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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와 아이들 양현석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2. 8. 1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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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前 가수, 프로듀서, 기업인[

젊은 시절에는 한국 가요계의 전설인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로서, 이후 중년이 되어서는 대한민국 최고의 연예 기획사 중 하나를 이끌게 되었다. 이렇게 긴 시간에 걸쳐서 대한민국 대중가요계에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대한민국 대중가요계의 역사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중의 하나라고 평해진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부터 이어진 소속 가수들의 잦은 불법행위와 2019년에 드러나기 시작한 일련의 사건으로 YG엔터테인먼트 대표직을 사퇴하였으며 사회적으로 많은 지탄을 받고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전까지만 해도 댄서 시절의 형편이 어려워서 단칸방에서 세들어 살기도 하는 등 안습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당시의 춤꾼들은 주로 이태원에 몰려다녔고 당시 이주노, 박남정, 박철우[] 등이 대세였다. 양현석은 상대적으로 저들보다 좀 어린 나이인데 해외의 춤 영상을 많이 구해서 보고 매번 이태원 문나이트 클럽에 나타날 때마다 새로운 춤을 선보여서 선배들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았고 이태원 댄서들 중 그를 추종하는 댄서 후배들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이 때 양현석 밑에 있던 후배들이 나중에 이주노가 데뷔시키는 영턱스클럽, 양현석의 흑역사인 킵식스의 멤버들이다. 박남정은 양현석이 뜨기 전에 가수로 데뷔했고, 이후 친구인 이주노의 소개로 양현석을 자신의 백댄서로 쓰며 이게 양현석이 연예계에 데뷔하는 계기가 된다.

1991년 같은 업소에서 전속밴드와 댄서로 만났는데 양현석에게서 춤을 배우고자 했던 서태지(정현철)에게서 한달에 150만 원씩 3개월로 450만 원으로 당대 직장인들의 몇달치 봉급에 해당되는 적지 않은 댄스 강습료를 받아놓고[] 군 입대를 하여 말 그대로 먹튀가 되는가 했는데 의병 제대 이후 잊지 않고 인연이 다시 닿아서 서태지와 아이들 활동을 했다. 이 때문에 이문세의 오아시스에 출연한 양현석은 서태지보다 2살 많은데도 불구하고 자신을 형이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런 부분에서 악당스럽게 말하기는 하지만, 양현석은 서태지를 엄청 아끼는 편이라 자신은 물론 YG 내에서도 타 가수/뮤지션에 대한 디스곡을 거의 안 내는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서태지의 편에 서서 디스곡을 낸 적이 있다. 팬들의 추측에 의하면 그가 첫 번째로 발표한 디스곡은 자신의 솔로앨범에 수록된 '무시'라는 곡이다. 두 번째는 페리 솔로 앨범에 수록된 'Oh, No!'라는 곡으로 충 두 차례에 걸쳐서 서태지를 지켜주었다. 전자인 '무시'의 경우는 시나위의 신대철을 디스한 곡이라 전해진다. 시나위의 곡 "은퇴선언"에 대항 하는 곡이었다는 소문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대부분 팬들의 추측으로 만들어진 정보이며 양현석 본인의 입장을 밝힌 적은 없다. 대신 Oh, No!의 경우는 가사 내용에서도 직접적으로 자세하게 들어가는데다가 YG 소개글에서도 컴배콤을 발매한 이재수를 겨냥한 곡이라고 못을 박아놨기 때문에 공식적인 이재수를 디스한 곡이 확실하다.

하지만 의외로 서태지에게 섭섭한 것도 있는지 팀명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선 때에 따라서 본인도 표현이 분분하다. 사실 실제 팀명은 "태지보이스(TAIJIBOYS)"였으나, 앨범명을 한글로 등록할 때 음반 배포 쪽 스탭이 멋대로 '태지보이스'를 한국어로 번역해서 '서태지와 아이들'이 되었다는 소문이 있다. 앙현석은 SBS의 예능프로 '힐링캠프'에 출연해서 이와 비슷하게 회상했다. 실제 1.5집(테크노 믹스 & 라이브)과 3집 라이브 앨범(95 다른 하늘이 열리고)에서의 앨범 자켓에는 그룹명이 태지보이스라고 되어있는데, 이 잔재로 보인다. 양현석 본인도 태지보이스라는 그룹명에서는 거부감이 없었는데, 판이 나오고 나니깐 "아이들"이 되어있어서 기분이 나빴다고 회상했다.

