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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클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2. 10. 22.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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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5월에[] 대성기획 (現 DSP미디어) 소속으로 데뷔한 대한민국의 4인조 걸그룹이다.

 

핑클 특징

지금까지도 많은 걸그룹 후배들의 컨셉과 이미지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그룹이다.
핑클은 청순함, 귀여움, 성숙함, 섹시함 등 다양한 컨셉으로 어필하며 여러 곡에서 매번 다른 컨셉을 보여주었다. 신부 컨셉, 섹시한 걸스힙합까지 했으니 정말 걸그룹이 할 수 있는 어지간한 컨셉은 다했다고 보면 된다.[] 또한 걸그룹 최초로 정장 컨셉(Now), 교복 컨셉(Feel Your Love)을 선보였다. 이처럼 후배 걸그룹들이 많이 하고 있는 소녀스러움을 어필하는 컨셉에서 섹시함을 어필하는 컨셉으로 바뀌는 과정을 성공적으로 해내어 본보기가 되고 있는 걸그룹이다. 핑클이 만들어낸 걸그룹 컨셉의 구도는 지금도 많은 걸그룹들이 시도하고 있다.

 

핑클 맴버

핑클 그룹명

풀 네임 발음 : 파인 킬링 리버티 (영어)[ 혹은 피네 킬링 리버티 (영어 + 이탈리아어)

Fine Killing Liberty: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것을 끝낸다'는 의미이다.

주의할 점은 '끝'을 뜻하는 이탈리아어(Fine: 피네)와 영어(Killing Liberty)의 합성어이기 때문에 FIN.K.L이라는 표기를 영어(Fine;파인)로 이해해버리면 의미없는 말이 되어버린다.[] 때문에 파인 킬링 리버티가 아닌, 피네 킬링 리버티라고 발음하는 것이 맞다. 프랑스어로는 e가 없는 fin이므로 핀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저 시절에는 저런 어감이 좋은 걸 만들어 놓고 역두문자어 형식으로 단어를 대입시키는 제로베이스, 일명 끼워맞추기 작명 스타일이 유행했는데, 덕분에 문법이나 컨셉 같은 걸 따질 만한 단어 조합은 아니게 되었다.[]

팀 이름의 유래는 뮤 출신 김준희가 소속되어 있을 당시, PC통신을 기반으로 이들의 데뷔 소식이 나오면서 자체 팬클럽이 제안한 이름으로 데뷔 전부터 PC통신 등지에서 핀클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본래 핑클 측은 '젤럭시' 등의 여전사틱한 이름도 거론했지만 핀클이라는 이름이 사용되었으며, 추후 발음하기 편한 '핑클'로 최종 확정되었다. 기억하기 쉬운 간결한 이름이 오히려 어린아이들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까지 '핑클'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키는 데 도움이 된 것이다. 다만 2013년 5월 30일, 이효리가 라디오스타에서 핑클의 풀네임과 그 뜻을 언급하면서 굉장히 부끄러워했다.

핑클을 생각하면 왜 저렇게 지었을까 의문을 가질수 있겠지만 원래 대성기획에서 준비중이던 그룹은 힙합걸그룹이었고 S.E.S.의 데뷔로 기획을 현재 핑클의 이미지로 변경하였다.

 

핑클 데뷔전

대성기획에서 젝스키스 다음으로 야심차게 기획한 아이돌. 본래에는 같은 회사 출신의 중고신인 김준희를 기반으로 그녀가 리더를 맡아 한국의 TLC로 결성하기로 되어있었고 그에 맞춰 훗날 '타샤니'로 데뷔하게 되는 '애니'[] 등 힙합 삘이 제대로 나는 연습생들이 있었지만, 이후 이호연이 그룹 컨셉을 힙합에서 귀여운 댄스 그룹으로 가기를 원해서 멤버들이 재구성 되었다고 한다. (김준희, 애니, 옥주현 3인 걸그룹에서 '김준희'가 빠지고, 이진과 성유리가 합류하여 음반 녹음을 하였으나, 이호연 사장이 보기에 그 당시 S.E.S의 위상을 따라가기는 무리라는 판단하에 '애니'를 빼고 다른 멤버를 추가하기로 결정하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 마지막 멤버로 이효리가 합류하게 되었다. 이로써 핑클은 4인조 데뷔를 하게 되었다.) 

1997년 하반기쯤 합류한 옥주현은 이미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별밤뽐내기 연장원 출신이었다.[] 라디오에서 옥주현이 부른 머라이어 캐리의 'Hero'를 들은 대성기획 사장 이호연이 직접 옥주현과 컨택해서 핑클 첫 멤버로 합류시켰다. 옥주현은 성악을 전공하여 대중가수에는 생각이 없었으나[4] 이호연 사장의 설득을 통해 연예계에 발을 딛게 된다. 옥주현이 힐링캠프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당시 이호연은 옥주현을 처음 보고 왜 이렇게 뚱뚱하냐고 돌직구를 던졌으나, 옥주현은 나는 성악하는 사람이니 상관없다고 맞받아쳤다고 한다. 그러자 이호연은 너 아이돌 시켜준다는데 뭐가 싫냐며, 여자는 살빼고 쌍꺼풀 수술하면 확 바뀐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또한, 젝스키스 콘서트를 공짜로 보여주며 꼬셨다. 그런데 데뷔 날짜가 다가오는데도 수술을 안 시켜주다가 뒤늦게 시켜줘서, 데뷔하고 쌍꺼풀이 부은 채로 활동했다.

