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들 정보모음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2. 11. 22. 08:57
728x90
반응형

다나, 선데이, 린아, 스테파니로 구성된 SM엔터테인먼트에서 탄생한 4인조 아카펠라 팝 걸그룹.

2005년 5월 1일, SBS 인기가요에서 'Too Good'으로 데뷔한 이들은 동방신기의 여성판으로 결성된 그룹으로, 동방신기처럼 데뷔 초창기에는 각 멤버 이름앞에 '천무', '상미', '지성', '희열' 이라는 단어가 붙어있었지만 2006년에 삭제되었다.

2009년 일본에서의 1st Live Tour 'Dear...'를 끝으로 현재까지 활동은 중단한 상태이다. 공식 해체 선언을 하지 않았지만 2008년 이후로 4인조 완전체 활동이 한 번도 없어 사실상 해체한 그룹이나 마찬가지가 됐다. 이후 네 명이서 사적으로 모인 모습도 단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다.

멤버였던 스테파니, 다나, 선데이가 SM과의 계약만료로 떠나버려서 현재, SM에 남아있는 멤버는 린아뿐이다.

맴버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 결성 과정과 데뷔 초창기 활동

2002년, SM 엔터테인먼트는 S.E.S.를 이을 걸그룹으로 밀크, 신비 등을 배출시켰으나 미흡한 마케팅과 안습한 시기 등으로 모두 실패에 가까운 결과를 내었다. 신비와 밀크는 2집을 준비하던 중에 공중분해 되었고, SM은 앞선 이 두그룹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2001년 솔로가수로 데뷔해 논스톱으로 유명세를 탔으나 2집이 부진한 상황이었던 다나를 필두로, 2002년에 데뷔해 2004년까지 활동한 이삭 N 지연의 멤버였던 지연(후에 상미린아로 개명)과 일본에서 3년간 홈스테이를 하고 04년 봄에 솔로 가수로 데뷔한 선데이(후에 지성선데이로 개명), 2004년 청소년 경연대회(Teen Best Competition)'에서 대상으로 입상했던 연습생 스테파니를 모아 S.E.S. 이후 SM에서 정식으로 8년만에 4인조 여성그룹을 기획한다. 이전에 나왔던 밀크와 신비는 각각 SM의 자회사에서 데뷔했기 때문에 100% SM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그룹은 천상지희(天上智喜)라는 이름으로 2004년 초여름 쯤부터 결성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일명 여성판 동방신기로 기획되면서, 그룹명과 멤버 네이밍, 그리고 SM 내에서 가장 실력을 갖춘 연습생이 발탁된 것까지 동방신기의 기획 그대로 가져가고 있었다. 천상지희는 중국에 진출했던 다나, 일본에서 현지화 교육을 받고 있던 선데이, 미국에서 자란 스테파니, 한국에서 활동한 린아가 함께 모여 아시아권에서 활약하고 나아가 전세계에서 인정받을 걸그룹으로 탄생되었으며 실제로 멤버 모두 SM에서 특출난 실력으로 인정받은 엘리트 연습생만 모인 구성이었으며 이에 따른 SM내에서 기대도 컸던것으로 알려진다.

한때 천상지희는 SM의 전 관계자 김경욱이 기획한 걸그룹이라는 얘기가 돌았는데, 시기상으로는 데뷔 시기가 김경욱이 재적할 당시는 맞지만 천상지희 데뷔후 얼마안가 김경욱은 해임됐고 천상지희 데뷔 직후 즈음해서 방영된 한류 관련 특집 방송을 보면 이수만이 천상지희 뿐만 아니라 당시 SM 가수들의 모든 프로젝트를 진두지휘 하고 있었기에 천상지희는 100퍼센트 모두가 생각하는 SM의 수장 이수만과 산하 스탭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제작한 프로젝트다.

가끔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마이너스의 손으로 불리는 김경욱이 기획해 망해가던 천상지희를 이수만이 손대면서 대박을 냈다"라는 얘기가 많지만 이건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다. 2016년 스테파니가 비디오 스타에 출연해 밝힌 바로는, 당시 이수만 대표가 '여자판 동방신기'를 만들겠다며 멤버들 사복부터 무대 의상, 화장품까지 모두 직접 미국에서 공수해 맞췄으며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줬다고 밝혔다. 그만큼 이수만 대표도 천상지희 기획에 상당히 열정적이었다는 것을 알수있다.

