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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토니 안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2. 6. 29.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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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아이돌 가수, 음반 제작자, 사업가 겸 방송인이다. 5인조 보이그룹 H.O.T.와 3인조 보이그룹 jtL의 멤버이며, H.O.T.에서는 리드보컬, jtL에서는 메인보컬, 서브래퍼(메인 영어래퍼)[24]를 맡고 있으며 솔로 가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본명은 안승호. 영어이름은 Tony An. 풀네임은 Anthony An.

씹덕멤, 음색멤, 외국인멤, 요정돌, 남친돌, 킬링파트, 돌없돌생[]의 원조. 울댄장르[]의 창시자이자 대표가수.

대표곡으로는 유추프라카치아, Blue Sky, Melody, Top Star 등이 있다. 동물농장, 미미샵 등 다수 프로그램과 주요 시상식의 MC로도 활약하고 있다.

 

데뷔전

서울특별시 용산구 동부이촌동에서 1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원래 출산예정일은 6월 6일이었으나 어머니인 이옥진 여사가 현충일의 의미를 생각하며 날짜를 미뤄 다음날인 6월 7일에 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났다고 한다. 태어날 당시 아버지가 이촌동에 집 3채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부자였다고 한다

어린 시절 몸이 약해 병원에 많이 들락날락 거렸다고 한다.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기고 다행스럽게 건강을 되찾았다고. 어린 시절부터 타고난 귀엽고 훈훈한 외모 덕에 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승호왕자님'이라고 부르며 이뻐했다고 한다. 본투비 아이돌의 면모가 보이는 에피소드.

아기 때부터 성격이 매우 순했다고 한다. 이옥진 여사가 풀어주는 에피소드를 종합해보면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는 육아레벨0에 수렴하는 아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자고있는 엄마가 깰 때까지 잠을 계속 자고 엄마가 집안일을 하고 있을 땐 투정부리지 않고 옆에 와서 같이 조그만 손으로 엄마를 흉내내며 일을 도왔다고 한다.[] 평소에 공갈젖꼭지를 물고빨고 애지중지했는데 의사선생님에게 그거 계속 물고 있으면 이가 드라큘라처럼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집에 와서 바로 공갈젖꼭지를 엄마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참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쳐다보니 아기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혼자 끙끙 앓고 있었다고 한다. 그 나이대 아기라면 엄마에게 울고불고 떼쓸만도 한데 혼자 속을 삭히며 속상함을 달랜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배려심이 돋보이는 에피소드도 있다. 친구들이 집에 놀러오면 항상 엄마에게 500원을 달라고 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그 500원을 100원짜리 5개로 바꾸어 친구들에게 집에 돌아갈 차비로 주었다고 한다.[]

7살에 부모님이 이혼한 후, 엄마와 함께 지내다가[] 서빙고초등학교 5학년 재학중 아버지[]를 따라 미국 서부로 이민갔다.

미국에서도 이사를 여러번 다녔고 부모님이 바쁘셔서 집안일을 알아서 했다고 한다. 공부를 잘해 중학교 때는 2년 연속 전교 1등을 하기도 했다. 후에 말하길 어머니는 토니가 교수가 되길 바랐으며 H.O.T. 활동을 할때에도 잠깐 용돈벌이하는 거로 생각하라고 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직접 벌었는데 돈을 모아 첫 차를 사기도 했다. 데뷔 전까지 사진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학교에서 사진을 전공해 만약 가수 데뷔를 안 했다면 사진 쪽 일을 했을 거라고 한다.[] 이때 학생들이 토니를 보러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진관에 많이 찾아왔다.

이 때 앤디, 다니엘과 D.K boys[]라는 팀을 만들어 공연을 하러 다니면서 토니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졌다. 또한 에릭이 한인축제에서 커버 댄스를 추기 위해 '코리안 클럽'이라는 댄스팀을 만들었는데 다른 학교에 다니는 토니라는 아이가 인기가 많다는 소문를 듣고 그를 수소문해 데려와 함께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이렇게 데뷔전부터 학교와 동네에서 유명한 인기인이었다.

1996년 진로를 고민하던 중, 신문에 난 광고를 보고 전화를 걸어 SM 오디션에 지원했다. 그 후 LA의 한 공원에서 이수만이 직접 오디션을 봤고 자리를 옮겨 식당에서 바로 계약 제안을 했다. 그 때 부른 노래가 김정민의 '슬픈 언약식'이며 춤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컴백홈'을 커버했다. 토니의 아버지는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처음에는 오디션 합격을 믿지 않았으나, 다음날 이수만이 직접 집에 찾아와 설득하자 선뜻 허락을 하였다.[]SM 10주년 행사 때 토니안은 자신을 뽑은 이유가 너무 궁금하여 이수만에게 물어보았다고 한다. 그러자 이수만은 '배터리 때문'이라고 했다. 오디션 당시 새벽 늦은 시간이었는데 춤을 추다가 카세트의 배터리가 떨어져 음악이 끊겼다. 그때 토니안이 배터리를 사러 간다고 새벽에 30분을 찾아다녀 사온 것이다. 이수만은 토니의 그 모습을 보고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뽑았다고 답했다. 참고 "토니,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구나. 뭐든지 그런 마음으로 하면 되는거야. 계약하자."