그 이후로 옥주현은 핑클 결성에 많은 부분에 영향력을 끼치게 되는데, 이진 역시 옥주현이 캐스팅해 온 멤버다. 이진은 은광여자고등학교 2학년 재학시절 강남 일대에서 유명한 얼짱이었는데, 옥주현의 친구가 이진과 아는 사이였다. 그래서 옥주현은 직접 은광여고로 찾아가서 단역 연기자 출신인 이진에게 오디션을 볼 것을 요청했고 에코의 '행복한 나를'을 부른 이진은 핑클의 두 번째 멤버가 되었다.

성유리는 1997년 5월 교내 사생대회에 나갔다가 김동완, 유진, 이효리, 김상혁 등등을 캐스팅한 바 있는 캐스팅디렉터에 의해 발굴되었다. 당시 캐스팅 디렉터는 눈에 띄는 미인이었던 성유리에게 명함을 주면서 젝스키스가 있는 곳이라고 했으나, 성유리는 그 당시 의사가 꿈이었고 모범생이었기 때문에 가수가 될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 9월에 부모님 몰래 대성기획에 오디션을 보러간다. 당시 옥주현이 성유리의 오디션을 보았고, 이호연은 옥주현의 말을 듣고 핑클 멤버로 합류시켰다.

남은 한 자리엔 '애니'부터 시작해서 영턱스클럽의 멤버 전현정과 후에 클레오로 데뷔하는 멤버 채은정 등[] 많은 가수 연습생들이 거쳐갔지만 모두 핑클과는 인연이 되지 못했으며, 옥주현, 이진, 성유리 3명은 확실하게 모였지만 소속사 사장의 고집으로 꼭 4인조[]로 데뷔해야 했고 세 명이 캐스팅 된 이후 긴 시간 동안 네 번째 멤버를 발탁하기 위해서 공을 들였다. 이 모 기획사에서 힙합그룹[]을 준비하는 중이던 이효리가 마지막으로 그룹의 멤버로 확정되었다.

이효리는 당시에도 주변 지역에 소문난 유명인이었고, 압구정동 레스토랑에서 알바하던 중 캐스팅 디렉터에 의해 발굴되었다. 힐링캠프[]에서 이효리가 밝힌 바에 따르면, 어느날 대뜸 '나 이호연이요'라고 전화가 와서 사장을 만났다고 한다. 만나서는 노래나 춤 하나도 안 시켜보고 얼굴만 보고 바로 뽑았다고 한다[]. 참고로 이효리는 과거 H.O.T. 팬이어서 SM 회사 앞에서 토니안을 기다리다가 SM에 캐스팅되어 연습생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이효리가 과거 몸담고 있던 회사에서 이효리를 상대로 부적절한 계약을 하고 있던 점을 파악한 DSP 측이 이효리의 가능성을 높게 판단하여, 쿨하게 위약금을 던져주고 이효리를 데려오면서 핑클의 마지막 멤버가 되었다. 최근 한 방송에서 룰라의 이상민, 샵의 이지혜가 같은 소속사(당시 월드뮤직)에서 연습생으로 있던 것을 기억한다며 말하기도 했다.

이후 PC통신에서 그룹명 공모를 받아 "핑클"로 정했으나 원래 원년 후보멤버였던 김준희의 팬들이 지정해줬던 '핀클'로 확정을 지었다가 발음이 좋지 않다고 판단 핑클로 변경을 하고 이걸로는 부족했던지 상단과 같은 짬뽕 단어의 약자를 핑클로 부르자고 했다.

그렇게 이 4명의 소녀는 핑클로서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핑클 데뷔후

1998년 4월 이효리의 합류 이후 급하게 자켓 재촬영과 음반 리디렉팅을 거쳐, R&B 발라드곡 Blue Rain으로 데뷔했다. 사실

 

1998년 5월 17일 SBS 인기가요에서 첫 공식 음악 방송 데뷔를 치렀으며 R&B 발라드곡 Blue Rain의 라이브 무대로 데뷔했다. 차별성을 위해 R&B 그룹을 표방하고 청순한 미모와 뮤직비디오가 인기를 얻으면서 성공적인 출발을 했다. 최고 순위는 SBS 인기가요에서 2위(1위후보), MBC 음악캠프에서 2위. 29만장의 음반판매량을 기록하며 신인이 이 정도면 차세대 대세가수로 충분히 주목할 만한 성적이었다.

 

하지만 이쁘장한 외모에 다분한 끼를 가지고도 얌전하게 발라드만 부르는 것으로는 2% 부족했다. 옥주현이 훗날 밝힌 바에 따르면, Blue Rain의 부족한 반응을 보고 이호연 사장이 방향성을 확 바꿔 빛의 속도로 일을 진행했다고 한다.[] 본래에는 은지원이 코러스와 랩핑에 참여한 힙합계 댄스곡 'Shadow'로 후속곡을 내정하고 있었으나 이호연의 촉으로 그룹 방향을 선회, 멤버들은 녹음해놓은지도 잊고 있던 귀여운 댄스곡으로 후속곡을 급하게 바꾸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내 남자친구에게'. 멤버들은 이 노래가 후속곡으로 정해지면서 나온 격렬한 귀여운 컨셉에 모두 거부감을 드러냈지만 이내 폭발적인 반응이 뒤따르기 시작한다. 깜찍하고 발랄한 느낌의 이 곡은 현재까지 이어지는 걸그룹 요정 컨셉의 원류를 볼수 있다.

