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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아이돌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2. 9. 16.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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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3월 24일에 SM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데뷔한 대한민국의 6인조 보이그룹이다. 그룹명은 신화(Mythology)에서 유래되었다.

 

신화 특징

1998년 SM엔터테인먼트에서 데뷔하였고, 2003년 7월 굿엔터테인먼트[]로 이적하였다가 2011년 본인들이 직접 신화컴퍼니를 설립하였다. 데뷔 이후 지금까지 단 한번도 그룹의 해체나 멤버의 탈퇴 및 교체가 없었던 대한민국 최장수 아이돌 그룹.] 2017년 기준으로 13장의 정규앨범과 7장의 비정규 앨범을 발표하여 대한민국 댄스 그룹 최다 정규앨범 발매 기록을 수립하였다.

1999년부터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고, 최전성기로 간주되는 기간은 2004~2005년이다. 1990년대 후반에 전성기를 맞았던 H.O.T.와 젝스키스는 1세대 선발주자로, 2000년대 초반 10대 팬덤은 H.O.T.와 jtL이 여전히 원탑이었으며, 대중성은 god, jtL, NRG로 이어진다. 신화는 2000년대 중반부터 전성기를 맞는다. H.O.T.의 영향으로 신비주의 미소년이 주류이던 1대 아이돌 붐 시장에서 신화는 유일하게 강한 남성미, 탈신비주의, 화려한 댄스 음악 등을 내세우며 차별화에 성공하였다.

1세대 아이돌 그룹의 수명은 3년 ~ 5년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해체하는 경우가 있는데, 신화는 2004년 데뷔 7년차에 가요대상을 수상하며 최전성기를 맞았으며[], 지난 20년 동안 1집을 제외한 15개의 모든 활동곡이 음악방송에서 1위를 거두었다. 또한 서울올림픽주경기장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 수 있었던 몇 안되는 국내 가수이며,[8] 첫 단독 콘서트, 10주년 기념 콘서트, 20주년 기념 콘서트를 모두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치렀다.

'따로 또 같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돌 개인 활동의 보편화를 이끈 그룹이다. 그룹 활동과 개인 활동을 병행한 최초의 아이돌 그룹이자 개인활동으로 대박을 친 몇 안되는 아이돌 그룹. 아이돌 그룹 멤버의 개인 활동이 용인되지 않던 시절 일찍이 멤버 개개인이 솔로 음반, 예능, 드라마, 광고 등 다양한 연예 분야에 도전해 성공을 거두었고, 2000년대 중반에는 방송만 틀면 신화 멤버가 나온다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왕성한 미디어 활동을 보였다.

트랜드에 절대 뒤쳐지지 않으면서도 신화만의 음악적 색깔을 잃지 않는 것이 강점. 신화를 대표하는 장르는 화려한 사운드의 댄스 음악으로, 댄스를 유독 부각했던 1세대 아이돌 그룹 중에서도 퍼포먼스로 가장 유명하다. 퍼포먼스 측면에서 높은 완성도와 이색적인 시도로 좋은 평가를 받아왔을 뿐만 아니라, 댄스 음악을 하는 그룹도 장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모범적인 사례이다.

 

신화 멤버

나이는 에릭(1979년 2월 16일), 이민우(1979년 7월 28일), 김동완(1979년 11월 21일), 신혜성(1979년 11월 27일), 전진(1980년 8월 19일), 앤디(1981년 1월 21일) 순이다. 에릭과 앤디는 둘 다 빠른 년생이지만, 에릭은 데뷔 전 신화 내 79년생들 한정으로 동갑내기 친구로 지내고,[] 앤디는 데뷔 후 전진과 친구로 지낸다. 리더인 에릭과 멤버인 전진과 앤디는 유부남 이다. 다른멤버인 이민우랑 김동완과 신혜성은 결혼을 안 했다.[]

최연장자인 에릭이 팀 내에서 리더를 맡고 있다. 신화컴퍼니 내에서는 에릭과 이민우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모든 멤버들이 주주로서 똑같은 지분을 가지고 있다.[] 결정을 내린 후 최종적으로 서류에 사인하는 일은 에릭이, 비지니스를 위한 미팅은 이민우가 맡아서 한다고 한다.[]

랩 메이킹은 대부분 에릭이 담당하고 안무 메이킹에는 이민우가 참여해 최종적으로 컨펌한다. 프로듀싱과 디렉팅은 이민우가 주로 맡는다

 

신화 장수

2022년 기준으로 데뷔 24주년을 맞은 국내 최장수 아이돌 그룹이다. 게다가 데뷔 이후 한 번도 해체나 멤버의 탈퇴 및 교체 없이 끈끈한 의리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주목받고 있다. 아이돌계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신화 그 자체.

신화가 데뷔했을 당시 1990년대 후반은 아이돌의 평균 수명이 3~5년에 지나지 않았고 덕분에 5년 차 징크스라는 말까지 있었다. 때문에 SM엔터테인먼트 역시 신화를 해체시킨 후 솔로로 계약할 생각이었으나, 신화는 함께 일하던 스텝들을 데리고 다 같이 소속사를 이적하며 그룹을 보존했다. 2000년대 초중반 당시는 매너리즘과 불법 음원 범람, 그리고 소몰이창법 발라드 위주로의 가요계 개편으로 인해 1세대 아이돌들이 지독한 침체기를 겪던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화는 아이돌계의 징크스를 깨고 2004년 7집으로 대상을 수상하며 데뷔 6년 차에 제 2의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7년 차에 전성기를 맞기는 커녕 7년 차인 아이돌 그룹 자체가 극히 드물었다는걸 생각하면 대단한 일. 신화를 이후로 점점 7년 차는 물론 10년 차도 거뜬히 넘어서는 아이돌이 늘어나고 있다.