사실 서태지를 상당히 아꼈던 만큼 진짜 섭섭한 부분은 서태지 특유의 사망설이 터졌는데도 아무것도 모른 채 연락 두절하고 앨범 작업만하던 외골수 같은 성격을 봐야 한다. 콕 집어 섭섭하다고 하지는 않았지만, 힐링 캠프 두번째 출연 때 서태지와 양현석의 불화설에 대한 질문이 있을 때 "내가 서태지 걸음걸이만 봐도 몸 상태를 알 수 있다"고 했을 정도로 불화설을 부정하긴 했으나[18], 얼굴을 못 봤으면 못 본 만큼의 시간차가 느껴진다고 얘기하였다.[]

서태지와 아이들로 데뷔 이후 그의 인생은 180도 달라지게 된다. 데뷔 이후 MBC 인간시대에서 그의 집을 찾아가서 살펴본 일이 있었는데,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단칸방에서 소박하게 사는 모습이 공개되자 팬들이 돈 벌어서 어디다 썼냐고 의아해한 적이 있었다. 양현석은 그게 안 좋은 집이라는 생각은 안 해봐서 아무렇지도 않게 집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서태지와 아이들에서 래퍼[21]와 댄서를 맡았다. 랩 실력은 랩이라는 개념이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당시 대한민국 시대상 훌륭하다고 평가 받았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탁월한 실력의 래퍼가 많아지면서 래퍼로서 위상은 많이 내려갔다. 대신 춤 실력에 있어서는 당대나 지금이나 역대 최고라 불린다. 특히 몸 관절을 놀라울 정도로 꺾어서 고난도 동작을 만드는 능력은 그의 주특기다. 전성기 시절 서태지와 아이들의 무대를 보면 서태지가 전체적인 보컬의 비중을 가져가고 양현석과 이주노는 고난도 춤 실력을 선보이는 구도가 잦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처음에는 댄스로 시작했지만 이후 락을 기반으로 한 밴드 음악도 시도하며 자연스레 그의 음악적 성향도 일부분 바뀌었다. 하지만 서태지처럼 기타를 비롯한 다양한 악기를 모두 다루지는 못한다. 대신 서태지와 아이들에서 가끔씩 드럼도 쳐서 악기 중에서 드럼을 잘 다룰 줄 안다고 한다. 서태지와 아이들 4집 필승 뮤직비디오를 보면 양현석이 드럼을 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처음부터 드럼 실력이 출중한 것은 아니고 양현석이 드럼을 배운 것은 3집 활동 중반기에 습득한 것으로 추정된다. 95년 1월 콘서트 '다른 하늘이 열리고'에서 'Farewell to love" 무대를 위해 드럼을 배우게 되었다. 해당 곡은 시나위의 곡이며 서태지와 아이들 최고의 히트곡 중에 하나인 환상 속의 그대에서 잠깐 흘러 나온다. 서태지의 회고로는 원래 드럼 초짜였지만 특유의 춤 실력을 응용해서 빨리 늘었다고 한다. 또한 이 시기에 박선주에게 보컬 트레이닝을 배우기도 했다고 한다. 댄서로서는 특히 힙합 댄스가 주력인데 그 실력이 가히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서태지 중심의 그룹인 것은 사실이지만 양현석 역시 이 분야에서 결코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된 후 그는 잠시 솔로 가수로 변신했다. 이후 본인의 애칭을 본뜬 양군기획이라는 회사를 만들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쭉 가수 제작자의 길을 걷고 있다. '양군'은 서태지가 양현석을 부를 때 쓰던 애칭이라고 한다.[] YG엔터테인먼트의 회사 경영 및 배우 매니지먼트는 동생인 양민석 대표가 주로 지휘하고 양현석은 프로듀서로서 YG의 주 사업인 가수 제작 및 음악 분야를 총괄하는 쪽으로 형제간 역할 분담을 한다.