핑클은 말괄량이같고 친근한 옆집 누나처럼 마치 언제라도 내 곁에 있어줄 것만 같은 친근한 느낌으로 접근했다. 가사의 주제부터 평소에 친하게 알고 지내던 친구가 갑자기 상대방에게 잘 보이려고 치마를 입고 화장을 하고, 입술을 보며 망설이지 말라는 등 조금은 도발적으로 느낄 수 있을 만큼(당시 시대 상황을 감안했을 때) 적극적으로 고백하는 가사이다. 장난도 잘 치고 잘 웃던 옆집 소녀가 갑자기 고백해달라며 애교를 부리는 상큼발랄한 느낌은 이진, 성유리의 '난 니꺼야'로 극적인 포인트마저 잡아내며 기존 큐티이미지를 이어가면서도 차별화된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어필했다.

이 곡은 나오자마자 화제를 일으키며 대박을 쳤고, 남자팬들을 순식간에 쓸어모았다. 이 곡이 발표되고 음반판매량도 크게 상승했다.

또한, 이 곡으로 지상파 음악차트 첫 1위에 올랐다. 2016년 기준으로 현재까지 많은 10~30대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이 노래를 선곡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들에게는 부담스럽지 않게끔 고백할 수 있는 남성들에게는 심쿵할 애교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할 정도로 포인트를 매우 잘 잡은 노래라는 것이다.

 

대략 9월 중순까지 내 남자친구에게로 활동하며 엄청난 인기를 누린다. 어차피 두 달 동안 활동하면서 인기도 많이 누렸겠다, 활동을 접냐 또다른 후속곡을 내놓냐 갈림길에 놓인 시점에서 핑클은 데뷔곡으로의 회귀를 선언한다. 루비라는 발라드로 삼속곡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하모니카 사운드로 시작하는 애절한 느낌의 발라드로 핑클은 또 한 번의 도약을 맞았다. 데뷔곡도 발라드였지만 느낌이 상당히 달랐는데,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청순한 이미지를 매칭하며 또다른 변신을 주었다.

이 변신은 결과적으로 성공적이었다. 핑클이 단순히 옆집 누나같은 친근함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곱디 고운 느낌까지 있는 아이돌이라는 것을 어필했기 때문이다. 청순한 느낌의 무던한 발라드로 청순함을 좋아하는 남자팬들을 끌어모으며 팬층을 더욱 넓혔고, 세 번째 활동곡임에도 방송사 1위를 또다시 차지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이 노래로 9월 말부터 11월 말까지 약 두 달 반 동안 길게 활동하면서 성공적으로 데뷔앨범 활동을 마무리했다.

 

1998년 MBC에서 방영된 스타다큐에서 핑클의 데뷔초기 생활상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다.

1집 활동 당시 멤버들간의 불화가 있었는데, 이효리와 이진 사건의 경우 서로 말을 안 할 정도로 심했으며 방송에서도 여러번 불화가 있었다고 인정을 하기도 했다. 2014년 무한도전 토토가에 이효리와 옥주현이 출연했음에도 결국 핑클이 불참하게 되며 불화가 아직도 있는 것이 아닌가하고 다시 주목받았지만, 불화는 지금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초창기의 일이다.[] 핑클 멤버들은 옥주현, 이진, 성유리가 1998년 1월에 모여 음반 녹음과 자켓 촬영을 급하게 끝내고, 이효리는 불과 데뷔 한 달 전에 급하게 투입된, 당시로서는 객원 멤버에 가까운 입장이었다. 서로 만난지 1년도 채 안 되었던 데다, 합숙 생활을 전혀 하지 않아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노는 언니' 이효리는 당시에도 왈가닥 기질이 있어 데뷔 후에도 사적인 대학교 이성친구들과도 거리낌없이 교류하고, 숙소를 탈출해서 술을 마시는 멤버였지만, 옥주현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 둘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에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소녀에 가까웠다.[] 지방 공연을 가면 이효리와 옥주현은 관광지에 놀러가거나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고, 성유리와 이진은 무조건 지역 교회에 가서 기도를 했다고 한다.[] 성향이 워낙 반대였기 때문에 서로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 결국 어느 인터뷰를 통하여 당시 신인임에도(!) 불화를 인정하고 화해하는 모습이 방영되었는데, 아마 자료가 남지 않은 사소한 마찰들은 더욱 많았을 것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서로에 대해 잘 모르던 시기라 멤버 간 다툼이 어느 정도 있었던 시기였다는 점. 그러나 오히려 멤버들의 이런 솔직하고 바로바로 부딪혀서 푸는 성격 탓에 앙금이 남지는 않았으며,[] 이후 여러 사건사고를 겪으면서 친자매처럼 똘똘 뭉치게 된다.

