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들 정보모음

젝스키스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2. 7. 11. 18:02
728x90
반응형

1997년 4월 15일에 대성기획(現 DSP미디어) 소속으로 데뷔한 대한민국의 (6인조로 데뷔했던) 4인조 보이그룹이다.

2000년 5월에 해체되며, 2016년 4월에 재결합을 하고, YG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되어 활동을 시작하였다.

1997년~2000년 활동 당시 H.O.T.와 함께 가요계 아이돌 돌풍의 쌍두마차였으며, 아이돌 팬덤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 공식색은 노랑이다.

그룹명 '젝스키스'는 독일어로 '여섯 개의 수정'이라는 뜻으로,[] 팀 내에서 멤버 세 명씩 블랙 키스와 화이트 키스로 구분했다.

블랙키스는 (은지원, 이재진, 김재덕), 화이트키스는 (장수원, 고지용, 강성훈)이다. 활동을 거듭하면서 이 컨셉은 초창기 컨셉으로 남는다.

젝스키스의 약칭인 '젝키'로도 주로 불리곤 한다. 공식 색은 노란색이며 팬클럽은 옐로우키스(옐키)이다.

1997년 4월 15일에 데뷔해 2000년 5월 18일 공식 해체했고, 2016년 무한도전 토토가 2를 통해 재결합하게 된다. 이후 고지용을 제외한 나머지 5인이 YG 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체결해 다시 활동에 나서게 되다가[] 2019년 1월 강성훈이 공식제명되면서 현재는 4명으로 활동 중이다.

전 소속사인 DSP미디어는 젝스키스와 계약서를 쓰지 않았고, 지금까지 젝스키스 상표권을 신청한 바도 없다.[] YG엔터테인먼트와는 계약서를 작성했고 상표권 또한 YG 측에서 정식으로 등록해 젝스키스의 상표권을 가지고 있다.

 

인기

1990년대 후반에 활동한 1세대 아이돌로 3년이라는 짧은 활동 기간동안 수많은 히트곡을 내며 줄곧 정상권에 있었고, 다수의 음악 방송 1위를 비롯해 각종 가요 시상식 본상은 물론 98년 서울가요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정상급 아이돌이었다. 데뷔 초 10대 여성 팬덤이 상당했으며 활동할수록 젊은 여성 층과 남성 팬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최초로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 아이돌 그룹이면서 매년 단독 콘서트를 개최해 매진을 기록하였으며 2000년 해체 발표 후 드림콘서트(서울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고별 무대에 약 5만 명의 팬들이 몰려들었다.[] 음악 외적인 예능, 연기, 뮤지컬 등의 활동이 미비했던 당시에도 데뷔 초부터 고정 예능에 출연했고, 멤버 전원이 라디오 DJ를 하였으며, 영화, 뮤지컬에도 출연했고 젝키의 이름을 붙인 상품도 출시한 바 있다.

젝스키스가 건재하던 당시에는 (1998년 ~ 2000년 초) 같은 1세대 아이돌인 신화와 god보다 훨씬 높은 인지도와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이러한 평가는 젝스키스가 재결합 후 과거의 이력이 알려지면서 재평가가 이루어지게 된다. 특히 짧은 시간의 활동 후 십수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잊지않고 있는 팬들의 관심에 대중들이 당대 인기를 실감하게 되며, 새로운 세대들까지 관심을 가지며 새로운 패러다임까지 제시하고 있다.

H.O.T.와의 비교 문제의 경우, H.O.T.와 격차가 컸던 것은 맞다. 하지만 당시 H.O.T. 팬덤 규모가 워낙 컸던 것이지(방탄소년단을 포함한 역대 모든 그룹을 통틀어도 국내 팬덤으로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 젝스키스 자체의 절대적 인기치만 따지면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즉 1위와 2위의 격차가 컸긴 하지만, 2위와 그 밑의 격차도 컸다. 그리고 젝스키스는 노래의 대중성이 확보된 경우가 많았다. 특히 커플은 역대급 대중성을 오랜 기간 유지했다.[] 참고로 양 기획사 입장에서는 라이벌 구도를 통해 동반 상승효과를 얻으며 많은 인기를 모으게 돼서, 서로가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되는 존재였다. SM 이수만 사장이 고맙다며 젝키 매니저한테 밥도 사주고 등도 토닥여주는 일이 있을 정도였다.[]