그룹 기획만 이수만이 하고, 데뷔 앨범은 김경욱이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는데, 2005년 5월~6월 경 천상지희 데뷔 극초반에 SBS 모 특집 방송에서 이수만이 직접 천상지희를 일본 에이벡스 대표에게 소개시키는 영상까지 존재한다.

이들은 2004년 SM TOWN 여름음반에 다나의 2집 수록곡 '바램'을 4인 체제로 재녹음하여 싣으면서 데뷔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데 이외에도 이누야샤 5기 오프닝/엔딩주제가 '장난스런 키스'를 녹음하여 수록하기도 했다. 2004년 9월 24일, SM 쇼케이스로 첫 모습을 드러낸 천상지희는 본 무대에서 '바램'을 퍼포먼스 하면서 4인 체제로 처음 무대를 가졌고 이 날 각자 솔로 무대도 가졌는데, 린아는 화요비의 '당신과의 키스를 세어보아요'를 커버했으며 선데이는 자신의 일본 데뷔곡 'リラの片想い (리라의 짝사랑)'을 불렀다.

 

그리고 2004년 12월, SM의 Hot in Asia 프로젝트 설명회 겸 자리한 중국 기자회견에서 공식적인 천상지희 데뷔를 알린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동방신기와 마찬가지로 중국인 멤버를 한명 포함시키고 데뷔한다 밝혔지만 이후 중국인 멤버 영입건은 자연스레 무산되었다.[] 그리고 이때 천상지희를 소개하면서 이들을 '여자판 동방신기'로 발표했는데, 이 점이 카시오페아들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려 대단히 역효과를 냈다. '여자판 동방신기'에 걸맞게 각각의 멤버 이름 앞에 '상미', '희열', '지성', '천무'라는 괴상망측한 단어가 붙어 "천무(天舞)스테파니, 상미(上美)린아, 지성(智聲)선데이, 희열(喜悅)다나" 라는 더욱 이상한 예명이 탄생했고 이것은 대중들에게도 적지 않은 비아냥을 들었다.

 

거기다 팬클럽 이름이 북두칠성이라는 둥, 활동 내내 S.E.S.의 노래를 리메이크 할 것이고 풍선 색깔 역시 이들의 상징색인 펄보라를 사용할것이다, 혹은 신화창조의 주황색을 사용할것이다 등의 헛소문이 돌면서 데뷔초부터 각종 팬덤에게 찍혀 많은 안티를 끌어들였다.[] 그러면서 등장했던 안티들의 여론이 '재활용 그룹'이라는 것이었는데, 사실 멤버 구성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말이 많은 부분이다.

이미 10대층에선 인지도가 있었던 다나와 지연(린아)의 합류를 비롯해 약 2년간 일본에 머무르면서 데뷔를 준비하던 선데이가 갑자기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던 상황[]등이 그룹 결성 자체가 성급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스테파니는 SM에 입사한지 1년도 안돼서 데뷔가 결정된것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들은 2004년 11월부터 본격적인 녹음 작업에 돌입했고 2005년 2월에 자켓 촬영을 마쳤으며 3월 iLikePop 사이트에 타이틀 곡으로 내정된 'Boomerang'과 수록곡 'Can't Help Falling in love'의 미리듣기를 공개했다. 그리고 4월 경에 데뷔할 예정으로 모든 준비를 일사천리로 해가던 상황이었지만 SM은 돌연 계획을 수정한다.

SM은 타이틀곡 선정을 팬들의 의견을 수렴한다면서 다 준비해뒀던 타이틀곡을 갑자기 제쳐놓고 수록곡 'Too Good'을 갑자기 타이틀 곡으로 교체해버리는 병크를 저지른다. 그래서 데뷔 초창기 기사들이 대부분 "가창력으로 승부하겠다"는 멘트들이었고, 데뷔 전 부정적이었던 반응을 발라드 곡으로 뒤집어 볼 셈이었는데 'Too Good'은 '부메랑'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발라드 곡이었으며 당연히 댄스곡보다 임팩트가 현저히 떨어지는 노래였다. 심지어 안티들이 일부러 'Too Good'에 반응을 몰아버린게 아니냐는 말이 있었을 정도였다. 실제로 이때 안티들이 또 섹시 컨셉으로 나온다며 질린다고 여론 몰이를 해댔고, 이 반응을 모니터한 SM측이 계획을 바꾼것으로 보인다.