 

데뷔곡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두 후속곡으로 큰 인기를 얻은 1집 앨범은 291,925장이 팔려나가며 그 해 KMTV 가요대전과 골든디스크에서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가요계 시장에 한 획을 그을 레전드 걸그룹의 탄생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1999년 4월, 데뷔 1년여 만에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공식팬클럽 창단식을 가진 뒤, 5월 2집 <White>를 발표. '영원한 사랑'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이 곡이 말 그대로 초대박을 치면서 상당수의 남성 팬들을 결집시켜 그야말로 핑클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오갈 정도로 완벽한 대세의 위치에 올라섰다. 새끼손가락을 피고 '약속해줘'라고 말하는 포즈, 양팔을 빙글빙글 돌리는 안무가 따라하기 쉬워 그야말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랑받는 메가히트곡이 되었으며, 방송 3사 1위를 모두 석권하면서 이견 없는 톱 아이돌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당시 남성 아이돌그룹 극성팬이던 여성들에게는 질투를 많이 받았지만 정작 욕하던 이들도 교실에서, 축제 장기자랑에서, 수학여행 가면서[] 영원한 사랑은 꼭 한 번씩 따라할 정도로 질투와 인기를 한 몸에 얻었다.

타이틀곡 '영원한 사랑'이 메가히트를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우선 귀여운 컨셉으로 가질 수 있는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어우러지게 함으로서 요정 컨셉의 절정을 이룬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전작의 '내 남자친구에게'의 사랑스러운 옆집 소녀의 이미지의 연장선상에 있는 노래로서, 이 곡으로 인기를 얻은 핑클에게는 이 곡의 이미지를 그대로 갖다쓰는 것이 효과적이었다고 판단했다. 여기에 루비에서 얻은 청순한 이미지까지 매치시키고, 항상 나의 곁에 있어달라는 고백 가사에서부터, 청순함을 극대화시키는 흰색 드래스와 살랑거리는 안무, '약속해줘'라는 전작의 포인트까지 그대로 따왔으며, 숲을 연상하게 하는 뮤직비디오 배경에 성유리가 쓰던 월계관으로 요정 이미지까지 이 모든 것을 한 곡에 집어넣으면서 귀여움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를 4분짜리 한 곡에 압축시켜넣은 것이다. 이 풋풋한 느낌을 핑클이 매우 잘 살려주면서 다른 걸그룹들과의 경쟁에서 독보적으로 앞설 수 있게 되었다.

 

컴백 당시 다이어트로 몰라보게 예뻐진 옥주현의 미모가 큰 화제를 모았고, 1집에 이어 청순한 모습의 이효리와 여전한 덕후몰이상 이진, 그리고 귀엽고 요정같은 여린 이미지와 미모로 레전드를 찍었던 핑클의 마스코트 성유리까지 4명 모두의 매력이 잘 발휘됐었다. 무대영상 댓글을 보면 4인 4색의 매력을 가진 핑클을 예찬하는 댓글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7월부터는 영원한 사랑과 비슷한 이미지의 자존심으로 활동했다.

귀여운 컨셉으로 인기 굳히기에 들어가며 역시 상당한 인기를 얻었으며 후속곡으로도 엄정화, 양파 등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1위를 차지했다. 뮤직비디오에 물 오른 비주얼로 남성팬들이 크게 열광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타이틀곡과는 다르게 유로비트 기반의 댄스곡이어서 DDR, 펌프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오락실에 가면 거의 항상 들릴 정도로 DDR 열풍에 한 축을 이루었다.

2집으로 네 달간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걸그룹으로는 처음으로 올림픽 펜싱경기장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총 8,000여 명의 팬들이 참여하여 성황리에 끝났다고 전해지며, 이 콘서트 영상을 짜깁기해서 발라드곡 'Waiting For You'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원래 이 곡이 정식 삼속곡으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너무나 바쁜 스케줄에 2.5집 앨범 준비까지 겹쳐 공식적인 활동은 하지 못했고 2주간 음악방송에서 2집을 마무리하는 의미로 'oh! boy', 'Waiting for you'로 잠깐 무대를 가지고 활동을 곧바로 마무리했다.

이 시기에 대만 제작사를 통해서 대만에 앨범을 발표했고 한국 가수들 공연에 참가하여 공연을 가진 적이 있다.

2집 활동을 접은 지 두 달여 만인 1999년 11월에 겨울 느낌이 나는 스페셜 음반 2.5집을 발표했다. 나미의 곡을 리메이크한 '인디안 인형처럼'만 빼고는 모두 신곡이었고 곡도 13곡이나 들어가 있었다. 활동곡은 총 세 곡으로 11월에 하나, 12월에 하나, 1월에 하나씩 한 곡으로 한 달씩, 지금으로 치면 싱글과 비슷한 활동이었다.

첫 번째로 내놓은 타이틀곡은 '나의 왕자님께'라는 발라드로 전작 2집에서 발라드로 활동하려다 계획이 취소된 것을 의식한 기획이었다. 역시 청순컨셉 걸그룹답게 고백하는 내용의 발라드 형식으로 역시 가볍게 방송 3사 1위를 거머쥐었다.

 

거기에 White가 불과 한 달밖에 활동하지 않았고 뮤직비디오도 찍지 않을 만큼 소극적인 프로모션에도 지상파에서는 최고 4위까지 올랐고 겨울하면 생각나는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며 매해 겨울마다 거리에서 울려퍼지는 노래가 되었다. 영원한 사랑, Now와 더불어 현재까지도 후배 가수들이 종종 커버하는 곡이며, 최근엔 다비치, 오마이걸, 구구단이 리메이크하기도 할 정도로 꾸준히 인기를 얻는 곡이 되었다.