2016년 재결합 후 현재까지 상당한 규모의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이전 활동 당시에 보유했던 기존의 팬덤[]과 동시에 재결합 소식 이후 새로운 팬덤이 유입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이할 점은 젝스키스가 오랜 공백을 딛고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어린 팬층[]을 적지 않은 비율로 보유하고 있다는 점인데, 때문에 팬들의 연령 스펙트럼이 꽤나 넓은 편이며 아이돌 팬덤 중에서도 독특한 케이스.[

3년이란 짧은 활동 후 16년이란 세월이 지났음에도 떠나지 않은 수많은 팬들과 지금의 세대가 아닌 그룹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새로운 팬층까지 유입시킬 수 있는 저력있는 그룹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들이 한창 활동했던 시기인 1997년~2000년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은 현재 기준 성인으로 성장했으며 해당 나이대의 현역 아이돌들과 선의의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또한 젝스키스는 16년이 지나 재 결합 당시에도 많은 팬들이 응원을 겉삼아 보고싶었다 다시 돌아와줘서 고맙다 등등 훈훈한 모습도 많이 보여줬다.

 

외모

재결합 이후 16년이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관리가 상당히 잘된 외모[]와 몸매로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는 현재 어린 소녀팬들이 많이 생겨나게 된 이유이기도 한데 지난 토토가 시즌 1에 비교해서 어린 시청자들이 90년대 가수를 보고 팬이 되어버리는 가장 큰 요인이 되었다.

 

음악

대중적인 컨셉과 노래로 팬이 아닌 일반 대중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3년간의 짧은 활동이었지만 정규앨범만 5장으로 히트곡 수가 상당한데, 타이틀곡만 대중들에게 홍보하고 수록곡은 팬들만 듣는 요즘의 아이돌 앨범과는 달리, 각 앨범당 수록곡까지 2~3곡은 히트를 쳤다. 심지어 3집의 경우, 아이돌 가수 중 최초로 한 앨범에서 3곡이 지상파 1위를 차지하는 신기록을 세운다. 대체로 타이틀 곡으로 파워풀하고 카리스마 있는 댄스곡을 선보이며, 후속 활동으로 발라드와 부드러운 템포의 곡으로 활동으로 조화를 이루며 여러 색깔을 보여주었다. 립싱크가 많았던 활동 당시에도 격한 안무속에서도 라이브 무대가 많았으며 무리없이 소화하기도 했다. 그 중 1997년 폼생폼사와 기사도, 1998년 무모한 사랑, Road Fighter, 커플, 1999년 Com' Back 등은 시간이 지나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젝스키스의 대표곡으로 꼽힌다. 타이틀 곡으로 활동하지 않은 앨범 내 수록곡 중에도 명곡이 많은데, 특히 기억해줄래, 너를 보내며, 예감과 같은 미디움 템포의 발라드들이 많이 꼽힌다. 특히 오락실을 휩쓸던 펌프 음악으로도 사용되어서 큰 인기를 모아 대중들에게 친숙하다.

 

맴버 영입과정

은지원과 강성훈이 제일 먼저 캐스팅이 되었고, 그 뒤를 이어 장수원, 이재진, 김재덕, 마지막으로 고지용이 젝스키스에 합류하였다.

'블랙 키스'와 '화이트 키스'를 K-pop 최초의 유닛으로 볼 수도 있지만, 개인 활동도 허용이 안되고 완전체로만 활동해야 했던 당시 분위기 상 실제 유닛으로 활동한 적은 없다.[] 활동목적이 아닌, 컨셉과 파트를 둘로 나눈 것으로, 실제로 데뷔 초엔 블랙 키스는 검거나 짙은 옷, 화이트 키스는 희거나 밝은 옷을 입고 나오곤 했으나 이후엔 이마저도 별 구분 없이 멤버 전원이 옷을 통일하게 되었다.

블랙 키스와 화이트 키스를 나누게 된 비화가 2016년 9월 10일 콘서트 Yellow Note에서 밝혀졌는데, 멤버들 중 유일하게 이재진만이 알고 있었다. 일본 그룹 V6가 멤버들끼리 나이차가 심해서 연령대를 기준으로 20th Century(토니센)와 Coming Century(카미센)로 구분하는데, 여기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라고 한다.