 

YG엔터테인먼트 설립 이후

2000년대 중반부터 급격한 성장을 이룩한 YG가 처음부터 대형 기획사는 아니었다.[] 특히 초창기의 YG는 매우 어려웠다. 야심차게 데뷔시킨 킵식스가 실패하며 회사가 휘청거렸으며, 자금이 없어서 양현석 본인이 직접 '악마의 연기'를 타이틀로 한 솔로 1집을 내고 활동하기도 했다.

그 당시의 솔로 앨범은 양현석 본인 스스로도 이를 흑역사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을 단순히 흑역사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앨범 자체가 퀄리티는 뛰어난 편에 속하고 당시 인기도 꽤 많았으며 서태지 팬들의 영향력으로 흥행한 것도 있었지만 어쨌든간에 앨범 판매와 가요 차트 성적도 10위권 이내에 들어갔었다. 양현석 본인은 흑역사라고 언급하기는 하지만, 앨범 자체는 꽤 고퀄인 것은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다.

솔로 앨범 구성을 보면 프로듀서 페리 덕분에 퀄리티는 나름대로 괜찮았지만, 급하게 준비한 티가 역력했다.[] 훗날 양현석의 회고에 의하면, YG 설립 초기에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솔로 1집을 낸 거라고 하였다.

과거 '서태지와 아이들'의 영향력이 있었기에 상업적인 성과는 나쁘지 않았다. 뮤직뱅크 최고 순위 10위 안에는 들었으며[], 앨범 판매량도 22만장 정도로 나쁜 성적은 아니었다. 앨범 발매 의도가 자금 확보라는 측면에서 볼 때는 훌륭한 평을 듣기도 한다. 같은 해에 나왔던 서태지 5집(국내복귀는 하지 않고 음반만 냈었다)가 110만장이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낸 것에 비하면 다소 적은 수치지만 이주노 솔로 1집(대략 4만장 정도 팔았다)에 비하면, 확실히 인기는 더 있었다.[] 이 솔로앨범으로 기초 자금을 확보한 양현석은 앨범 활동 직후 데뷔한 원타임을 제대로 지원하며 지누션 1.5집에 이어 YG패밀리 활동의 초석을 다졌다. 이후 회사 식구들을 끌어모아 YG패밀리 활동으로 나름대로 유의미한 성적을 냈다.

솔로 활동 이후 본인은 더 이상 무대에 오르지 않는다고 한다. 본인은 그 때부터 자신이 가수보다는 제작자에 더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YG패밀리의 단독공연 및 페리의 라이브 무대에서는 무대에 직접 올라서 관객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보여주기도 했다.[]

과거에는 박진영과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댄서로서 이름을 날렸지만,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는지 나이가 나이인지라 2000년대 이후로는 몸이 굳어서 그런지 예전의 춤 실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마지막 솔로 활동 이후로 10년 넘게 무대에 나서지 못한 점도 춤 실력 하락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정된다. 비슷한 연배인 박진영은 꾸준한 자기 관리와 연습으로 아직도 녹슬지 않은 수준급의 춤 실력을 보여주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러한 양현석의 춤 실력 하락을 가장 눈에 띄게 보여준 사건은 "이문세의 오아시스" 출연이다. 그는 해당 토크쇼에 출연하여 자신이 아직은(나이가 들었음에도) 후배 가수인 세븐에게[] 밀리지 않는 춤 실력을 지녔다고 발언했다. 그는 오랜만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를 직접 선 보였지만, 당시 이문세가 "이젠 세븐에게 밀리겠네요"라고 말해 굴욕을 당했다. 당시 영상을 본 대중은 그의 떨어진 춤 실력을 보며 한탄했다. 특히 전성기 시절 유연한 동작이 트레이드 마크인 양현석이 뻣뻣하게 춤을 추는 장면은 대중을 폭소하게 했다. 해당 링크를 보면 세월 앞에 무너진 양현석의 춤 실력을 볼 수 있다. (2005년도 2월 25일 방영분)

킵식스의 실패를 딛고 1997년 지누션과 1998년 원타임 등을 성공적으로 데뷔시킨 양현석은 이후 '양군기획'을 설립하며 승승장구하게 된다. 특히 원타임의 성공은 차후 YG에 엄청난 재산이 된다. 원타임의 일원인 '테디'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부상했다. 훗날 원타임이 사실상 해체한 후, 테디는 래퍼에서 작곡가로 전향해 YG에서 엄청난 성공 신화를 써내려간다.[]