2000년으로 넘어가면서 '가면의 시간'으로 세 번째 활동에 들어갔다. 기존 청순발랄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는 섹시컨셉의 곡이어서, 팬들은 왜 앨범의 좋은 곡들을 놔두고 이런 곡으로 활동하냐는 비난을 수없이 한 적이 있다. 당시엔 섹시컨셉 자체도 데뷔시기나 멤버들 나이를 생각하면 시기상조로 보였지만 이는 3집 NOW로 섹시 이미지를 어필하기 전에 초석이 된 곡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가요 프로그램에서도 10위 권 안에 들면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2.5집은 45만 장을 판매하여 역대 핑클 앨범 중 두 번째로 많이 팔린 앨범으로 남았다.

2집 대박에다 2.5집 스페셜 활동까지 성공적으로 이어가면서, 1999년 연말 가요대상을 두 번[]이나 거머쥐었고 걸그룹으로는 처음으로 올림픽 펜싱경기장에서 대형 콘서트를 개최했다. 대상 수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2집 앨범은 총 60만장에 가까운 판매량을 보여주면서, 1999년 음반판매량 연간 5위, 핑클 앨범 중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남았다.

2집 판매량에 대해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고 하지만 이는 명백하게 잘못된 사실이다. 대표적인 주장이 한국음반산업협회 기준으로 59만장이 팔려나갔고 당시 음협의 판매량은 소속사가 제출하는 판매량이며 소속사는 세금 탈루를 위해 일부러 판매량을 깎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조금만 더 살펴보면 큰 오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음협 외에도 최대 음반 유통사인 신나라 레코드가 연말 결산 판매량을 발표하였는데 해당 기관에서도 2집 판매량은 60만장이었다. 음협의 기록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신나라 레코드는 소속사의 자료를 받아서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판매량을 집계하기 때문에 이 주장은 설득을 얻지 못 한다.

또한, 빼도박도 못 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있는데 바로 당시 핑클의 매니저를 맡았던 길종화의 인터뷰 영상이다. 당시 MBC 뉴스데스크에서 실제 판매된 판매량보다 부풀려 홍보하는 가수들의 사례를 고발하는 뉴스를 전했는데 여기에 길종화가 인터뷰를 했다. 길종화의 말에 의하면 6월 이전에 100만장이 돌파하지 않겠냐라는 인터뷰를 했는데 신문에서는 눈에 확 들어오게 마치 100만장이 팔려나간 것처럼 과대광고가 됐다는 것이다.당시 영상 즉, 관계자라는 사람도 정확하지도 않은 자신만의 추측으로 이야기를 했고 그걸 그대로 받아써서 눈에 확 들어오게 기사를 낸 스포츠지가 함께 빚어낸 촌극이라는 것이다. 허위 사실을 과대 광고하기 위한 스포츠지의 책임도 크지만 길종화는 당시 핑클의 최측근인데도 불구하고 정확하지 않은 사실을 마치 사실처럼 직접 말한 책임도 크다.

단일 음반은 아니지만 공식적인 기록으로도 핑클은 1999년 한 해 동안 3장의 음반으로 무려 110만 509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2집 판매량: 593,816장 / 콘서트 라이브 음반 판매량: 57,275장 / 2.5집 판매량: 449,418장)

이때가 핑클 인기의 최절정기였고, 대중적인 인기와 인지도가 가장 높았던 시기였다. CF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걸그룹 중에서는 그야말로 독보적으로 광고를 찍었고, 예능 활동도 활발하게 하기 시작하면서 TV만 틀면 핑클이 나오던 것도 이때부터였다. 대중적인 노출도가 워낙 높아져서 30대 후반만 되도 트로트를 듣던 중년층에서도 핑클이라는 가수와 노래를 익힐 정도의 범국민적인 인지도를 얻기 시작했다. 전설의 핑클빵이 나온 것도 이때였다.

 

데뷔 이후 별다른 공백기 없이 2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렸던 핑클의 대외활동은 2000년에도 이어졌다. 2집이 초대박나고 CF, 방송활동이 늘어나자 2.5집 활동까지 접은 이후에도 쉼없이 예능을 들고 CF를 찍으며 대중들에게 공백기를 전혀 느끼지 못하게 했으며, 각종 행사에 1순위로 불려가고 해외에서까지 반응이 오기 시작해 몇몇 해외 공연까지 가지며 인기를 이어가기 위한 행보를 멈추지 않았다.

특히 2000년 5월, 소속사 선배가수 젝스키스가 갑작스런 해체를 맞으며 핑클은 명실상부 대성기획의 기둥이자 1순위 밥줄이 되었다. 그래서 이때를 기점으로 핑클을 대하는 소속사의 대우가 많이 달라졌다고 하며, 이전부터 핑클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젝스키스 팬들에겐 완전히 공공의 적이 되며 여기저기서 테러의 대상이 되는 등, 높아진 인기만큼 시기와 질투의 상징이 되며 베이비복스, 보아와 함께 10대 여자들에게 압도적으로 미움을 받는 아이돌이 되어 여러가지 피해를 입었지만,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던 베이비복스, 보아와는 다르게 핑클 멤버들은 이들에게 나름대로 복수를 하는 활약상을 보였다.