그렇게 오디션을 본 3월에 바로 계약을 한 후 3개월 뒤 미국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모두 마치고 나서 1996년 6월 27일에 한국에 들어왔다. 그때 H.O.T.의 다른 멤버들은 이미 몇 개월 동안 연습을 하고 있는 상태였고 토니안이 마지막 멤버로 합류했다. 그러나 당시 팀이 완전히 꾸려진 상태는 아니었으며 10명 이상의 연습생이 있었다고. 참고 늦게 합류한 자신이 뒤쳐진다는 생각이 들어 단체연습이 끝난 후에도 혼자 연습을 많이했다고 한다.[]

입국일 기준, 2개월 10일이 지난 9월 7일에 H.O.T.로 정식 데뷔했다. 사실상 SM엔터테인먼트에서 데뷔한 아이돌 가수 중 최단기간의 연습생 생활을 하고 데뷔한 셈이다. 6월 27일 입국해서 약 40일만인 8월 중순에 012 콘서트에서 비공식 데뷔무대를 가졌으며, 9월 7일 토토즐을 통해 공식 데뷔를 가져 SM에 들어온지 50일도 안되어서 정식 데뷔를 했다.

 

hot 활동

H.O.T. 시절 그의 포지션은 리드보컬과 서브래퍼였고 교포멤으로서 영어랩 파트 및 작사작곡 등을 담당했다.[] 프로듀싱도 이때부터 시작했다. 캔디, We are the Future, 빛, 투지, Outsider Castle 등등에서 킬링파트와 후렴구를 많이 불렀고 "환희" 등의 곡에서 귀르가즘을 느끼게 하는 인상적인 저음의 영어랩을 선보였다. 고유번호는 07, 고유컬러는 빨간색이었으며 한국어 애칭은 '다원'[]이었다.

H.O.T. 시절 별명은 댄디남, 귀공자, 요정, 원숭이[]였다. 보통 작은 얼굴과 쫑긋한 귀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줄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제로는 데뷔 방송인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서 원숭이 흉내를 내어 생긴 별명이다.[] 로우톤의 감미로운 음색으로 "빛", "캔디" 등 주요곡의 킬링파트인 후렴구를 도맡았다. 그중에서도 신드롬을 일으킨 H.O.T. 1집 "캔디"의 킬링파트인 "단지 널 사랑해"를 부르며 남친돌[]로 큰 인기를 얻었다.

세련된 교포미가 평소 스타일에서도 드러났는데 화려한 귀걸이와 댄디한 착장이 돋보였다. 당시 그룹담당 코디들도 평소 옷 잘 입는 멤버로 토니를 뽑았다. 또한 '라인승호'로 불릴 정도로 뼈대와 몸매라인이 이뻐 펑퍼짐한 힙합 스타일이 대세인 시대였음에도 코디들이 토니에겐 폴라티, 차이나카라 수트 등 몸매 라인이 드러나는 옷을 많이 입혔다.

H.O.T. 음반에 수록된 토니안의 자작곡은 3집 "홀로서기", 4집 "Korean Pride", 5집 "One Last Love", "Natural Born Killer" 이며 특유의 서정적인 감성과 세련된 멜로디, 직설적인 가사로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Natural Born Killer"와 "홀로서기"는 팬덤 내 최애곡으로 손꼽힌다. 그 외 "환희" 등 멤버들 자작곡의 영어랩을 메이킹했다.


1집
데뷔곡인 1집 때는 흑발로 활동했다. "전사의 후예" 때는 빵모자와 비니를 써 머리를 완전히 감췄는데 이로 인해 크고 쫑긋한 요정귀와 작은 얼굴이 도드라졌고 사실상 팀의 막내처럼 보였다. 예능 MC들이 그를 보고 중학생이냐며 종종 드립을 치기도 했다.[] 또한 이때부터 연예인 토니의 트레이드마크[43]인 달랑거리는 귀걸이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후속곡인 캔디 때 모자를 벗고 5대 5 머리를 했는데[44] 이로 인해 아직도 5대 5 머리를 하면 토니안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고 그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되었다. 가끔 앞머리를 내리기도 했다

후속곡 '오늘도 짜증나는 날이네' 때는 캡모자에 사과머리를 하고 선글라스를 끼고 활동을 했다.