신화가 데뷔했을 당시는 아이돌 평균 수명이 짧았기 때문에 신화는 10년도 더 전부터 '장수 아이돌', '중견 아이돌'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아이돌계 최고참으로 활동한 기간이 아닌 기간보다 더 많은 셈. 한국 아이돌 최초 정규 6집 활동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던 <너의 결혼식> 활동 시절, 신화는 당시 평균나이가 고작 24.5세에 불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나이 때문에 춤출 때 힘들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 정도로 이 당시 아이돌이란 20대 초반 이하의 어린 친구들이 몇 년 바짝 하고 빠지는 직업이었고 20대 중반도 거의 찾기 힘들었다. 서른이 넘은 현역 아이돌들[]도 많은 지금으로써는 상상하기 힘든 일. 그렇기에 신화는 더더욱 연예계에서 변종으로 여겨졌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군복무로 인한 공백기 4년을 제외하면 그룹 활동을 2년 이상 쉬었던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 평균 앨범 발매 텀은 대략 1년 반 정도다. 한창 빡세게 활동하던 1~6집 시기에는 1년에 한장 꼴로 앨범을 발매했고, SM엔터테인먼트를 나온 이후 7집부터는 그룹활동과 개인활동을 병행하며 앨범 발매의 텀이 길어졌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백기가 2년 이상을 넘어간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심지어 활동이 뜸하다고 원성이 자자했던 시기인 2005년~2008년 조차도 8집은 1년 9개월, 9집은 1년 10개월만에 발매되었기 때문에 평소와 비교해 그다지 긴 텀도 아니었다.[] 최근 아이돌 그룹들과 가요계의 동향을 보았을 때 굉장히 이례적인 사례로,[] 데뷔 20년차 베테랑인 신화가 싱글도 미니앨범도 아닌 정규앨범을 1~2년마다 꼬박꼬박 발매한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행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2022년 기준, 2018년 20주년 기념 앨범 HEART를 마지막으로 4년 동안 공식적인 앨범 활동은 없는 상태이다.[]

그만큼 멤버들 모두 무조건 개인 활동보다 그룹 활동을 무조건 우선시한다. 활동부터 음반 제작까지 멤버들이 최종적으로 책임을 지다보니 준비 기간이 길고, 이 때문에 정규 앨범 활동 최소 1년 전에 멤버들끼리 모여 플랜을 짜놓는다. 그룹 활동을 우선하여 플랜을 짠 후 남는 시간에 개인활동 플랜을 짠다고 한다. 배우 활동을 병행하고 있는 에릭과 김동완의 경우 신화 활동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될 것 같으면 먼저 들어오는 시나리오는 읽어보지도 않는다고 한다. 다만 <연애의 발견> 시나리오가 들어왔을 때는 에릭이 멤버들에게 '~한 시나리오가 들어왔다'라고 말을 꺼내자 멤버들이 오히려 무조건 하라며 계속 등을 떠밀었고 신화 활동을 예정보다 뒤로 미뤘다고 한다.

신화가 얼마나 오랫동안 활동했는지 설명하자면 H.O.T., 젝스키스 다음으로 데뷔하여 god와 동시기에 활동하였고, 동방신기가 막 데뷔해 신인상을 휩쓸 때 가요대상을 받았고,[] SHINee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골든디스크 본상을 수상하였고[], EXO를 2013년 MAMA에서 투표로 이겼다. 2017년 <TOUCH> 로 활동했을 당시 TWICE, 아이오아이 등 신화 데뷔 당시 태어나지 않았던 멤버들이 있는 그룹과도 1위 경쟁을 벌였다.

신화가 데뷔하던 해인 1998년 태어난 다현(TWICE), 큐(더보이즈), 승관(세븐틴) 등이 후배가 되었고 이때 태어난 사람들도 2017년 기준으로 성인이 되었다.[] 신화의 최전성기 시절이었던 2001~2005년 사이 태어난 세대도 2022년 2001~2003년생은 성인, 2004~2005년은 고2~고3으로 성장했다. 이 시기 태어난 전소미, 초원, 안유진, 장원영, 다현 등이 신화의 후배가 되었으며 많은 인기를 얻으며 활동하고 있다. 2021년에는 신화의 최전성기가 지난 이후에 태어난 아이돌도 데뷔했다.

또한 신화가 활동한 시기에만 6개의 정권이 들어섰다[24]. 활동 중 2번째 정권을 맞이하기도 전에 해체하거나, 2번째 정권을 맞이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해체하는 아이돌 그룹들이 많이 있다는걸 생각하면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순서대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1998~2003)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2003~2008) →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이명박 정부(2008~2013) →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박근혜 정부(2013~2017) → 문재인 정부(2017~2022)를 거쳐 윤석열 정부를 맞았다. 덤으로 북한에서도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정권이 교체되었다. 아이돌룸에서도 이것을 언급하며 이제는 남북통일을 바라본다는 말까지 나왔다.

더불어 활동 중 월드컵만 6번 개최되었고, 하계 아시안 게임만 6번, 동계 아시안 게임만 5번, 하계 올림픽만 6번, 동계 올림픽만 6번 개최되었다

 

신화 우정

신화가 24년 동안 그룹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이자, 신화가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 요인 중 하나가 바로 끈끈한 우정이다. 여성층의 인기가 절대적인 남자 아이돌 그룹이지만 이러한 우정으로 이어진 소탈하고 꾸밈없으면서 끈끈한 모습들 덕분에 남성들, 특히 팬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굉장히 호감도가 높다. 흔히들 신화가 단순히 '꾸준히 수요가 있었고 상황이 잘 맞아떨어져서' 장수할 수 있었을거라 생각하지만, 사실상 신화는 지금까지 가장 많은 해체 위기를 겪어본 아이돌 그룹이다. 소속사 문제, 상표권 문제, 금전적인 문제, 건강 악화, 주변의 유혹과 이간질부터 사소한 다툼까지, 아이돌 그룹이 겪을 수 있는 해체 위기라는 위기는 전부 다 겪어봤다. 이처럼 멤버들이 위기를 맞았을 때 계속 연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어준 것은 다름 아닌 서로였다고 한다. 멤버들 또한 서로를 만난 것은 운명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

2003년 SM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이 만료되고 소속사를 나왔을 때, 표면적으로는 특별한 문제 없이 단체로 기획사를 나왔으나, 이는 절대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멤버들의 결속력과 신뢰가 빛을 발한 케이스이다. 처음에는 SM엔터테인먼트에서 몇몇 멤버들에게만 은밀하게 파격적인 조건으로 솔로 계약을 제안했으며,[] 다른 기획사에서도 솔로로 혹은 특정 멤버를 빼고 계약하자며 파격적인 조건과 금액으로 끊임없이 유혹을 해왔다. 그러던 와중에 멤버들끼리 가진 술자리에서 한 멤버가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진심을 토해내자, 멤버들 모두 서로가 같은 마음이라는 걸 깨닫고 똘똘 뭉쳐서 신화라는 팀을 지킬 수 있었다고 한다. 만약 이때 신화 멤버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우정 대신 부와 성공을 택했다면 신화는 예견된 해체 수순을 밟았을 것이다.