당시 은지원과 강성훈은 하와이에서 유학 중이었고 은지원은 클럽 DJ[]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당시 이호연 사장이 은경표 PD와 같이 하와이에 놀러왔었는데, 은지원이 일하고 있던 클럽 사장과 이호연이 친분이 있었다.[] 이호연은 클럽 사장에게 남성 듀오를 만들 계획이라고 말하자 사장은 은지원과 강성훈을 추천했다고 한다. 이호연은 클럽에서 즉석 오디션을 본 뒤[] 공식적으로 두 사람에게 가수 활동을 제안하였다. 제안을 승낙하고 한국으로 귀국한 둘은 듀엣 데뷔를 예정으로 대성기획에서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던 중 H.O.T.가 캔디로 대박이 터진 것을 목격한 사장이 듀엣에서 6인조 아이돌로 노선을 변경하고 급히 추가 멤버 모집을 시작하였다. 이때 강성훈은 회사를 나가겠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사장의 설득으로 마음을 바꾸어 먹는다.

장수원은 본래 친구 따라 오디션에 따라갔으나 정작 친구는 떨어지고 본인이 합격한 경우다. 여기까지만 보면 흔한 아이돌 가수들의 합류 과정과 비슷하지만 정말 특이한 것은, 오디션장에서 잘 하는 게 뭐냐는 질문을 받고 장수원이 "아무것도 없는데요?"라고 답했더니, 사장이 솔직해서 좋다며 그대로 합격시켰다는 사실이다. 당시 장수원은 학교 댄스팀에 속해 있어 춤을 잘 췄고, 이에 1차 오디션을 통과하고 2차 오디션만 남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본인이 가수로 데뷔하겠다는 큰 의지가 없었고, DSP 측에서 2차 오디션에 나와달라고 전화를 했다고 한다. DSP 측에서 붙잡은 면이 큰 것이다(2차 오디션에서 위 발언이 나왔다고 한다). 이 점은 2015년 1월 8일 SBS 박소현의 러브게임에서 박소현도 증언했다. 당시 박소현도 DSP 소속이었는데, 이호연 사장한테서 젝스키스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 장수원의 경우, 친구 따라 왔는데 가수가 되려는 의지가 별로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장님은 무조건 잘된다고 하길래, 저 친구의 어떤 모습을 본 걸까 의아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오랜 시간 지나도록 롱런하는 것을 보니, 사장님은 괜히 사장님이 아니라 느꼈다고 한다.해당영상

이어서 학창시절에는 부산에서 춤으로 유명했고 당시에 이주노의 소속사에서 연습생으로 있던 이재진과 김재덕을 스카우트해왔다. 당시 사장이 이주노 사무실에 찾아와서 둘을 보고는 김재덕만 뽑아갔지만, 이후 이재진도 합류하게 된다. 이호연은 이재진이 화면으로 봤을 때 코가 너무 크다며 뽑기 싫어했는데, 은지원과 김재덕이 사장과 매니저를 설득해 뽑힐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학교 얼짱으로 유명했던 고지용이 강성훈의 추천으로 합류했다

 

정산 문제

90년대 활동 말기 즈음에 소속사와 정산에 관해 다툼이 있었다고는 한다. 문제는 팬덤에 의해, 한달에 100만원씩 벌었다거나 소속사가 젝키로 번 돈이 수백억이라는 등의 허위 사실이 많이 퍼졌다는 점이다. 특히 은지원의 2억 발언이 각 사이트에 많이 퍼뜨려져 있다. 이에 대한 팩트 여부, 객관적인 증언 및 자료, 90년대 연예기획사의 수입 규모 등이 위 문서에 서술되어 있다.

 

해체

2000년 5월 18일, 기자회견을 갖고 해체를 발표했다. 당시엔 이유가 명확하게 언급되지 않아 상당한 논란이 되었다. 팬들은 이호연이 강제로 찢어놔서 해체당한 것이라는 루머를 인터넷에 수없이 퍼뜨렸다. 이는 2016년 젝키가 재결합하며 더욱 심해졌다. 그러나 그간 멤버들이 방송에 출연할 때 마다 이에 대한 질문이 자주 나왔고, 그때마다 강제 해체가 아니라고 밝혔다. 이재진의 경우 팬들의 루머와 비슷한 뉘앙스로 말한 바 있지만, 훗날 밝혀진 바를 보면 그것은 이재진 개인의 생각이었다. 다른 다수의 멤버들 생각은 달랐다. 자세한 내용은 위 문서를 참고 바람.

