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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신기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1. 3. 19.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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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동방신기입니다!
We Are~T!

東方神起(とうほうしんき ひがしかた かみおき[])
TVXQ; Tong Vang Xien Qi
DBSK; Dong Bang Shin Ki

2003년 12월 26일 SM엔터테인먼트에서 데뷔한 대한민국의 2인조 보이그룹이다. 데뷔 당시에는 5인조 그룹이었으나 2010년 3월 24일까지 6년 3개월 간 5인 체제로 활동하였고, 2010년 8월부터 2인조로 활동하기 시작했다.[10]

신화가 아이돌 그룹의 생명 연장에 이바지하고 빅뱅, 소녀시대, 원더걸스가 2세대 아이돌의 대중화를 이끌었다면 동방신기는 2세대 아이돌의 시발점. 다른 소속사에서 2세대 아이돌 그룹이 데뷔하기 전까지, R&B 소울 발라드가 가요계를 잠식시킨 시기에 사실상 비교적으로 대중 트렌드를 유지하며 활동한 유일한 댄스 아이돌이었다고 볼 수 있다.

팀명은 '동방에서 신이 일어나다'는 의미로 동방신기가 아시아 음악 시장 제패를 목표로 계획된 그룹임을 짐작케 한다. 특히 멤버들의 예명을 4글자로 맞춘 것은 중국 시장을 노리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BoA의 성공적인 일본 메이저 시장 진출을 기반으로 일본 위주의 활동을 펼치게 되어 중국 음악시장을 타겟으로 삼고자 했던 본래의 기획 의도와는 조금 다른 활동 노선을 걷게 된다.[11]

캐치프레이즈는 We Are T!. 2인조 재편 이후이자 데뷔 9년차에 접어들 쯤에 고안된 인사법으로 팬들과 함께 진행하는 인사법이다.[] 동방신기의 멤버들이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샤이니의 재치 발랄한 캐치프레이즈가 부러워 TONE 투어에서 제안했다.

2015년 12월 19일 기준 총 14,143,519장의 누적 판매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로써 대한민국 아이돌 (가수) 그룹으로는 처음으로 앨범 판매량 총 1000만 장의 위업을 달성했다.

 

맴버

마케팅

팀 이름을 짓는 과정에서 다양한 이름이 거론되었는데, 이는 예능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했다. SM5, 오장육부, 동방불패, 전.먹.고(전설을 먹고 사는 고래) 등 이후 영화 '동방불패'를 보고 영감이 떠오른 이수만의 아이디어로 이름을 동방신기로 결정한다. 

상술한 대로 아시아 음악시장 제패를 목표로 기획된 팀이다. 특히 중국 시장을 어필하기 위한 전략으로 멤버들의 활동 가명을 이름 앞에 예명을 붙인 4글자 이름으로 작명했다. 당시 10대 청소년들과 방송가에서 4글자 이름 짓기 열풍이 있었다. 유노윤호(U-Know)는 'You know?'라는 단어를 통해 상대방을 알고 항상 이해하려는 마음과 빛과 소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중의적 표현. 영웅재중은 영웅. 시아준수는 아시아의 별을 의미하며 본인이 직접 지은 것이라고 한다. 믹키유천의 믹키는 박유천의 영어이름이다. [] 최강창민은 아시아의 최강(Max)이 되겠다는 포부를 담았다고 한다.

이런 설정은 H.O.T.의 강타, 신화의 신혜성, 전진을 토대로 만들어진 예명 마케팅의 연장선 상이자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사례. 이러한 전략은 향후 EXO 멤버의 초능력 마케팅으로 정점을 찍는다.

댄스음악이 점차 주춤해지고 발라드와 R&B가 음원차트에서 강세를 띄기 시작했던 기획 당시 가요계 판도에 맞게, 이후 지향하기 시작했던 SMP 장르로 정착하기에 앞서, 발라드곡을 통한 실력파 그룹으로의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아카펠라 댄스 그룹이라고 했는데 그에 맞게 각 멤버마다 음역대 포지션을 부여받았다고 했다

 

 