흔히들 SM엔터테인먼트가 신화를 탈없이 보내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굉장히 구질구질했다. 당시 신화는 SM엔터테인먼트에 계속 남아있으면 팀의 존속이 어려워질 수도 있겠다는 판단 하에 소속사를 이적하였고, SM엔터테인먼트도 처음에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으나 결국은 신화의 결정을 존중해주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SM엔터테인먼트는 태도를 바꿔 신화의 상표권을 특허청에 등록하였고, 신화 상표권을 오픈월드 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에 넘겼으며, 신화는 오픈월드의 갖은 횡포에 휘둘려야 했다. 이 당시 신화는 모든 멤버가 개인 활동으로도 충분히 대박을 터트린데다, 당시가 지금과 달리 아이돌의 전망이 어둡고 미래가 불완전한 시기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신화 멤버들이 팀의 존속을 택한 것은 매우 어려운 결정이었다.

특히 에릭은 '역대 가장 헌신적인 아이돌 리더'라는 찬양을 받을 만큼 리더십을 발휘했는데, 신화 상표권을 되찾기 위해 직접 법공부를 하고 변호사를 만나러 다녔으며 신화 상표권을 찾아오는데 가장 크게 공헌한 인물이다. 드라마 불새로 톱스타 자리에 올랐을 무렵에도 모 소속사에서 제안한 수십억원의 계약금을 거절하고 팀을 택했으며, 빠듯한 개인활동 스케줄과 군복무가 겹쳐져 멤버들 간의 소통이 전보다 부족해졌을 때에도 멤버 6명이 다같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자리를 주선하며 리더 노릇을 톡톡히 했다.[]

가족도 돈 때문에 싸우고 찢어지는 마당에, 신화는 돈보다 의리를 골라서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김동완에 따르면 멤버들 중 서로에게 도움을 받지 않은 멤버가 없다고 한다. 모두가 곗돈 붓듯이 서로 크게 크게 도와준 적이 있어 멤버들끼리는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앤디네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에도 멤버들이 돈을 모아 수술비를 전부 부담했다고 하며, 이민우가 가족의 부채 때문에 사채를 쓸까 고민할 정도로 큰 금전 부담에 시달렸을 때, 멤버들이 다같이 돈을 모아 거액을 생일선물이라며 건넸다고 한다.[]

신화는 금전적인 것을 넘어 정신적으로도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전진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생모를 만나러 간다고 했을 때, 모든 멤버들이 함께 전진의 생모에게 편지를 썼으며 전진과 동행해 그의 생모를 만나고 왔다. 또한 신혜성이 물의를 일으켜 자숙하던 시절에는, 전진과 에릭이 매일 같이 신혜성의 집을 찾아가 그를 보살펴줬다고 한다.

각종 위기를 함께 이겨내고 희노애락의 순간을 함께 겪어오며 이제는 서로에게 가족이나 다름 없는 존재가 되었다. 전진은 어버이날에 멤버들 부모님께 카네이션 꽃바구니를 보내기도 했고, 신혜성은 멤버들 부모님의 생신을 일일이 다 챙기고 있다고 한다. 신화 멤버들의 부모님들 역시 신화 멤버들을 '아들'이라고 부르며, 멤버들의 개인 콘서트에도 먹을거리를 싸들고 찾아온다.

신화 멤버들의 이미지와 나이로 봐서는 정말 의외지만 서로 유난스러울 정도로 애정 표현이 많고 스킨십이 진한 것이 특징이다. 뽀뽀 모음 18분의 위엄[] 숙소 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팬티를 같이 돌려입었을 정도로 신체 접촉에 관대하다. 일상 생활에서 아무렇지 않게 뽀뽀를 하고 심지어 목이나 이마, 입술에도 하며, 신화 멤버들과 신화창조 중 아무도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덕분에 신화 멤버들이 뽀뽀하는 모습에 후배 아이돌들이 깜짝 놀라거나, 신화가 지나가는 말로 꺼낸 스킨쉽 일화에 MC나 패널들이 기겁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싸울 때는 화끈하게 싸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화끈하게 싸우고 화끈하게 화해하는 것 또한 신화의 우정 비결로, 서운한 감정을 그때 그때 다 말하기 때문에 서로 쌓인 감정이 없다고 한다. 치기 어린 20대 초반에 남들 다 보는 방송국 내에서 자기들끼리 주먹다짐을 한 것은 신화팬들 뿐만 아니라 방송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에피소드.[] 지금도 신화는 커텐을 치냐 마냐를 두고 싸우고 인형을 망가뜨렸다고 싸우고 또 언제 그랬냐는듯 화해하며 살고 있다. 다만 이제는 나이도 들고 철도 들고 싸울 소재도 고갈돼서 주먹질은 안 한다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신화 멤버들 성격이 많이 유해졌다.

신화의 이러한 행보가 이상적인 이유는 아이돌의 우정과 의리가 대중들에게 장점으로 어필하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서로 스스럼 없이 어울리고 우정을 다지는 모습을 보며 환상을 갖게 되고, 소속사는 대중의 환상을 이용해 아이돌의 우정을 상업화한다. 허나 대중은 멤버들이 팀보다는 개인의 이익과 안위를 더 우선시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자신들의 환상이 깨지면 바로 배반한다.[] 그렇기에 신화의 비현실적이고 동화같은 우정은, 대중들에게 감동을 주고 그들로 하여금 대리만족을 느끼게 한다.
또한 아래에 언급하지만 신화의 이런 행보는 예능에서 매우 강한 장점으로 작용한다. 예능 프로그램의 단체 출연에선 출연자들 간의 케미스트리가 매우 중요한데, 신화는 여기에서 시작부터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때문.