2집
2집 때는 갈색으로 염색을 하고 전체적으로 짧게 친 후 양쪽 앞머리를 길게 내려뜨린 일명 더듬이 머리를 했다. "늑대와 양" 때는 금발 브릿지를 넣어 뒤로 쓸어넘긴 머리를 선보였는데 염색머리 방송금지로 인해 비니, 두건 등을 착용하고 나와야 했다.[]

후속곡인 "행복" 때는 더듬이를 길게 내렸고 안경을 착용하기도 했으며 무대에 빗[48] 등 다양한 아이템을 들고 나오기도 했다.

"We are the future" 때는 앞머리를 내린 단정한 머리를 하였다.[


3집
3집 때부터 머리를 길러서 금발로 염색하고 당시 남자 아이돌 사이에서 유행하던 일명 칼머리를 하기 시작했다.[] 3집 자켓 촬영에서는 어깨선을 넘어가는 긴 머리에 머리띠를 착용한 파격적인 헤어를 선보였다.[]

타이틀곡인 "열맞춰"로 활동할 때에는 머리를 귀밑선까지 자르고 벼머리[]처럼 몇가닥을 땋아 포인트를 준 칼머리를 선보였는데 특유의 아련미와 청순미를 돋보이게 했다.

후속곡인 "빛"을 부를 때는 뒷머리를 분수처럼 높게 띄운 일명 분수머리로 활동했으며[]이로 인해 요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기본 금발에 핑크빛, 오렌지빛 등 화려한 컬러로 변화를 주어 팬들의 눈을 황홀하게 했다.[

자작곡 메들리로 활동할 때에는 헤어밴드를 착용하는 스타일을 보여줬다.[] 3집과 4집 사이 공백기에 출연한 드림콘서트에서는 단정하게 앞머리를 내린 갈색 머리를 선보였는데 엔딩 무대에서 머리를 휘날리며 춤을 추는 장면은 아이돌의 정석,본투비 아이돌의 상징으로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으며 '드콘토니'는 고유명사로 불리고 있다.[]


4집
4집 때도 금발머리를 유지했다. 4집 컴백 콘서트(일명 918콘서트)에서는 포니테일을 하였다.[] 자작곡 'Korean pride' 솔로 무대에서는 상하의 모두 피트되는 흰색 의상에 금속 재질의 무릎 보호대를 착용하였다.

타이틀곡 "아이야" 때는 앞머리를 양옆으로 내리고 뒷머리를 통째로 띄운 일명 통키머리로 활동을 했으며 폴라티에 전투복 스타일의 베스트를 입고 활동했다.

후속곡 "투지" 때는 영화 '반지의 제왕'의 레골라스 스타일을 연상시키는 머리를 높게 땋아올리고 몇 가닥을 길게 늘어뜨린 2D 만화에 등장할 법한 요정머리로 활동했다. 한쪽 눈을 가리고 판타지게임 속 전사의 이미지를 연상케 하며 화려한 착장으로 활동했으며 강인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 눈썹의 일부분을 밀기도 했다. 아마 토니안이 했던 스타일 중 가장 파격적인 스타일일 것이다.[]

"환희" 때는 금발 칼머리에 꼬랑지(긴 머리카락)을 여러개 붙여 변화를 주었다. "환희"에서 센터, 오프닝 파트와 엔딩 파트를 모두 맡았다. 세련된 수트핏과 오프닝 댄스에서 고개를 양옆으로 끄덕이는 춤을 출 때 찰랑거리는 금발 머리, 곡의 중간 영어랩을 하며 고개를 꺾을 때 휘날리는 머리카락이 예술이었다. 무한도전 토토가3에서도 이 머리를 하였다.[62][63] 중저음의 영어 나레이션도 레전드로 남아있다.

4집과 5집 사이 공백기에 '평화의 시대' 영화를 찍을 때는 파격적인 핑크 머리를 했다. 머리색이 금방 빠져 오래 유지하지 않았음에도 찰떡같이 소화하며 아이돌력을 뽐내 핑크토니, 줄여서 핑토란 애칭을 얻었고 현재까지 레전드 스타일 중 하나로 불리고 있다.[]



5집 "아웃사이드 캐슬" 때는 애쉬 그레이로 염색을 하고 칼머리가 대세이선 당시로서는 꽤 파격적인 짧은 스포츠 머리를 선보였는데, 토니의 까리하고 세련된 이미지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자신의 이름 이니셜 중 N 자 모양으로 한쪽 눈썹을 밀어 포인트를 주었다] 무대 의상은 하늘거리는 소재의 와이드팬츠와 옆트임이 들어간 상의였는데 허리가 드러날 때부터 팬들의 함성소리가 커졌다. 여기에 스카프를 맨 스타일을 선보였으며 팔목에 '일체유아조(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된다)'란 한자어를 새겼다.