 

자켓 사진부터 어반 장르의 블랙 계열 'Boomerang' 컨셉으로 완료해둔 상황이었지만 당시 천상지희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가창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발라드 곡으로 승부를 보려던게 SM측의 의도였지만 이것이 타이틀곡 선정에 합당한 이유로 보기엔 적절치 않아보인다. 안티들한테 재활용 그룹이냐고 욕 먹고 있던 상황에 신인이었던 스테파니를 필두로 해서 중고신인이라는 인상을 지워도 모자랄 마당에 이미 알려진 다나를 필두로 만들어진 'Too Good'을 타이틀로 민것부터가 미스였다. 그렇다고 노래가 엄청 임팩트가 큰것도 아니었다. 타이틀 곡이 급하게 변경되면서 5번 트랙으로 수록될 예정됐던 'The Club'이 트랙리스트에서 누락되었고 #[10] 부랴부랴 앨범 발매 직전에 'Too Good' 뮤직비디오 촬영이 진행된다.

데뷔 앨범 준비를 모두 마친 천상지희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 2005년 4월 7일에 M.net 엠카운트다운 비방송 무대를 통해 처음으로 비공식 데뷔 무대를 가졌었다. 이 날 무대에서는 원래 타이틀 곡으로 점쳐둔 'Boomerang'을 선보였는데 # 이 시기 타이틀 곡을 'Too Good'으로 바꿨음에도 왜 굳이 'Boomerang'을 보여줬는지는 의문이지만 아마 이 무대는 'Too Good'으로 타이틀을 바꾸자는 의견이 한참 나올때 미리 정해준 스케쥴이어서 취소하지 않고 행한 스케쥴일 가능성이 크다. 애초에 비방 무대 자체가 그냥 무대 경험을 쌓기 위해 오르는 것이라. 그러나 SM의 다른 팀들을 봐도 데뷔 전 비방 무대는 보통 타이틀 곡을 보여주기 때문에 원래 'Boomerang'을 밀으려던 이들의 계획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비방 무대는 방송되지 않고 기사를 통해 천상지희가 베일을 벗었다는 사실이 알려졌으며, 타이틀 곡을 'Too Good'으로 바꾸기로 완전히 확정한 SM은 4월 22일에 'Too Good' 뮤직비디오 촬영을 강행했다. 그리고 몇주 뒤, 2005년 4월 29일 중국 CCTV의 음악 방송 '중화정'을 통해 데뷔 무대를 가졌는데 이 날도 역시 'Boomerang' 컨셉의 의상을 입고 'Too Good'과 'Boomerang'을 선보였다. 그리고 며칠 뒤 한국에서 5월 1일에 SBS 인기가요를 통해 정식 데뷔한다

 

이들의 첫 데뷔 무대에는 아카펠라 팝 그룹 답게 준수한 라이브를 선보여 호평을 이끌어냈고 데뷔 전부터 바글바글하던 안티들의 소행도 줄어들긴 했지만 기대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했다. 데뷔 전부터 화제였던 천상지희는 막상 데뷔하고 보니, 너무 썰렁한 데뷔 신고식을 하게 되었고 부랴부랴 원래 타이틀 곡으로 점찍어뒀던 'Boomerang'으로 6월 부터 후속곡 활동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때 꽁꽁 숨겨뒀던 신예 스테파니의 환상적인 독무가 화제가 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고 타이틀 곡때의 미미한 반응과는 달리 화제를 모으기 시작했다.

'Boomerang'에서 단연 돋보인 스테파니의 독무는 닉네임 "천무"답게 아주 격렬했으며, 19살 신인이 선보이기에는 믿기지 않은 안무를 선보이며 시선을 끄는데 성공한다. 심지어 이 독무를 스테파니 본인이 직접 만든 것이다. 이 같은 반응에 힘입어 스테파니는 각종 예능 버라이어티 쇼에 출연하며 천상지희의 이름을 알리는데 특히 X맨에서 그녀의 춤 실력이 빛을 발했고,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한다. 스테파니의 활약으로 인지도가 상승한 천상지희는 초반의 분위기보단 수월하게 활동을 이어나갔지만 음반 판매는 전혀 상승하지 못했고 방송 차트도 중위권에 그치면서 결국 체감 인기는 얻었지만 결과적으로 절반의 성공 정도로 끝났다.