사실 신화 역시 불화설에 숱하게 시달린 그룹이다. 당시에는 아이돌이 따로 활동한다는 것이 불화의 징조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아이돌 그룹 최초로 그룹 활동과 개인 활동을 병행한 신화에게는 해체설이 끊이질 않았다. 또한 불가피하게 개인 소속사가 갈라지고, 아이돌 최초로 군입대를 하고, 군복무로 인해 공백기를 겪으며 신화는 10집으로 컴백하기 이전까지 끊임없는 해체설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중들 또한 신화의 불화설에 코웃음치는 수준에 이르렀고, '우정'과 '의리'는 신화의 상징 중 하나가 되었다

 

신화 데뷔 과정

1996년, SM엔터테인먼트는 H.O.T.로 대성공을 거둔 뒤 아이돌 시장의 잠재력을 깨닫게 된다. 이에 이수만은 본격적으로 아이돌 산업에 뛰어들기 앞서 차세대 걸그룹과 보이그룹 멤버들을 찾아 발 벗고 나서는데 이렇게 기획된 그룹이 각각 S.E.S.와 신화였다. 당시 다른 기획사들이 그랬다시피 SM 또한 오늘날처럼 연습생을 대규모로 영입해서 장시간 트레이닝 시킬만한 여건이 되지 않았다. 때문에 처음부터 인기 있고 재능 있는 아이들을 캐스팅 해오는게 중요했는데 그런 점에서 신화는 모범적인 캐스팅 사례였다.

1996년 연말에 앤디가 연습생으로 발탁되었다. 앤디는 미국 오렌지카운티 출신으로 어린 시절 이민을 갔고, 중학생 시절 H.O.T.의 토니 안과 함께 댄스팀 멤버로 활동하며 인기를 끌었다. 두 사람은 캐스팅 디렉터를 통해 이수만과 연락이 닿았고 그와 공원에서 만나 오디션을 보았다. 이때 합격한 앤디는 토니안을 비롯한 H.O.T. 멤버들과 함께 한국에서 연습생 생활을 했고 최종 데뷔조까지 들었다. 그러나 앤디의 부모님이 앤디가 어린 나이에 데뷔하는 것을 반대했고, 회사가 연습생들에게 멤버 선택권을 주어 H.O.T. 멤버들이 토니안과 함께하길 원했기에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로부터 1 ~ 2년 뒤인 1996년 연말 고등학생이 된 앤디는 LA에서 이수만과 우연히 재회했고 이수만은 이때 앤디를 다시 신화의 멤버로 캐스팅했다.

1997년 연초 에릭과 신혜성이 합류했다. 교포인 앤디와 에릭은 미국에 있을 때부터 형제 같은 사이였으며, 유학생인 신혜성도 그 둘과 접점이 있었다.[] 에릭은 앤디와 같은 오렌지카운티 출신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이민을 갔다. 에릭 또한 댄스팀에서 활동하며 인기를 끌었는데, 앤디와 토니안의 증언에 따르면 잘생기고 공부도 잘하고 싸움도 잘하는, 그야말로 그 일대에서 미친듯이 잘나가는 인물이었다고 한다. 토니안이 증언하길 에릭과 같이 공연을 하면 무조건 그가 센터였다고. 에릭은 한인 라디오 방송 관계자의 추천으로 이수만과 노래방에서 오디션을 보아 합격했고, 오디션 합격 전 UCLA를 비롯한 3개 대학에 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수의 꿈을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이수만은 앤디를 캐스팅한 후 그를 LA 오디션장에 데리고 갔는데 이때 합격한 참가자가 신혜성이다. 신혜성은 동생과 단둘이 미국 벨리에서 홈스테이 생활을 하던 유학생이었는데, 주위 친구들이 죄다 연예인 지망생인 탓에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하루는 전미한인가요제에 나갔다가 클릭비의 우연석과 만나 친해졌고, 그의 부탁으로 SM 오디션에 함께 참가했으나 신혜성 혼자 합격했다.[] 앤디가 증언하길 이수만이 신혜성의 노래를 듣고 "너무 좋지 않니?"라고 말하며 기뻐했다고. 본래 가수의 꿈이 없었던 신혜성은 이 오디션 합격을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삼게 되었다.

1997년 상반기에 이민우가 합류했다. 이민우는 전북 남원시 출신으로 데뷔 전부터 전주 전역에서 이름을 날리던 춤꾼이었다. 그 시절부터 쫓아다니는 팬이 있었으며 옷을 협찬받는다는 소문까지 있었을 정도. 집안 사정이 어려웠던 탓에 고등학교 때부터 댄스팀 공연을 하며 직접 생활비를 벌었다고 한다. 상금이 300만원이라는 말을 듣고 서울까지 올라와 전국 댄스경연대회에 참가했다가 고향 친구와 함께 SM으로부터 캐스팅되었다. 연습생 때부터 안무를 하나씩 만들어 이수만에게 검사를 받았다고. 이수만이 유독 예뻐했는지 종종 다른 연습생들 몰래 용돈 하라며 수표를 쥐어줬다고 한다. 20년 전 이민우가 썼던 일기

1997년 하반기에 전진이 합류했다. 전진은 서울 송파구 출신으로 송파 일대에서 유명한 춤꾼이었다. 배우 최필립과 함께 댄스팀으로 활동했으며, '오금고 쫄바지'라는 별명으로 유명세를 탔다. 불우한 가정에서 자라 춤만이 유일한 삶의 돌파구였으며, 가수가 된 이유는 생모를 찾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학교 선배인 강타의 추천으로 SM 오디션을 보아 합격하였고, 전진이 연습생에 합류하며 이민우의 친구는 연습생에서 퇴출되었다.[]

1997년 11월 3일 마지막 멤버인 김동완의 합류로 신화가 결성되었다.[] 학교 록밴드 보컬로 활동했는데, 저 신화 멤버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인사였다. 기획사들이 '김동완 전담반'을 만들고 캐스팅 매니저까지 따라붙었을 정도. # 휘문고 모세라는 별명이 유명한데, 김동완이 나타나면 모세의 기적처럼 길이 쭉 갈라진다 하여 생긴 별명이었다. 김동완은 월드뮤직 엔터테인먼트 연습생으로 있다가 SM에 캐스팅되었다.[] SM이 록커가 아닌 아이돌로 데뷔하기를 권하자 처음에는 거부했으나, 나머지 신화 멤버들 5명과의 첫 대면 후 애들이 멋있어서(...)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신화 예능

이들의 활약상은 한줄로 요약할 수 있다. 이른바 예능돌, 비글돌의 원조. 광견돌이라고도 카더라

사실 멤버 개개인의 예능감이 예능인 수준은 아니다. 몇몇 멤버는 예능 울렁증이 있다고 고백하기도... 그럼에도 신화 예능이 반응이 좋은 이유는 멤버들의 폭발적인 케미스트리 때문. 평소에는 얌전하던 멤버도 6명이 뭉치면 예능 울렁증이고 낯가림이고 뭐고 똘끼 넘치는 비글로 변모한다. 베테랑 예능인들도 케미가 안 맞으면 재미를 보장하기 힘든데 신화는 이미 케미에서 반은 먹고 들어가는 것. 단순히 서로 협력하는 것 뿐만 아니라 멤버들끼리 하는 '가식 따위는 개나 준' 수준의 질펀한 입담과 상호 디스, 몸개그 면에선 신화를 따라갈 만한 아이돌 그룹이 거의 없다. 이 때문에 보통 아이돌 그룹의 단체 예능은 팬층을 제외하면 수요가 없어 반년 이상 방영하기 힘든데 신화의 단체 예능들은 늘 장수했다.