 

개인 활동

은지원
해체 이후 가장 성공적인 솔로 활동 및 예능을 지속하고 있다. 처음에는 G-Production이라는 자회사를 세워 음반을 냈다. 1집은 댄스 위주, 2집부터는 자신이 꿈꾸던 힙합 쪽으로 본격적인 전환을 한다. 3집부터 드렁큰 타이거와 함께 활동하여 타이틀곡 '만취 in melody'를 대중적으로 성공시킨다. 이후 1박 2일에서 은초딩 캐릭터로 자리매김하여 신서유기 등 예능에서도 큰 인기몰이를 하였고, 소속사를 차려 힙합 트리오 클로버로 활동하며 가요계 활동도 꾸준히 이어나갔다.


김재덕
김재덕은 군복무를 같이한 것을 인연으로 함께 동거까지 하게 된 토니 안이 운영하는 티엔네이션에서 음반 제작 부서의 프로듀서로 활동을 이어갔다. 2016년 동아TV 맛집남 시즌1에 김재덕과 토니 안 은 공동 MC를 맡으며 브로맨스를 과시한다.


장수원
J-Walk라는 그룹을 결성하여 활동하고 있으며, 잔잔한 발라드와 미디움 템포 등의 장르를 내세워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특유의 중저음 톤으로 젝스키스 때보다 보컬이 훨씬 발전했다. 군 입대 전 마지막 음반 발매 이후 활동이 없는 상태였다가 2013년 9월부터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 2의 아이돌 특집 3편으로 복귀하였고 미생물에도 출연하며 발연기의 전설이 되었다. 장수원은 로봇 연기로 불리는 특유의 발연기를 아예 컨셉으로 잡고 예능 및 방송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이재진
해체 이후 DOUBLE J(1집), Go back(2집), 충전(3집)등 주로 댄스곡으로 활동했다. 2005년 솔로 3집을 끝으로 방위산업체에서 애니메이션 관련 일을 맡아 착실히 복무하였지만 서류상의 업무가 아닌 다른 업무를 맡았다는 이유로 재입대 처분이 내려져 병역 비리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2008년 8월에 현역으로 재입대하였으나 재입대 직전 홀어머니를 잃으며 우울증을 앓는 등 건강에 큰 이상이 생겼고, 급기야 2009년 3월에는 치료를 위한 휴가에서 복귀하지 않아 물의를 빚었다. 하지만 군 복귀 후 수색대로 보직을 변경해 성실히 복무하였다. 2010년 8월 전역 이후 일본 유학을 위하여 일본어를 공부해왔다고 하며, 자신의 원래 전공인 그림 쪽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뜻을 밝히며 대학에서 미술을 배웠다.


고지용
해체 이후 인터넷 방송 DJ와 연기자 데뷔를 준비하기도 했으나 2001년 이후 사실상 연예계와 인연을 끊었다. 그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사업을 하고 있다. 2013년 11월에 의사 허양임과 결혼했고 2014년 10월 경에 아들 승재를 얻었다.


강성훈
발라드 가수로 선회하여 4장의 음반을 내는 등 2004년까지 솔로 활동을 지속했다. 2002년 2집의 "My Girl", 2003년 3집의 "아껴둔 이야기" 등이 사랑받았다. 이후 10년 동안 공백기를 가진 뒤 2014년 4월, 젝스키스 데뷔 17주년 기념 "커플" 리메이크 음원을 발표했다. 공백기 동안 병역 비리에 연루돼 재입대 처분을 받고 사기 혐의로 피소되는 등 여러가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특히 유흥비에 쓰려고 지인들에게 11억 원을 사취했다는 의혹을 받아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사건 때문에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 받고 구치소에 수감되었다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2016년 4월에 젝스키스 컴백 및 무한도전 측의 요청으로 MBC 출연 금지가 해제되어 무한도전에 출연할 수 있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