] 4집 <Cowboy>를 발매하며 댄스 그룹으로써의 존재감을 알린 뒤, 계약 만료와 함께 DSP미디어에서 키스엔터테인먼트로 소속사를 옮겨 활동했고, 이후 김상혁이 라디오DJ와 버라이어티 활동으로 큰 인기를 얻으면서 그룹의 존재감을 계속 알리게 된다.[]

또 이 시기에 같은 소속사였던 제이워크와 함께 JNC라는 프로젝트 그룹도 결성했다.

하지만 김상혁이 전대미문의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망언으로 인해 나락에 빠진 뒤, 활동이 흐지부지 되더니 실질적인 해체 상태로 돌아섰다. 공중 분해 김태형은 해체는 아니라고 못 박았지만, 각자 뿔뿔이 흩어져 활동을 이어간 탓에 다시 뭉칠 일이 없어 보였다.

이후 아무도 기억을 못하지만사실 2011년에 이미 재결합을 한번 하긴 했었다. 개인 활동이 바빴던 김태형을 제외한 6인조로 다시 재결합을 했었으나 디지털 싱글 두 장만을 발표하고 인터뷰를 몇 번 진행한 것 이외에는 방송활동과 공연 등이 전무했기 때문에[] 대중들은 커녕 팬들조차도 재결합 사실을 몰랐을 정도로 그냥 묻혀버렸다...

그리고 이것을 끝으로 역사가 끝나는가 싶었는데...

 

공백기와 재결성

2013년 12월 14일 열린 DSP의의 마지막 불꽃이었던 DSP 페스티벌에 우연석, 김태형, 오종혁, 김상혁, 하현곤, 노민혁이 참가했다.[

2015년 8월 27일, 모든 멤버가 참여한 완전체로 컴백한다는 기사가 나고 SBS 파일럿 프로그램 심폐소생송에 완전체로 등장했다.] 멤버들이 전부 30대임에도 불구하고 관리를 빡세게 했는지 훈훈한 비주얼을 보여주어 많은 이들을 설레게 했다. #

이윽고 2015년 10월 21일 타이틀곡 <Reborn>을 내세운 컴백을 예고하고 10월 12일 오전 9시 9분을 시작으로 14일 오전 9시 9분까지 티져를 공개했다.

그리고 10월 21일 정오에 해당 싱글이 공개되었다

 

사실상의 재결성 무효

앞서 말했던 대로 2015년에 드디어 재결합을 했지만 13년 만의 완전체 재결합이 무색하게 더 이상의 완전체 활동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단 기껏 재결합을 해놓고도 싱글 한 장 발표 후 다시 5년을 아무런 활동 없이 감감무소식인 상황이다. 2015년 재결합 당시에는 굉장히 활발하게 활동했다. 앞서 말한 싱글 발매는 물론이고 비록 방송 출연은 없었으나 콘서트와 팬미팅도 여러 번 진행했으며 심지어 90년대 아이돌로써는 생소할 수도 있을법한 플랫폼인 V LIVE 방송도 굉장히 여러 번 하는 등 정말 제대로 된 재결합이라 하기 손색이 없을 만큼 활발히 팬들과의 만남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러한 활발한 활동은 잠시였고 이후 2020년까지 다시 무려 5년째 새 앨범은 커녕 공연이나 팬미팅 등 팬들과의 만남조차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쯤 되면 재결합을 했다고 말하기도 민망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던 것.

팬들 사이에서도 재결합이래놓고 다시 3년을 잠수를 탈 거면 이게 어딜 봐서 재결합이냐는 볼멘소리도 나오던 상황이었다.

그러던 2018년, 오종혁이 인터뷰에서 직접 이와 같은 발언을 하며 사실상의 활동중지 오피셜을 내버렸다. 

 

아무래도 긴 시간의 개인 활동 이후에 다시 재결합을 했다 보니 멤버 간에 이견이 많았던 모양이다. 이로 인해 멤버들 간의 의견이 일치되지 않고 있으며 사실상 이후의 활동은 백지화되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사실 7인조 활동이 끝난 이후 무려 13년간 멤버들이 각자의 길을 걷다보니 이제는 사실상 본진 및 개인 사업이 따로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멤버들 모두 오로지 클릭비에만 올인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팬들은 아쉽겠지만 현 상황은 멤버들로써는 지극히 어쩔 수 없다고 할 수 있으며 현실적으로만 보자면 충분히 이해가 될법한 상황이다. 결국 2015년에 야심차게 발표했던 재결합은 다시 사실상 무효가 되어버렸다고 봐도 무방하다.

2020년 김상혁, 김태형의 유튜브 방송을 통해 유닛 활동 논의에 들어갔으나, 코로나19로 무기한 연기되었음이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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