사실 천상지희는 2000년대 초중반 SM 엔터테인먼트 측에서 타진 하던 K-POP의 세계화, 아시아 진출을 위해 만들어진 그룹이었기에 데뷔 초부터 중국 활동을 병행했다. 이미 다나는 2002년 중국에 진출해 중국어 실력도 어느정도 갖추어졌었고, 인지도 또한 조금이나마 있던 상황이었으며 중국에서는 'Too Good'이 아닌 '부메랑'을 주로 밀었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꽤 좋은 반응을 얻은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여기서도 대박은 아니었다.

팬들은 중국으로 활동 반경을 잡은것으로 예측하고 있었지만 2005년 10월, 천상지희는 일본 진출을 공식화했다. 사실 2005년 6월, 천상지희가 극신인이었을 당시 보아와 이수만이 SBS 모 특집 방송에 출연했는데 이때 이수만 회장이 소속 가수들의 해외 활동등을 소개하면서 천상지희가 에이벡스의 회장 및 스탭들이 내한한 자리에서 미팅을 하는 모습이 방송되기도 했다. 이 날 방송에서는 천상지희의 일본 데뷔를 위한 현지 스탭들의 방문이라고 전했으며, 이 영상을 볼때 데뷔 초부터 이들의 일본 진출이 계획되고 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일본에 데뷔한다는 사실은 공공연하게 확정되고 있었지만 데뷔 싱글을 겨우 마무리 지은 천상지희는 2005년 겨울에 급 일본 진출을 선언하면서 팬들을 당황시켰다. SM의 다른 소속 가수들이 대부분 국내에서 데뷔 싱글 혹은 데뷔 음반 이후 적어도 한 장 정도의 후속 음반을 낼때 천상지희는 데뷔 음반만 딱 내놓고 아무런 국내 후속 활동 없이, 갑자기 일본으로 넘어가버린 것이다. 동방신기, 보아, 슈퍼주니어 그 어느 팀도 데뷔 음반을 내자마자 일본으로 넘어가진 않았다. 데뷔 전부터 아예 일본에서 홈스테이까지 했던 보아 역시도 1.5집까지는 내고 넘어간 판국이었다. 천상지희는 아예 대놓고 SM의 실험을 위해 탄생된 팀이라도 된 양, 훌쩍 일본으로 떠나버린다.

이들은 SM 아티스트들의 일본 활동을 전담하는 에이벡스에서 06년 1월, 후속곡 'Boomerang'을 일어로 번안해 데뷔 싱글을 발매했고 일본 활동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이들도 타이틀 곡 선정 미스를 인정하는지, 공식 데뷔곡 'Too Good'은 철저히 묻혀버렸다. 천상지희의 준수한 라이브 실력과 퍼포먼스에도 일본 대중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는지 결국 데뷔 싱글은 오리콘 첫진입 110위라는 초라한 성적을 기록했다. 그리고 한국 활동 때보다 더 점입가경이 된 개념 쌈싸먹은 코디로 더더욱 이들은 안드로메다로 가버렸다.

 

2006년 3월, 천상지희는 본래 데뷔 싱글에서 후속곡으로 쓰려던 'The Club'을 두번째 싱글로 내놓는데, 이때 한국과 일본 동시에 발매하기로 결정한다. 이 곡에는 한류스타 비가 피쳐링을, 일본판에선 'SEAMO'가 피쳐링을 맡았다. 'The Club'은 'Boomerang'을 잇는 파워풀한 댄스곡이었고 이 곡에서도 역시 스테파니의 화려한 독무 파트가 존재했다. 그리고 이 싱글에는 스테파니의 솔로곡도 수록되었는데 타이틀 곡 못지 않은 퀄리티로 호평받기도 했다. 발매와 동시에 한국에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 히트를 예감했으나 정말 어이없게도 일본 활동을 위해 활동을 2주만 계획하면서 수많은 팬들을 분노케 했으며 이때 'The Club'으로 활동안시킨게 최대의 실수였다. 그렇다고 일본에 돌아가서 이렇다할 성적을 낸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The Club'은 딱 첫방과 뮤직비디오로만 홍보했음에도, 인기가요 뮤티즌 송 TAKE 7 순위 투표 7위에 오르고, 엠넷 차트에서도 10위권 안에 들며 호조의 성과를 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놈의 일본 활동이 어찌나 중요했는지 첫 무대만 겨우 마치고 바로 일본으로 넘어가버린 것이다.