후속곡 "그래 그렇게"때는 짧은 머리를 유지한 채 보라빛이 도는 염색을 했고 캐주얼한 복장에 긴 목도리를 착용해 어린왕자 이미지를 강조했다.

 

현재 활동

토토가를 통해 아이돌 활동을 다시 시작한 토니는 예전처럼 화려한 귀걸이를 다시 착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토토가 때 착용한 십자가 귀걸이는 토니안이 특별히 주문제작한 귀걸이라고. 헤어스타일도 두달에 한번꼴로 자주 변화를 주고 있는데 신체에서 가장 건강한 부위가 머리라 말한 적이 있고 머리숱도 풍성해 걱정이 없는 듯 하다.

2018년에는 김이나가 작사하고 에릭남이 작곡한 신곡 'Hot Knight' 을 발매했고 콘서트 솔로무대에서 최초로 공개하였다.

 

2018년 콘서트에서는 백금발의 덮톤 머리를 기본으로 반다나, 헤어밴드 등을 착용하여 무대마다 다양한 헤어스타일을 보여줬다.

첫콘 'We are the future' 무대에선 한쪽만 깐 반깐톤 머리를 하기도 했다.] 특히 앵콜 무대 때 모자 위에 반다나를 묶어 토끼귀처럼 양끝을 세운 스타일을 선보였는데 이 독특한 스타일은 '토니안 반다나' '톤끼' 스타일로 자리잡았다.[] 처음에 반다나 하기를 망설였던 토니는 막상 하고 나니 마음에 들었는지 콘서트 후에도 한동안 반다나를 착용하고 다녀[] '인간반다나' '톤다나'로 불렸다.

2019년 콘서트에서는 보라색으로 염색을 해 '포도'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때도 앵콜 무대 때 특유의 반다나 스타일링을 선보였다.

 


2018년~2019년 총 5일의 콘서트에서 매일 다른 색의 반다나를 선보여 레드래빗, 화이트래빗, 핑크톤끼, 오렌지톤끼 등의 파생별명이 생겨났다.

 

프로듀싱

H.O.T.때부터 꾸준히 작사, 작곡 활동을 해왔다. 본인의 자작곡 뿐만 아니라 멤버들 자작곡의 영어랩 파트를 부탁받아 작사, 작곡을 했다. S.E.S. 멤버 유진의 솔로 1집 수록곡인 "Bad Boy" 가사를 쓰기도 했던 토니는 소속사를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프로듀싱을 시작한다.

그 첫 타자로 클릭비의 멤버였던 유호석을 끈질기게 설득해 데려와 솔로가수로 데뷔시켰다. 2007년 토니안이 프로듀싱한 에반의 첫 앨범이 발매되었다. []

2008년 본인이 프로듀싱하고 제작한 6인조 남성아이돌 그룹 스매쉬를 데뷔시켰다.  근데 한국활동이 아닌 일본활동이 주가 되었다고. 이후 2012년 3월 토니안 본인이 직접 스매쉬 멤버로 합류해 '토니&스매쉬' [] 라는 이름으로 10년만에 아이돌 활동을 하였다. []

2015년 "어썸베이비"라는 5인조 아카펠라 걸그룹을 데뷔시켰다. 그룹 활동이 종료된 이후 멤버였던 수민은 배우로서 활동하고 있다.

 

사건사고

2013년 11월에 불법 도박을 한 혐의로 집행유예 1년의 판결을 받았다.(#) 이로 인해 MBC 출연정지 명단에 올랐으며 2016년 5월 말에 해제됐다.

 

2019년 4월 5일, 2019년 고성-속초 산불이라는 국가적 재난이 벌어진 상황에서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자신의 SNS에 ‘오늘은 신나는 금요일’이라는 내용을 게재했는데 태그에 있던 불금이라는 단어가 문제시되었다. 참조. 이후 본인이 "즐거운 금요일을 보내셨으면 하는 바램에 바깥상황을 인지못하고 바보같은 단어를 쓴 바보토니를 용서해주시길.. 죄송합니다..이건 알았던 몰랐던 무조건 제 잘못같아요.. 혹시라도 상처받았을 분들 때문에 걱정이네요 하루빨리 진화가 이루어지길 바랄뿐이다"라고 적절치 못한 단어를 선택한 것에 대해 사과문을 남겼다. 인스타그램 사과문.

이에 대해 “‘불금’은 일상적인 인사 용어인데 이를 재난 상황과 연결짓는 것은 과한 지적이다.”, “사과할 일이 아니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악플천지라는 포털에서조차 이 일을 이슈화한 기레기들을 비판하는 댓글이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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