동방신기 5인시절

1990년대 중반 댄스 음악의 강세와 아이돌의 등장으로 인해 가요프로에서도 립싱크가 주를 이룬 결과, 댄스 가수와 아이돌 그룹의 가창력 논란이 꼬리표처럼 따라붙게 되었고 이는 자연스레 아이돌 그룹의 한계와 편견으로 굳어져 갔는데 동방신기 역시 이러한 논란에서 마냥 자유로울 순 없었다. 'Hug' 활동 당시에는 멤버들의 앳된 목소리와 댄스곡이지만 강도가 세지 않은 안무로 인해 어느 정도 커버가 되었지만 'The Way U Are'를 기점으로 전통 댄스곡 위주의 활동을 하면서 논란은 점차 불거지기 시작했다. 다만 당시 MBC와 KBS에서는 100% 라이브를 원칙으로 했으며 AR조차도 허용되지 않았다.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사례로 2004년 정규 1집 활동 당시 SBS와 케이블 채널에서는 후속곡을 'Tri-Angle'로 활동했던 반면 립싱크가 불가능했던 KBS와 MBC에서는 스페셜 캐롤 앨범 타이틀곡인 '마법의 성'으로 활동한 점과 2집 활동 당시 MBC 쇼 음악중심 출연 클립이 있다. 이는 동방신기도 본래 H.O.T.와 신화의 계보를 잇는 SMP의 적장자로서 기획된 팀이자 'Hug'를 데뷔곡으로 채택한 것은 동방신기의 자리매김을 위한 일시적인 전략이었음을 시사하는 바이기도 하다.

주로 메인 멜로디를 담당했던 영웅재중, 시아준수와 중저음도 매력적이지만 팀내 역할 분담에 의해 대부분 시원한 고음을 담당했던 최강창민사실상 이 팀은 메인보컬이 세명이었던거다., 그리고 탄탄한 중저음으로 동방신기 화음을 뒷받침하고 무대에서 시선강탈을 담당했던 리더 유노윤호, 호흡과 체력은 부족하지만 매력적인 저음보컬과 미국 출신으로 영어랩을 담당했던 믹키유천. 이렇게 다섯 멤버의 조화가 당시 아이돌 침체기에 이르렀던 가요계에 다시 아이돌붐을 일으키는 2세대 아이돌의 시작점이 되었다.

이수만이 밝히길 동방신기의 멤버들은 당시 sm의 연습생 top5였는데 원래 각자 다른 그룹에서 그 그룹의 에이스로 데뷔할 예정이었지만 당시 sm의 상황이 안좋았기 때문에 확실하게 성공할 팀을 만드는 쪽으로 방향을 바꿔 동방신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동방신기 2인 재편이후

이전의 동방신기가 화려한 퍼포먼스와 함께 각 멤버들의 보컬을 내세우는 화음 위주의 팀이었던데 비해 3인의 탈퇴로 인한 팀 재정비 후에는 유노윤호, 최강창민 두 멤버의 화음 맞추기에 중점을 두었다. 주로 중저음 담당이던 유노윤호가 중간 파트를, 고음 담당이던 최강창민 역시 중간 파트와 저음까지도 커버하게 된 것이다. 

노래뿐만 아니라 퍼포먼스 역시 노래에 맞춰 두 멤버의 단독 퍼포먼스를 교대로 연출하거나 두 멤버가 주축이 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후 두 사람의 끝없는 노력을 바탕으로 다년차에 걸맞는 보컬과 퍼포먼스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기네스북 등재 논란

2008년 동방신기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을 때 동방신기가 팬클럽 회원 수로 기네스 북에 등재되었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는 팬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퍼졌고, 확실한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사실 여부를 의심하지 않았으며 설상가상으로 영어로 쓰여 있어서 그런지 기정사실로 인정되었다.문제가 된 글을 보면 공식 집계된 팬이 80만 명이라고 하는데 이는 다음 공식카페 회원 수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동방신기가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는 주장은 상술한 대로 팬덤에서 나온 이야기일 뿐이지 동방신기 측은 기네스북 등재를 인정한 적도, 인증한 적도 없다.[23] 기네스북 홈페이지에 기재되지도 않았고 기네스북 공식 이메일로 질문해도 'We don’t currently have a record for the singer with the most amount of fans.'[]라는 답변만 돌아온다.

결국 동방신기가 당시 한국 최대 규모의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해도 기네스북의 공식적인 기록은 없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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