'The Club' 역시 일본에서 별다른 히트를 거두지 못했고 이 후 일본에서 'Sweet Flower', 'juicy LOVE', 등 총 2장의 싱글을 발매하지만 모두 100~200위권 대의 아주 저조한 성과를 기록했다. 그래도 이 시기 일본에서 멤버 4명이 함께 지내면서 싸우기도 하고 서로 많은걸 알아가면서 팀워크가 더욱 단단해졌으며 각종 이벤트 활동을 통해서 라이브 실력도 쌓았다. 그렇게 그 해 하반기까지 일본 활동이 이어졌고, 약 9개월간의 일본 활동을 잠시 정리한 이들은 가을 께 한국에서의 새로운 음반 활동을 위해 귀국한다.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 활동 중단이후  유닛 출범 현재 상황

한편 활동이 중단된 이후 천상지희는 해체설, 불화설을 반복하다 데뷔 이전부터 함께 해온 공식 팬카페 드리밍이 어느 날 매각되었고[] 멤버들이 SM 엔터와의 계약이 종료됐다는 루머, 스테파니 왕따 루머 등 근거없는 소문이 커지면서[] 소란스러운 상황이 벌어졌고 국내 팬덤은 공중분해 되었다. 팬카페 양도사건은 SM 이수만 회장 역시 크게 충격받은 일로 전해진다.

 

2010년 SM TOWN 콘서트에 린아, 다나, 선데이 3인 체제로 뜬금없이 등장하면서 팬들은 컴백에 대한 희망을 가질수 있었지만 스테파니 복귀에 대해서는 대부분 반쯤 포기 상태였다. 스테파니가 미국에서 치료를 받고난 후 한예종에 입학했고 본교에서는 학생들의 연예 활동을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가 갈수록 불투명해지던 천상지희 활동 계획은 2011년이 돼서야 비로소 구체화되면서 이들의 복귀 소식이 들려오자 컴백을 목이 빠지도록 기다려온 팬들은 크게 열광했다. 하지만 린아와 스테파니가 없는 다나와 선데이 2인 체제 컴백으로 결정되어 완전체 컴백을 기다리던 팬들은 아쉬워했다. 자세한것은 천상지희 다나&선데이참고. 사실상 2012년 정도까지는 SM 내에서도 다나&선데이를 통해 천상지희라는 그룹을 계속 유지시켜왔지만 이제는 해체한 그룹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SM 소속 아티스트가 총출동하는 프로젝트나 매체에서도 천상지희의 이름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다나&선데이 활동도 이제 더 이상 나올거 같지 않고 멤버들 모두 각자 개인활동을 하고 있으며 린아는 배우 장승조와 결혼하면서 더더욱 어려워졌다. 거기다 2016년 5월 스테파니가 SM 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을 끝내고 제휴사였던 마피아 레코드로 완전 이적한데 이어[] 천상지희 공식 사이트는 폐쇄되었고 SM 메인 사이트에서 천상지희 프로필에 스테파니가 빠지면서 완전체 컴백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2020년 5월에 선데이[], 6월에는 다나가 각각 SM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이 종료되었다. 시간이 더 흘러 슈가맨 같은 프로그램에서 일회성으로 뭉치지 않는 이상 이들이 모인 모습을 보기는 어려울 듯 하다.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는가

팀 활동 중단 이유에 대해서는 떠돌아다니는 루머를 제외하고 가장 설득력 있는 두가지 설이 있는데, 첫번째는 카더라에 따르면 2009년 한국에서 'Here'을 한국어로 번안하여 컴백할 예정이었지만 'Here'은 천상지희의 단독 명의가 아닌 '천상지희/CLIFF EDGE' 였기 때문에 CLIFF EDGE 측과의 저작권 문제로 컴백이 무산되었고 여기에 스테파니 건강 악화 등의 이유로 완전체 활동이 계속 연기 되다가 자연스럽게 팀 활동이 중단됐다는 설, 그리고 동방신기-JYJ 사태로 인해 일본 기획사였던 에이벡스와 SM 엔터테인먼트간의 갈등으로 일본 활동이 불투명 해지면서 자연스럽게 활동이 중단됐다는 설이 있다.