특히 2000년대 예능계를 휩쓸었던 아이돌 그룹이자 2000년대 예능의 살아있는 유물들. 때문에 신화와 함께 방송을 했던 중견 예능인들은 종종 신화에 대해 말하며 반농담 삼아 '옛날 예능의 상징들'이라 일컫기도 한다. 또한 체육돌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아이돌로, 몸 쓰는 예능에서 뛰어난 운동신경과 지독한 승부욕을 바탕으로 몸을 사리지 않아 제작진들이 사랑하는 아이돌이었다.

1999년 2집 <T.O.P>로 인기몰이를 한 후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예능에서 러브콜이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데뷔 3년차가 맞나 싶을 정도로 폭발적인 예능감을 선보였다. 2000년도에 방영한 KBS <신화창조2000>은 '신화가 학생들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포맷이었다. 이 프로에서 신화는 몸치 학생들에게 힙합춤도 가르쳐줬는데 지금은 보기 힘든 에릭의 윈드밀, 이민우의 베이비[], 심지어 신혜성의 베이비도 볼 수 있다.[] 이후 KBS는 신화를 간판으로 내세운 리얼리티 특집을 잇따라 방영했는데, <신화의 고공침투>는 '신화가 스카이 다이빙을 하는' 포맷이었고, <신화의 X파일>은 '신화가 공포체험을 하는' 포멧이었고, <신화의 드리븐>은 '신화가 카 스턴트를 배우는' 포맷이었다. 정말 별걸 다 했다

2000년 10월부터 2002년 10월까지 김동완은 <김동완의 텐텐클럽>의 DJ를 맡았다. 아이돌 최초 라디오 DJ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사실상 거의 신화방송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신화 멤버들이 자주 출연해 여러 전설적인 순간들을 남기고 갔다. 이후 2002년에는 신혜성이, 2003년에는 이민우가, 줄줄이 라디오 DJ를 맡았다.

2001년 MBC의 '목표달성 토요일'의 한 꼭지인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에 신혜성과 이민우가 레귤러로 출연하였고, 전진은 합숙 4주차부터 레귤러로 합류했다. 이때 유재석은 신화에게 '화동생들'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는데, 십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예능에 출연하면 종종 불리는 별명. 한편 김동완은 2001년 MBC 목표달성 토요일의 꼭지였던 <애정만세>에 출연해 NRG의 이성진과 함께 '주접 브라더스'로 활약하며 프로그램의 개그를 책임졌다.

전진은 2000년대 초중반까지 인기를 끌었던 예능 프로그램 출발 드림팀의 단골 게스트였으며 종종 1위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왕중왕전에서는 2위를 했는데, 뇌혈종으로 입원해 의사로부터 '내일이 고비입니다'라는 판정을 받고 기적적으로 살아난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이외에도 전진은 신화의 '예능 담당 멤버'로서 다양한 예능 프로에서 활약을 했다.[]

2001년 9월 23일 게릴라 콘서트에 출연하여 총 11,569명의 관객을 동원하였다. 멤버들이 펑펑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000년대 초반에 KBS에서 방영한 MC대격돌 여걸파이브,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대단한 도전> 코너의 단골 게스트였다. 이 당시 신화는 예능에서 미식축구, 본국검법, 유도, 탁구 등 운동이라는 운동의 거의 다 마스터하고 다녔다. 같은 방송국 KBS 해피투게더에서도 출연할 때마다 레전드를 찍고 갔는데, 특히 2004년과 2013년에 찍은 회차가 레전드로 꼽힌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방영된 SBS 간판 예능 X맨을 찾아라의 단골 게스트이기도 했다. 완전체 출연은 2회 뿐이지만 멤버 각 개인이 거의 매회당 1명 이상 출연했다. X맨 전 회차 중 신화 멤버가 없는 회차를 세는 편이 더 빠를 정도. 앤디와 전진은 반고정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자주 출연했다.

2004년 10월부터 2005년 4월까지 방영된 SBS 리얼로망스 연애편지 시즌1은 신화방송의 원류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신화가 한 명의 여자연예인을 두고 사랑싸움을 하는' 포맷이었다. 당시 주말 프라임타임 시간대를 차지하고 시청률 20% 이상을 안정적으로 확보했던 인기 예능이었으며, 한가인, 하지원, 김민정, 김정은 등 당대 내로라하는 여배우들이 게스트로 출연하곤 했다. 말이 사랑싸움이지 신화 멤버들끼리 승부욕을 불태우는 모습이 인기를 끌었던 프로.[]

2005년 3월부터 11월까지 Mnet <배틀신화>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다. '제2의 신화가 될 아이돌 그룹을 만들겠다'라는 포맷으로, 신화 멤버들의 멤버 선정을 통해 배틀이라는 보이그룹이 탄생했다. 이 프로에 출연했던 현역 아이돌로는 승리, 전효성, 가인, G.NA 등이 있다.[]

2007년 김동완은 이경규의 몰래카메라 마지막회에 출연해 신화 멤버들에게 몰래카메라를 시도했다. 주제는 '김동완의 프로포즈 대작전'으로 김동완이 문지애 전 아나운서에게 결혼 프로포즈를 하는 내용이었다. 김동완의 지극이 어설픈 몰래카메라와, 신화 멤버들의 지극히 인간미 넘치는 모습 덕분에 지금도 인터넷 상에서 종종 회자된다.