 


2000년은 그야말로 가요계 별들의 전쟁이었던 시기로 일명 Big3라 불렸던 H.O.T.와 서태지, 조성모가 컴백해 모두 밀리언셀러를 기록했고, god의 거짓말, 박지윤의 성인식, 이정현의 와, 너가 신드롬급 인기를 얻었다. 이 상황에서 앞서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던 핑클은 부담감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스케줄이 워낙에 많아 쉼없이 달리고 있는데 이렇게 경쟁가수가 연달아 컴백하는 상황, 그리고 대중의 노출도가 절정에 이르며 핑클 멤버들의 비글끼가 노출되고, 2년이 넘는 청순발랄 이미지의 소모로 피로감까지 쌓인 상황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3집의 컴백은 늦어질 수 밖에 없었다. 발매 시기는 2000년 10월로서, 2집과는 1년 5개월, 2.5집과는 11개월의 텀이 있었는데 아이돌 가수치고는 공백기가 상당했다. 타이틀곡은 'Now'로서, 상당히 강도가 센 안무와 리듬감, 청순함 대신 성숙함과 섹시함으로 무장하여 기존의 이미지를 뒤엎었다.

Now의 180도 이미지 변신으로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샀다. 핑클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요정, 귀여움, 친근함인데 이와는 정반대에 있는 섹시한 이미지로 돌아섰으니, 핑클과 어울릴까 하는 고민이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세간의 우려와는 다르게 3집도 2집 못지않게 대박을 터뜨린다. 세련된 노래에 비록 섹시 컨셉이었지만 커리어 우먼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성숙하고 정갈한 의상이 대비가 되어 핑클에게 없었던 아우라를 만들어주었다. 비슷한 시기에 컴백한 H.O.T.와 god 같은 쟁쟁한 가수들 속에서 연달아 1위를 차지하며 SBS 인기가요에서 왕중왕을 수상하는 쾌거를 올린다.

또한 이때부터 남성팬들 뿐만 아니라 여성팬들에게도 어필하며 핑클에게도 많은 여덕들이 생기게 된다. 특히 이효리가 크게 주목을 받으며 성유리를 이은 핑클의 새로운 마스코트로 떠올랐다. []

Now로 2집 못지않게 큰 인기를 누린 다음 연말부터 후속곡 'Feel Your Love' 활동으로 접어든다. 도도하고 섹시한 느낌이 묻어나는 곡이었으며, '교복컨셉' '힙합컨셉' '작업복컨셉' 등 무대마다 각양각색으로 변신하는 의상으로 주목을 받았는데, 그중에서도 메인인 '스쿨룩'이 화제를 모았다. 또 이효리가 랩을 시도해 '랩퍼횰'이라는 별명이 생긴다. 후속곡 선정은 말이 많았는데, 컴백 때 이미 불러버린 곡이 후속곡으로 낙점되었다. 당시 공식홈페이지 투표에서는 'My Love'란 곡이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었다. 하지만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상파에서 3위까지 차지하는 쾌거를 이룬다. 앨범 판매량은 44만 장으로, 2.5집과 비슷한 판매량을 보였다.

3집 활동은 정상급 걸그룹답지 않게 공식적인 막방도 하지 못하고 갑작스레 흐지부지 끝났는데 메인 보컬 옥주현이 KBS 스탠바이큐 예능 촬영 중 다리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다. 제작진들이 무리시킨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자 옥주현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고 말하며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옥주현은 한동안 제대로 걷지 못했고, 이 때문에 1000일 파티 당시 휠체어에 앉아서 노래를 불러야 했다.

 

2001년 4월 리메이크 앨범인 3.5집으로 컴백, '당신은 모르실거야'를 부르며 활동을 이어 나갔다. 2001년 핑클은 핑클팬덤 역사상 많은 팬들을 끌어모았고, 르네상스 시기에 접어든다. 이들은 '당신은 모르실거야'로 방송 3사에서 2주 동안 전부 1위를 수상했다. 곡의 인기로는 '영원한 사랑'과 'Now'가 대중적으로 널리 사랑받았지만, 팬덤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가 이 때인데, 당시 아이돌 그룹 팬덤 대결의 장이었던 드림콘서트에서 많은 팬들이 모여 일당백 응원을 시전하였다.

조성모 리메이크 이후로 리메이크 열풍이 분 적이 있었는데, 핑클은 이 열풍에 한 발 앞서 앨범을 발표했다. 여성 선배 가수들의 여러 곡들을 리메이크하였으며 히트곡 위주의 선곡과 눈부신 보컬 능력을 보여준 옥주현 파트에서는 대체로 호평을 받았고, 대체로 잔잔한 노래들에 이효리의 부드러운 음색이 어우러져 보컬 능력에서도 대체로 좋은 점수를 받았다.

핑클이라는 그룹의 활동이 3년이 넘어가면서, 이전보다는 더 성숙하면서 청초한 이미지를 선보였다. 대체로 1집 루비와 비슷한 느낌의 분위기로 활동했는데, 무대 경험이 많이 쌓여서인지 뮤직비디오나 무대 등에서 확실히 노련미와 성숙함이 돋보이는 활동이었다. 판매량은 25만장을 기록한다.

'당신은 모르실거야'는 웨딩드레스 컨셉이었는데, 뮤직비디오에서 이효리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는 장면에서 헬멧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뮤비가 방송금지 된 적이 있다.