한국 컴백 무산에 관한 이야기는 해당 싱글과, 곡이 수록된 일본 정규 2집 'Dear...'이 국내에서 라이센스 발매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정도 신빙성 있는 추측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인해 이후에도 완전히 팀 활동이 완전히 중단되었다고 보기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으며 알려지지 않은 회사 사정이 있었거나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들이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아무리 당시 문제가 생겼더라도 나중에 다시 4인이 한국에 있을때 앨범을 제작할 수도 있었을텐데 그것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참 뒤 진행된 스테파니의 모 인터뷰를 따르자면 허리 부상 이후 공백기를 가지는 동안 일본에서 음반이 더 이상 제작되지 않아 본인의 가수 인생은 여기서 끝났구나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밝혔는데 이 얘기를 보면, 일본 활동이 중단된 것이 천상지희 향후 활동에 큰 치명타를 입힌 것으로 보인다. 천상지희와 연관된 회사 내부 사정이 복잡했던 것이다.

 

이후 소속사측에서는 공식적으로 해체면 해체다, 어떤 사유로 인해 활동을 중단한다는 정확한 입장마저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팬들은 그저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고 그나마 스테파니의 부상으로 인해 3인 체제로 활동하고 있다. 그 이후 유닛으로 컴백한다까지가 SM의 공식 입장이었지만 천상지희의 활동 올 스톱에 대해서는 어떤 피드백도 하지 않았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스테파니도 SM엔터테인먼트를 떠났다. 이 이후에는 더 시간이 흘러 흐지부지 되었고 멤버들의 개인 활동 시대가 열리며 더욱 더 천상지희에 대한 속사정은 애매모호하게 들을 수 밖에 없게 됐는데 멤버들이 하는 공통적인 얘기는 해체는 하지 않았다. 정도다. 그리고 재결합에 대해서도 '사람일은 모르는거다' 정도만 겨우 하는 정도.

2018년 다나가 유튜브 다날다 프로젝트를 통해 컴백하면서 그 사이에 진행한 인스타 라이브에서 부적절한 행동으로 비난을 받았는데 그 방송 도중 다나가 언급한 바로 "린아는 결혼하기 전에도 앨범내기 싫어했다" "스테파니는 잠수타서 연락처도 없다"고 밝혀 논란이 되었다. 그러나 이 발언은 진지하게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는데 애초에 스테파니는 다나 외에 선데이, 린아와 꾸준히 교류해왔다. 린아에 관련한 언급도 전적으로 다나 측의 입장만 들은것이기 때문에 린아와 스테파니가 재결합에 걸림돌이라고 단언하기 매우 어렵다.

린아가 앨범 활동에 동의하지 않은것도 당시 뮤지컬 활동으로 자리 잡고 있었고 본인의 심적, 개인적 상황으로 유닛 활동을 거절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천상지희가 09년 활동이 중단되면서 멤버들 모두 개인적으로 힘들어하던 시기가 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며 또 다나의 해당 인스타 방송은 대중들에게 무례하다고 지적을 받았으며 일각에서는 다나가 그룹 활동에 불성실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이 날 라이브 방송에서 다나가 사적으로 만나는것은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언급했기에 완전히 불화로 몰아가기에도 무리였다. 이후 다나는 사과문을 올렸고 선데이 역시 SNS를 통해 모든 멤버가 아프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언급해 팬들도 크게 힘들어했다.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 국내 활동에 대한 성과

천상지희는 역대 걸그룹계에서 가창력으로는 브라운아이드걸스와 스피카, 씨스타, 마마무 등과 함께 최고로 뽑힌다. 오히려 R&B-소울 음악 그룹으로 시작했던 브라운 아이드 걸스와 무대 퍼포먼스가 부족하다고 평가받는 스피카, 멤버 전원이 메인 보컬급은 아니었던 씨스타, 격렬한 댄스와는 거리가 있는 마마무와는 달리 천상지희는 여자친구처럼 멤버 전원이 댄스, 보컬, 퍼포먼스 모두 소화가 가능했다.[] 춤추면서 라이브를 완벽하게 소화하는게 천상지희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물론 단점도 있다. 네명 다 모두 실력과 더불어 개성도 강했기 때문에 그룹으로서 조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듣기 부담스럽다.