전진은 2006년 무한도전 신화특집에서 '무한도전 멤버로 데려가고 싶은 신화 멤버 1위'를 차지했고, 2008년 아이돌 중 최초로 무한도전 멤버로 합류했다. 초기에는 잔스틴 기믹으로 추격전을 비롯해 힘 쓰는 특집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여러 명장면들을 남겼으나... 당시 전진에게 닥친 최악의 상황과 맞물려 전진에게는 물론 팬들에게도 아픈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당시 전진은 신화 상표권을 가지고 있었던 오픈월드에 의해 살인적인 스케줄을 돌며 건강 상태가 한계치에 다다랐고,[] 소속사 문제에 더해 개인적인 악재들이 잇따라 일어나며 공황장애와 불면증을 앓았다. 전진도 무한도전을 그만두려고 할 지경에 이르렀지만 회사 때문에 그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무한도전 제작진 역시 초반에는 열정적이었던 전진이 갈수록 의욕을 잃어가자 불만이 많았다. 전진 팬이 설명한 상황 설명 글

2012년 3월부터 2014년 1월까지[] JTBC에서 신화를 간판으로 한 예능 프로그램 신화방송을 진행했다. 종편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았던 시절 JTBC 예능에 인공호흡기를 달아준 개국공신이었다. 시청률로 보나 화제성으로 보나 드디어 JTBC에도 예능다운 예능이 탄생한 것. 포맷만 놓고보면 사실상 아이돌 리얼리티 예능이라고 봐야 하지만, 팬층을 넘어 대중적인 히트를 치고 1년 이상 장수했기 때문에 아이돌 리얼리티라는 편견에서 자유로운 편. 자세한 내용은 신화방송 문서 참조.

당초 신화방송은 리얼로망스 연애편지를 함께 했던 SBS에서 방영할 예정이었으나[] 당시 신화 상표권 및 신화 관련 업무의 전권을 소유하고 있던 오픈월드에 의해 엎어지고 JTBC에서 방영하게 되었다. 이 일 때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신화는 신화방송을 시작한 후부터 2013년 9월 런닝맨에 출연하기까지 약 1년 6개월간 SBS로부터 암묵적인 출연정지를 당한 바 있다.

2013년 5월 4일 SNL 코리아 시즌4 11화에 출연했다. 원조 예능돌의 모습을 보여 줄수 있을지 기대를 모았는데, 기대 이상의 역대급 레전드편을 만들어버렸다. 19금이 109금이 되는 충공깽 수준. 

2013년 9월 1일 SBS 런닝맨에 단체[55]로 출연하였다. 오프닝에서 유재석은 신화를 보고 기겁하며 '얘네는 상대팀을 제압하고 자기들끼리 경쟁하는 애들이다'라고 신화와의 팀 대결을 걱정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날 신화는 런닝맨 방송 사상 최초로 전게임 전승, '게스트 올킬'의 신화를 이뤄냈다. 이후 신화는 2015년 3월 1일 제국의 아이들과 공동 게스트로 다시 한번 런닝맨에 출연하였다. 당시 인간탑 쌓기 게임에서도 신화의 팀워크와 우정을 확인할 수 있는데, 다른 팀들은 게임을 끝났다는 걸 알자마자 탑이 무너진 것과 달리 신화는 위에 있는 멤버들이 다치지 않도록 끝까지 버틴 뒤 차례대로 내려왔다.

V LIVE의 유료 방송 서비스 V앱 플러스를 통해, '신화 만 18세'라는 자체 제작 리얼리티 예능을 방송했다. '신화 만 18세'는 방송통신위원회에서 15세 관람 등급 판정을 받았으나 신화 측은 편집할 의도가 없다고 밝혔고 V LINE은 이 때문에 연령별 인증 시스템을 개발하게 된 것. 신화 멤버들끼리 여행을 가는 것이 방송의 포맷이며 지상파 방송에서는 볼 수 없는 신화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들과 음주가무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2018년 8월 5일에는 1박 2일에 단체로 출연했는데, 점심 승부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뒀지만 이후부터는 이상하리만치 1박 2일 멤버들에게 밀리면서 몽땅 패배하는 바람에 졸지에 산행까지 하게 되었다.

2018년 현지에서 먹힐까 태국편에 출연했던 이민우에 이어 2019년에는 에릭이 현지에서 먹힐까 미국편에 출연하게 되었다. 이때 함께 출연했던 정준영이 촬영 도중 하차하게 되어 이민우가 대체투입, 신화 멤버간의 케미를 보여주었다. 이후 에릭과 앤디가 세빌리아의 이발사라는 프로그램에 동반출연.

2020년은 안식년으로 들어가 개인 활동에 중점을 두고 있다. 에릭은 드라마를 김동완은 연극, 신혜성은 라디오, 전진과 앤디는 예능에 출연하고 있다.

 

신화 그외정보들

2017년 멜론에 수록된 음원을 기준으로 정규 앨범, 비정규 앨범, 싱글을 모두 합쳐 총 347곡의 음원을 발매했으며 멤버들의 솔로 활동까지 합치면 1050곡의 음원을 발매했다. 음원부터 시작해 단체 활동과 개인 활동 정보량이 너무 방대한데다 10년, 20년 전 정보는 찾기도 어렵다. 이쯤되니 신화 멤버들도 자기 노래를 헷갈리고 자기들 에피소드를 헷갈리는 상태.[] 너희 노래인데 왜 알지를 못하니?


'신화 화이팅'이라는 의미로 신화산이라는 구호를 사용한다. 신화는 산이라고 간략하게 외칠 때가 많다. '왜 신화산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이 난무했으나 현재 그 유래는 팬들은 물론 신화 본인들조차 알지 못한다. 가장 유명한 설로는 세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신화 멤버들이 모노노케 히메의 여주인공 산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설, 둘째는 김동완이 데뷔 전인 1997년 MBC 드라마 <산>에 아역배우로 출연했기 때문이라는 설, 셋째는 단순히 '신화(神話)' + '화산(火山)'이라는 설 등이 있다. 2012년에 발매된 신화의 콘서트 프로덕션북에는 '산'이 'Volcano'로 번역되어있다.


손을 앞으로 쭉 뻗으며 "우리는 ~ 신화입니다!"라고 외치는 캐치프라이즈를 가지고 있다. 풀 멘트는 "혜성처럼 전진하는 우리는 ~ 신화입니다!"이다. 아이돌 캐치프라이즈 중에서는 가장 오래되었다.