몇 달간의 공백기를 거친 뒤에 그해 Mnet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골든디스크 시상식을 제외한 연말 가요 시상식에 대부분 참석하였는데 2001년 <SBS 가요대전>에서 강타와 함께 대상 후보격인 '최고 인기상'을 수상했다. 대상은 god. 상반기에 스페셜 앨범으로 길지 않게 활동한 것 치곤 이례적인 수상 기록이라 할 수 있다.

 


2002년 3월 4집 앨범을 발표하며, 타이틀곡 '영원'을 불렀다. 1집부터 3.5집까지 멤버들은 사실상 공백기가 거의 없었을 정도로 매우 바쁜 나날을 보냈지만, 3.5집 활동을 접고부터는 방송활동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워낙 바쁘게 달려온 탓에 처음으로 맞은 공백기 동안 핑클이라는 그룹을 재정비하는 시간을 맞을 수 있었으며, 이 때부터 멤버들의 개인 활동이 시작되었다. 옥주현이 별이 빛나는 밤에 DJ로 들어가고, 이효리가 해피투게더, 타임머신 MC로 들어가는 등 솔로로서의 독립 준비를 하던 시기였다. 그리고 긴 공백기 속에 비교적 여유롭게 앨범을 준비할 수 있었는데, 이 덕분에 핑클 4집은 역대 핑클 앨범 중 최상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앨범으로 남았다. 성숙한 느낌을 강조한 4집은 여러 장르를 담았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로 발전된 믹싱을 보여주었음은 물론, 멤버들의 가창력도 이전보다 더욱 좋아지며 가수로서의 핑클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준 계기가 되었다. 4집 앨범은 대중들에게 성숙한 핑클, 가수로서 한 단계 성장한 핑클을 보여주었다.

성유리의 생일 3월 3일 첫방을 시작으로, 타이틀곡 '영원'과 후속곡 'Don't Go Away'로 활동하였다. '영원'은 SBS에서의 왕중왕 타이틀을 다시 한번 안겨 주었다. 1집 앨범처럼 발라드곡이 타이틀이 된 두번째 정규앨범으로 전체적으로 성숙해졌다는 평을 많이 받았다. 뮤직비디오 역시 네명의 멤버가 각각 스토리를 가진 형식을 취했는데 멤버 이진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과(3분26초) 후반부 자살을 암시하는 장면이 나와 논란이 되었다.

공식적인 4집 활동 첫방송이었던 2002년 3월 3일, SBS 인기가요 발산동 공개홀에는 많은 팬들이 운집하였는데 방송이 끝나고 공개홀 근처 공원으로 이동하여 팬미팅을 진행했다.

후속곡을 팬들이 투표하는 형태로 선정한다고 발표했는데, 컴백 때 무대를 가졌던 'Never'와 지금도 핑클의 숨은 명곡으로 손꼽는 ‘Fortune’[] 등 팬들의 의견이 많이 갈렸었지만 결국 2002년 월드컵 분위기를 고려해 소속사가 'Don't Go Away'로 후속곡을 결정하면서 팬들의 큰 원성을 샀다. 결국 활동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어영부영 시간만 흐르다 월드컵 시즌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앨범 활동을 접게 된다.

4집 활동 중간에 희대의 괴작으로 평가받는 긴급조치 19호에 출연했으며 SBS에서 <핑클과 가자가자> 라는 단독 예능을 런칭하기도 했다. 8월에는 마티즈 2의 모델로 발탁되었는데, 핑클의 마지막 상업광고 출연이 되었다. 2002년 11월 24일, 핑클은 마티즈 2 출판을 기념한 서울모터쇼에서 축하 공연 겸 4집 마지막 무대를 가지게 된다. 이 날 주말을 맞아 모터쇼를 보러온 관객들과 핑클의 4집 마지막 무대를 보기 위해 몰린 팬들로 인파가 넘쳐 모터쇼 현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급기야 핑클이 관객들의 안전을 당부하는 멘트를 직접 하기도 했다.

4집의 최종 판매량은 261,518장으로, 2002년 전체음반 판매량 19위를 기록했다. 활동 기간이 짧았고 또한 월드컵이 겹치면서 전체적으로 가요계의 불황이 심했는데 핑클도 이를 피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침체된 가요계 상황 속에서도 큰 하락세는 겪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룹 활동과 함께 병행한 개인 활동이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면서, 활동 마지막 해였던 2002년을 어느 정도 유종의 미를 거두며 끝내게 되었다. 이를 입증하듯 2002년 리스피아르와 여론조사에서 핑클은 여자 가수 선호도 조사 1위'를 기록하게 된다.

그 해 가요시상식은 불참했는데, 원래는 가요시상식 후보에도 올라있었으나 활동 기간이 너무 짧아 인정받기 힘들다는 이유로 불참을 선언했다. 결국 2002년을 끝으로 핑클의 완전체 활동은 사실상 끝을 맺었으며, 2003년부터는 이효리와 옥주현의 솔로 앨범 발매를 시작으로 개인 활동에만 전념하게 되었다

 

4집 활동 중이었던 2002년 4월, 그룹을 해체하지 않고 '따로 또 같이'라는 개인활동을 선언했다. 당시에는 해체냐 아니냐를 놓고 팬들과 언론에서도 의견이 분분했으나 소속사에서는 해체가 아니라고 못박았다.[] 따라서 2002년에는 그룹 활동과 개인 활동을 병행하였으나 옥주현과 이효리의 솔로 가수 활동이 본격화된 2003년부터는 조금씩 이러한 경향이 뜸해졌고 이효리가 솔로 가수로 자리를 잡은 2003년 말부터는 사실상 따로 활동하게 된다.[]