가창력의 문제는 냉정하게 말해서 튀는 주연은 많은데 조연은 없다는 데 있다.[] 흉성 벨팅을 활용한 선 굵은 가창력을 가지고 있던 그룹이지만, 소몰이창법에 가까울 정도로 과도하게 굵은 목소리로 긁고 꺾어대니 2005년 당시에도 '부담스럽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특히 이러한 이야기는 린아나 스테파니에게서 많이 나왔다. 린아는 원래 R&B 듀오인 이삭 앤 지연의 멤버였기에 그렇다 치더라도 스테파니는 그렇지 않았다. 그나마 선데이는 목소리가 청량한 편이었지만, 잘 부각되지는 않았다. 천상지희의 노래 대부분이 톤이 낮고 분위기가 무거운 R&B 기반 음악이어서 톤이 높은 선데이를 음악적으로 부각시키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천상지희하면 떠오르는 Dancer In The Rain이나 한번 더, OK? 를 생각해보면 린아나 스테파니가 분위기를 주도함을 알 수 있다.

제대로 된 프로듀서라면 선데이를 강한 보컬을 지닌 다른 멤버들의 톤을 조율하는 완충재로서 배치했어야 하는데[][] 이게 전혀 이뤄지질 않아서 생긴 문제. 창법은 대형 뮤지컬을 연상시킬 정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강-강-강-강인데 정작 노래는 무난한 팝 댄스곡이나 발라드인지라 차라리 소울 음악을 시도했다면 좋았을 거라는 평이었다. 한편 무작정 '노래를 잘 하는 사람들' 만 모아놓아서 비슷비슷한 음색의 보컬들이 충돌하며 오히려 서로의 개성을 깎아먹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마디로 목소리가 센데 비슷한 음색을 갖기까지 한 멤버들이 동시에 질러대니 청자 입장에서는 기승전결없이 '전.전.전.전'만 느껴지는 것이었다.

어쨌든 개개인의 가창력으로는 어디 부족함 없는 보컬 능력치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걸그룹이 가뭄이었던 2000년대 중반에 등장해 시기적인 운도 따라주지 못했고, 활동 기간도 턱없이 적어 그마저도 회사에선 삽질만 했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대박을 이뤄내지 못한건 당연한일이었다. 대부분의 음악 팬들에게 천상지희는 실력은 있었지만 잘 안된 안타까운 그룹이라고 회자된다.

또한 멤버 개개인의 천상지희 이전 활동 경력은 길었지만, 이 네명이서 데뷔를 준비하고 앨범을 준비한 기간은 매우 짧았기에 SM측의 프로듀싱도 다른 팀들과 달리 천상지희에게만 갈팡질팡 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그나마 정규 1집때 팀 컨셉이 정돈되고 팀웍도 좋아졌을 시점에 무리하게 일본으로 넘어간것이 이 팀의 운명을 안타깝게 바꿔놓았다. SM이 이 그룹의 실력만 믿고 다른 그룹들처럼 여러 방면에서 치밀하게 계획하지 못한것이 오히려 독이 된거다.

사실 천상지희는 S.E.S.와 소녀시대 사이에 애매하게 등장한 그룹이었던 터라, 1집으로 국내에서 인기를 얻었을 당시에 SM내에서 수년간의 정성을 들여 제작한 소녀시대를 푸쉬하기 위해 일본으로 돌려보냈다는 말이 있다. 1집 앨범 발표 초창기 인터뷰에서는 분명 활동을 5개월 정도 할거라고 얘기했지만 실제 활동은 2달 남짓이었다. 후속곡으로 활동할 예정으로 알려졌지만 단 한번의 무대로 끝나버렸던 'Dancer in the Rain' 역시 멤버들이 굉장히 애착이 많았던 노래라 준비 기간도 길었고 안무도 자주 바뀌었다고 알려진다. 원래는 의자를 이용한 안무도 있었다고 하며 2007년 6월 경 방송된 Mnet Making of Star Watch에서 멤버들이 'Dancer in the Rain'을 벤에서 립싱크하면서 노는 부분을 보면 다나 파트에선 9월 엠카 무대에서는 없던 굉장히 격렬한 안무를 하고 있다.