콘서트 밴드 세션 및 댄서 라인업이 무진장 화려하고[68] 돈을 꽤나 바르는 대신 티켓값은 다른 아이돌에 비해 다소 비싸다. 콘서트 세트리스트가 수록곡보다는 타이틀곡 위주로 구성되는데다 Brand New, <Hey, Come On!> 같은 단골곡들이 빠지지 않아 오랜 팬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좀 식상하다는 평. 대신 같은 곡이더라도 매 콘서트마다 밴드 편곡을 다르게 하고 있다.


2003년 참여정부 때 북한 평양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다. 영상 원래는 <너의 결혼식>을 부르려다가 가사가 그렇고 그런 관계로 <Perfect Man>을 불렀다. 반응은 당연히 문화충격 그 자체. 에릭은 이날 태어나서 가장 열심히 춤을 췄다고 했는데, 에릭 아버지의 고향이 다름 아닌 평양이다. 이때 신화는 북한 공연 관계자들과 같이 술도 마시고 형동생할 만큼 친해졌는데 서로 헤어지면서 마음이 짠했다는 슬픈 일화가 있다. 조만간 재회가 이루어질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아직은 아닌 듯 하다.


4집 활동곡 <Hey, Come On!>과 <Wild Eyes>의 경우 앤디가 불가피하게 활동에 불참했던 탓에[69] 앤디의 파트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데, 이후 콘서트에서 <Hey, Come On!>과 <Wild Eyes>를 부를 때에는 전진 파트의 일부를 앤디가 나누어 부르게 되었다. 이런 사정으로 앤디의 재합류 이후 발표된 5집 역시 앤디의 파트가 안습한데, <Perfect Man>과 <I Pray 4 U> 모두 마지막 후렴 사이에 앤디의 랩 파트를 뒤늦게 끼워놓은 티가 팍팍 난다. 차라리 처음과 마지막의 영어 나레이션 파트가 전부인 <First Love>가 낫다.


신화 본인들이 의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유독 노래 속에 몬더그린이 많기로 유명하다. 대표적으로 <Perfect Man> 간주 부분의 '박경림'이라던가(...),[] <너의 결혼식> 때 당시에 있지도 않았던 코그모를 언급한다든가, <Brand New> 전진 랩 부분의 '시간은 많아 But 참치는 안 와'라던가(...),[] <Brand New> 신혜성 하이라이트 부분의 '저 손에 애벌레 죽어'라던가(...),[] <This Love> 후반부 에릭의 영어랩에서 들려오는 '시스템에릭'이라던가 '끝말잇기'라던가... 어느샌가 이게 인터넷상에 퍼져서 선술한 내용을 비롯한 몬데그린을 정리해둔 동영상까지 존재한다. # 계속 듣다보면 정말 원래 가사로 더 이상 들리지 않을 수 있다(...).


체육돌계 아이돌의 레전드. 멤버들 모두 수준급의 운동신경을 지닌데다 승부욕도 엄청나고 몸도 사리지 않아, 2000년대 예능에서 말 그대로 날아다녔다. 전진은 동시대 연예인들 중 운동신경 좋기로 손에 꼽히는 만큼 더 말해봤자 입만 아플 정도. 2002년 프로그램 촬영 도중 사고로 뇌혈종으로 퇴원한지 사흘만에 출발 드림팀 1기 왕중왕전에서 2위를 거머쥐었다[]. 신혜성은 태권도 공인 4단 유단자에 공중제비를 돌며 번지점프를 하고 다녔고, 앤디는 연예인 천하장사 출신에 도약도 없이 오로지 주먹 힘만으로 기왓장 11장을 박살내고 다녔으며, 이민우는 강호동과 몸싸움을 해서 그를 뒤집어 던졌다. 런닝맨에 신화가 출연했을 때 유재석이 괜히 기겁한 게 아니다. 농구, 피구 등 구기 종목도 굉장히 잘한다. 다만 유일하게 못하는 운동이 족구인데, 해본 적이 없어서라고... 지금 신화가 20대였으면 아육대 출연금지를 당했을 거라는 농담도 있다.


그러나 운동신경이 좋은 것과는 별개로 멤버들의 몸상태는 하나같이 매우 좋지 않다. 멤버들의 각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다들 한 번 이상 큰 사고나 부상으로 뉴스를 탔다. 김동완은 드라마 촬영을 위해 이동을 하던 중 교통사고로 그야말로 죽을 고비를 넘겼으며, 같이 타고 있던 코디네이터가 사망했고, 본인은 한동안 함묵증을 앓았다. 에릭은 2006년, 드라마 늑대 촬영 중 교통사고를 당해 드라마가 3화만에 종영되었다. 전진은 촬영 도중 부상으로 인한 뇌종혈로 의사로부터 오늘 밤이 고비라는 진단을 받은 적이 있으며, 무한도전에 합류했던 시기에 오픈월드의 횡포와 혹사에 가까운 스케줄로 부상 입은 꼬리뼈 수술조차 받지 못하고 군입대를 했다. 만약 더 방치해뒀으면 하반신이 마비되었을 수도 있다고... 신혜성은 양쪽 십자인대가 3번이나 파열되었으며 공연을 중단하고 병원으로 이송된 적도 있고 한동안 목발을 짚고 활동하기도 했다. 또한 신혜성을 제외한 모든 멤버가 허리 디스크를 앓은 전적이 있다. 앤디는 복대를 차고 음악방송에 출연한 게 목격되기도... 이민우의 경우 어린 시절 사고 때문에 원래 허리가 좋지 않았는데[] 춤을 전공으로 삼다 보니 상태가 악화되었다.


그런 관계로 신혜성은 아예 병역면제 판정을 받았고, 앤디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았다. 앤디는 검정고시까지 보며 무리해서 현역으로 입대했지만[], 한동안 옷 속에 복대를 차고 활동해야 했을 정도로 허리디스크가 심하다.


역대급으로 스킨십이 많은 보이그룹. 스킨십이 워낙 자연스럽고 가족처럼 보이다보니 RPS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편이다. 숙소 생활 시절 다같이 샤워하면서 친해졌고 속옷도 내꺼 네꺼 구분 없이 돌려입었었을 정도로 서로 신체 접촉에 관대하다. 포옹, 백허그, 볼뽀뽀 같은 단순 애정표현은 기본이고 가끔 목이나 입에 키스하나 몸을 만지는 등 수위 높은 장난도 웃으면서 한다. 팬들이 만든 뽀뽀 영상이 기본 10분을 초과할 정도. 