그리고 2005년 야심만만에 그룹으로 출연했고 10월 디지털 싱글인 'FINKL'이 현재까지 이들이 발매한 마지막 공식음반이였다.[22] 이때 음악 방송활동이 없어서 핑클은 2002년 이후 활동 중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개인 활동이라도 핑클은 무계약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dsp에 있는 동안은 핑클 활동 중 개인 활동이라고 보는게 맞다.[]

디지털 싱글을 발표한 지 몇 달 후, SBS 인기가요 무대 영상과 자켓 사진집 등을 포함한 형태로 DVD를 발매하였는데 당시 가수들에겐 생소하던 DVD라는 점과 다소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300장이상의 판매고를 거두며 식지 않은 인기를 증명했다. 또한 'FINKL'로 당시 음원사이트 점유율 3위이던 도시락[] 주간차트에서 1위에 오르긴 하지만 명성에 비해 조금 아쉬운 결과가 나왔다. 이것도 도시락 사이트에서 디지털 싱글의 대대적인 프로모션(이벤트 팝업창이나 메인 배너 노출, 음원 추천 마크, 도시락 자체 CD제작 후 지급)을 진행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후부터 그룹 활동은 중단되었고 완전한 개인 활동이 시작되었다.[]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면 이때까지도 방송 활동을 활발하게 함과 동시에 개인 활동을 시작해, 핑클이 '해체'라는 개념 없이 자연스럽게 '각자의 길'을 선언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핑클은 무수히 많은 CF와 예능몰이로 대중들에게 여전히 인기 걸그룹으로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룹 활동을 이어가는 도중 하나씩 자신의 자리를 잡아가면서 '해체'라는 표현과 활동의 끊김이 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길을 찾아 인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중에 '털털함'이라는 이미지를 찾아 '섹시함'으로 포텐을 터뜨린 이효리는 말할 것도 없고, 국내 탑 뮤지컬배우로 성장한 옥주현과 연기자로 자리를 잡은 성유리, 이진까지, 남녀 1세대 아이돌을 통틀어 현재까지 가장 독보적으로 돋보이는 그룹으로 위상을 굳힌 것은 이때의 자연스런 흩어짐이 큰 역할을 했다. 굳이 해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핑클 팬들을 굳건히 결집시킨 상황에서 그 인기를 자연스레 개인의 인기로 끌고 온 것은, 비록 지금에 와서 개인 활동에 발목을 잡는 요소가 되었을지 몰라도 이들이 아니었으면 현재의 이효리, 옥주현, 이진, 성유리의 인기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현재 2세대 이후 아이돌의 개인활동에 신화와 더불어 매우 큰 영향을 주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핑클 해체 논란

정규 4집과 마티즈 2 광고모델 계약 종료 이후 활동도 중단하고 핑클이 지금까지 음반활동이 없어서 해체한 그룹이라고 얘기를 많이 하는데 앞에서 언급했지만 핑클은 공식적으로 아직 해체 안 한 현재 한국 최장수 아이돌 걸그룹이며 또한 멤버 전원이 핑클은 아직 해체 안 했다면서 단호하게 못박고 있다. [] 하지만 각자 소속사도 달라졌고 서로의 활동 범위가 너무나 판이해졌기 때문에 2005년 디지털 싱글 'FIN K.L' 이후 지금까지 후속 앨범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해서 사실상 해체 상태나 다름없는 상황이 다

그래도 2007년 이효리 생일파티와 2008년 성유리 생일파티 때 네 명이 함께 출연하거나 이효리 첫 번째 단독 콘서트 때 이진, 성유리, 옥주현이 깜짝 출연해 넷이 이벤트 무대를 벌인 적은 있다. 성유리는 핑클 얘기가 나오면 되도록 언급을 피했으나[35], 2008년까지 여전히 핑클 멤버임을 수차례 못박아왔고, 2013년 DSP festival에선 영상으로 "앞으로도 계속 저희 핑클도 많은 관심 부탁한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진은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으나, 2009년 이진이 핑클 결합을 원치 않는다는 오보가 난 후 오보라는 사실을 피력하기 위해 팬사이트에 글을 쓴 적도 있다. 특히 이효리, 옥주현의 경우엔 매년 꾸준히 "핑클은 해체하지 않았다"고 말을 해왔다.

과거 소속사인 DSP조차 "현재 소속사가 다를 지라도 굳이 핑클이란 이름으로 넷이 활동하는 것에 대해 제재하지 않겠다"고 했다. 게다가 2004년 3월 DSP 사장 이호연이 특허법인을 통해 핑클 상표를 등록하기 위해 서류를 제출하였으나 2005년 6월 거절당한 기록이 남아있다. 즉, 핑클이라는 이름의 상표권은 DSP에게 없을뿐더러, 그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므로 굳이 앨범이 나오지 않더라도 이런 산발적인 이벤트는 일어날 수도 있다.

사실 핑클의 위력은 각자의 길을 떠난 후에 증명되었다. 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그룹 해체 후 솔로로 전향할 때 큰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이들 모두 자신의 새로운 자리를 확고히 잡았고, 연예계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계속 다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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