하지만 어찌된 이유에선지 이들은 회사의 결정으로 한국에서 어렵게 얻은 인기를 뒤로하고 일본으로 가야했다. 비슷한 시기 SM에서는 소녀시대를 론칭시켰다. 추측하건데 이건 동방신기와 관련이 깊다. 천상지희가 활동하던 2007년 당시에는 동방신기가 국내활동이 아닌 일본 활동에 올인하던 시점이다. 동방신기의 일본 현지화 전략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자 천상지희가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일본활동만 하게 되었다. 천상지희가 일본에서 성과를 거두면 동방신기처럼 국내에 금의환향식으로 컴백하려던 것으로 보이며, 한마디로 여성판 동방신기 답게, 동방신기의 전략을 그대로 가져오려 했던 것. 그러나 2009년, 스테파니의 허리 부상과 내부 사정으로 인해 이후 자연스럽게 팀이 중단되어버렸다.

사실, 천상지희의 일본 활동은 소녀시대 일본 진출 성공에 도움이 된건 사실이다. 보아의 일본 진출 성공에 S.E.S.의 일본 진출로 겪은 시행착오가 도움이 된 것 처럼 말이다. 천상지희의 국내팬들은 그들의 활동이 실험용으로만 이용됐다고 보는 경우도 많다. 한국에서 좀처럼 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푸쉬하지 않은것도 어쩌면 활동을 시작한지 1~2년쯤 되었을때 부터 SM에서는 천상지희를 크게 키우기보다는 천상지희를 통해 해외 시장에 대한 정보를 더 얻고자 했다는 분석도 있다. 해외 활동을 위해 기획됐다는 팀이라는 그럴싸한 언플만 내놓고 실정은 "한국에서 좀 인기 얻으려고 하면 다시 일본가서 개고생" 이런식이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신빙성있게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소녀시대의 경우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프로듀싱 했던 것은 사실이나 그 과정을 보면 한류 열풍 이후 유니버셜 뮤직 재팬 측에서 먼저 오퍼를 받고 계약을 한 것 일뿐, 처음부터 일본 진출만을 생각하고 만든 그룹은 아니다. 오히려 천상지희나 동방신기는 당초 계획과 달리 중국 진출이 아닌 일본 진출로 방향이 틀어진 걸 보면 딱히 이후 그룹을 염두에 뒀다기보다는 그냥 SM이 실험삼아 보냈다고 보는게 더 맞다.

어쨌든 SM 아티스트로는 거의 유일하게 데뷔 음반 한장만 내놓고 바로 일본 현지화 데뷔를 이루었다는 점, SM 아티스트 중 유일하게 팀 이름을 한번 개명했던 점, 회사 내에 유일하게 따로 활동하던 가수들이 한데 모여 프로젝트 그룹을 만든 점, 그 외에도 한국에서 반응이 좀 온다싶으면 바로 일본으로 돌려버려 갖은 고생은 다 시킨걸 보면 정말 천상지희를 통해 최초의 시도, 이런 저런 실험(도전)을 한건 팩트이며, 이후 등장한 소녀시대의 일본 진출과 그룹 운영에 대해 상당한 정보를 가져다 준 상황만 됐다. '이들을 믿고 열광하는 팬들에게는 빅엿을 날린것과 다름 없던 행보였다.

천상지희는 애초에 아시아 전역에서 사랑받기 위해 만들어진 그룹으로 과거 S.E.S.가 멤버 별로 담당하는 국가(언어)가 있었듯이 천상지희 역시 그런식이었고 국내에서 성공하고 차례대로 일본과 중국에서도 사랑받은 다음 최종적으로 팝 시장에도 진출하는것이 목표였던걸로 보인다. 2007년 당시 인터뷰에서도 미국시장 성공 가능성 긍정적으로 본다며 미국 진출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9년 스테파니가 활동을 중단하고 일본 측 기획사와의 문제 등 갖가지 이유로 인해 활동재개에 대해 의견이 분분할때, 2년전 후발주자로 등장해 급속도로 성장한 같은 회사의 소녀시대가 해외 진출에 더 밝은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던건지 SM은 그대로 천상지희를 방치시킨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운도 안따라줬고 고생만 다 했다.[]

차라리 데뷔 시기가 2~3년 정도 빨랐거나 SM이 조금만 더 신경을 쓰며 몇 가지 전략을 바꾸고, 활동 후반부에 몇가지 내외적인 문제만 없었더라면 더 성장했을 가능성이 높았던 그룹이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