멤버 전원이 흡연자인 사실상 유일한 아이돌 그룹이었으나, 2000년대 후반 경에 김동완은 금연에 성공했다. 에릭도 금연을 시도했지만 '신화 만 18세' 방송을 보아선 실패한 것 같다. 특이하게도 다른 아이돌들과 달리 흡연 사실을 숨기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멤버들이 피는 담배 브랜드까지 팬들이 다 꿰고 있다. 그런데 이 애연 그룹은 2004년 금연송을 불렀으며, 한때 애연 가수였던 윤종신이 그 금연송의 작사작곡을 맡은 바 있다[]. 다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


연예계에서 의리로 유명하며 같은 스텝들과 오래 가는 편이다. 전진은 백댄서에게 차를 뽑아주었고, 에릭은 매니저들에게 스포츠카와 오토바이를 선물해줬으며, 이 외에도 전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엄청 잘 챙겨준다. 김동완은 같이 일했던 매니저가 생활고를 겪었을 때 3천만원을 지원해준 바 있다. #


지금은 신화가 국내 수많은 아이돌들의 롤모델로 꼽히고 있지만, 신화도 한때는 롤모델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일본의 SMAP이다. 신화가 SM엔터테인먼트를 나올 때 에릭이 벤치마킹했다고 밝힌 그룹. 최근에는 예전만큼 교류가 없으나, 개인적으로도 신화와 친하다. 쿠사나기 츠요시가 엠넷에서 한국 데뷔 무대를 가졌을 때 신혜성이 츠요시에게 먼저 다가온 것을 계기로 친해졌다고. 신혜성의 일본 데뷔를 다룬 다큐멘터리에 츠요시가 나레이션을 맡았으며, SMAP이 리메이크한 사와다 켄지의 <Tokio>에 에릭이 피처링을 해주었다.


하하에 따르면, VJ 시절 그를 챙겨준 유일한 아이돌이 바로 신화였다고 한다. # KBS 투명인간에 신화가 출연했을 때 하하가 이 이야기를 하며 울컥하자 강호동과 전진도 덩달아 눈물이 고였다. 하하는 이 시절이 정말 마음에 사무쳤는지 이전부터 신화에게 자주 고마움을 표하곤 했다.


싸이에게 처음으로 곡을 받은 가수였다. 작곡가 지망생이었던 싸이는 신화 1집 데뷔곡으로 자신의 곡이 뽑혀 작곡가로서 데뷔할 기회를 갖게 되었으나, SM은 당시 IMF 상황에 맞는 [해결사]로 곡을 바꾸어버렸다. 참고로 싸이가 신화에게 줬던 곡은 [오! 사랑해]. '내가 유명 작곡가나 가수였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에 이때부터 가수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싸이의 곡이 실제로 신화 앨범에 실리게 된 것은 신화가 SM을 나오고 나서이다. 2004년에 발매된 정규 7집 <Brand New>의 수록곡 중 하나로 [위하여 (Cheers!)]가 실리게 된다.


이수만을 '이수만 아저씨', '이수만씨', '수만이'(...)라고 칭했던 역대 유일한 SM 소속 아이돌. 이수만이 탈세 혐의로 해외 도피를 했을 때는, 음악방송 1위 소감으로 "이수만 아저씨, 어디 계세요?"라는 드립을 쳤는데, 이때 신화는 아직 SM 소속이었다(...) 상표권을 두고 갈등하던 시절에는 서로 공개 디스도 서슴치 않았는데, 이수만은 신화가 있는 시상식에서 "우리 회사 나가서 잘된 사람 없다."라며 신화를 저격했고, 신화도 라디오에서 (신혜성이) "SM의 약자는 Small Mind다"라며 이수만을 저격했다. 그러나 시간이 한참 흐른 현재는 공식적으로 화해한 상태. 2012년 경에는 명절에 안부 인사도 주고받는다고 발언했다.


인터뷰를 하면 꼭 받는 3대 질문이 '장수, 나이, 결혼'이다. 무려 20대 중반부터 빠지지 않고 들어온 질문인데, 이는 신화가 20대 중반부터 이미 국내 최장수 아이돌이었기 때문. 너무 자주 받는 데다 나이나 결혼은 인터뷰 질문으로써 썩 유쾌한 소재가 아니다보니, 신화창조는 물론이거니와 신화 또한 가장 꺼리는 질문이다.


이미 아는 사람들은 알고 있겠지만, 본래 SM은 H.O.T가 아닌 신화를 메인 그룹으로 성장시키려고 했었다. 실험적 테스트 격으로 H.O.T를 먼저 데뷔 시킨 후 반응을 보고 신화를 데뷔 시키려고 했는데 H.O.T의 인기가 대한민국 전체적으로 반향을 일으키자 H.O.T를 더 밀게 된다. 이후에 어찌저찌 신화도 데뷔를 했는데 초반에 H.O.T에 약간 묻히는 감이 있었다.[] 하지만 신화는 나름 신화만의 매력으로 두터운 팬덤층을 만들어가기 시작했고, 이후 콘서트, 예능 등등 방송 출연도 많이 하게 된다.


신화의 미공개곡으로 [오! 사랑해], [21C], [Give it], [You Can't Stop My Way], [이별속의 아픔], [Coda], [할 수 있다면], [너를 안아], [빛 좋은 개살구]가 있다. 처음엔 미공개곡으로 인터넷에 풀렸으나 [Maybe]처럼 후에 정식으로 발표된 곡도 있다.
신화 5집에 수록된 [Endless Love]에 관한 이야기. 신화가 5집을 냈을 땐 마지막 앨범 하나만 남겨둔터라 재계약문제로 매우 예민했던 시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역대 가장 광기어린 집착과 다크함을 뿜어내는 [엔러]가 (비록 싢이 직접 만든 곡은 아니지만) 이수만을 향한 노래가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았다. 그 이유인즉 선배 그룹 H.O.T.가 해체 전 발표한 5집 앨범에 [Natural Born Killer]라는 곡이 토니가 이수만을 저격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소문이 있었고 평행이론급으로 '해체와 5집'이라는 공통점이 신빙성을 더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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