킵식스의 실패 직후 존폐 위기까지 갔었던 YG가 살아난 이후는 양현석의 솔로 앨범의 영향이 크지만 DR뮤직[]의 관계자의 도움도 크다. 양현석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한 DR뮤직 관계자가 도움으로 YG는 간신히 회사의 수명을 연장한다. 양현석은 어려웠던 시절 도와준 이때의 경험을 잊지 않고 2012년 해당 소속사 걸그룹인 라니아에게 파격적인 지원을 해줬다. 자세한 내용은 라니아 항목을 참조. 이런 영향 때문에 라니아의 멤버는 양현석에게 호의적인 발언은 여러 차례했다.

YG 설립 이후 수 년이 지난 이후 다수의 전문가는 YG 특유의 매니징 방식을 주목한다. 양현석은 자신의 소속사를 운영할 때, 업계의 라이벌인 다른 두 사람인 이수만, 박진영과 비교되는데 그의 스타일은 완전방목형이다. 소속 가수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크게 사생활적인 관여를 하지는 않으며,[]귀를 열고 가수들의 의견을 모두 듣고 자신의 입장에서 도와줄 수 있는 방향을 찾아서 최대한 도와주는 스타일이다. (기사원문)

그를 비판하는 세력은 그가 유능한 특정 인물 덕분에 운 좋게 성공했다고 평가한다. 뮤지션으로서는 서태지를 만나서 성공했고, 제작자로서는 초기에는 Perry, 나중엔 Teddy, KUSH라는 작곡가 덕분에 겨우겨우 버티다가 우연히 빅뱅이 터져줘서 운으로 부자가 됐다고 비판하는 세력은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대체적으로 2010년 이후 YG 소속 가수의 팬들[] 혹은 악성 YG 안티팬일 의견으로 추정된다.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전의 서태지는 그룹을 결성할 생각은 없었고 양현석에게 춤만 배우려고 했지만, 서태지가 작곡한 음악을 듣고 먼저 그룹을 만들 것을 제안했던 이가 양현석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처음 데뷔했을 때 일부 평론가가 좋지 못한 평을 내린 것을 감안하면 양현석의 곡을 고르는 선구안과 트렌드를 보는 눈은 탁월한 편이라 평가된다. 또한 각 가수가 자신의 색을 표현할 수 있게 돕는 능력도 뛰어나다. 자신의 주관을 강하게 투입시키는 이수만과 박진영과는 여러모로 대조적인 서포팅형 기획자라고 다수의 전문가는 평가한다.

소속사 가수가 언론 헤드라인을 장식할만한 사고를 친다면 불같이 화를 낸다고 한다. G-DRAGON이 대마초 흡연 혐의로 조사를 받았을 때, 평소에 지드래곤에게 다른 사건사고가 있었을 때는 모두 감싸줬지만 이 사건 만큼은 엄청나게 화를 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하지만 가수들의 일탈을 방지하기 위해 교육을 시킨다는 말과 어울리지 않게 지드래곤, 박봄, T.O.P까지 똑같이 마약 문제로 큰 물의를 일으키자 양현석이 논하는 '교육'이 과연 효과가 있는지, 의문 부호를 가지는 대중이 늘고 있다. 일각에서 양현석이 가수를 매니징할 때 음악 활동의 자율성과 사생활의 자율성 사이에서 정도를 찾는 일을 하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음악을 만들 때 가수 개개인의 재능을 발휘하기 위해 최대한 간섭을 하지 않지만 도덕적/법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행동을 할 때도 간섭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해외진출 면에서도 다른 기획사와는 차별화된 행보를 보이고 있는데, 2011년에는 에이벡스와 합작으로 YGEX 레이블을 설립해 YG 소속 가수들의 음반을 내고 있다. 아키모토 야스시와 더불어 에이벡스에 전용 레이블을 세운 몇 안 되는 프로듀서로, YG의 브랜드파워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앨범의 발매 주기는 팬덤 사이에서 악명이 높다. 2000년대 후반 대한민국을 휩쓸었던 빅뱅이 메가 히트곡 '붉은 노을'을 발매하고 수 년간 국내 활동에서 공백기를 가지는 동안 빅뱅의 팬클럽 VIP가 이러한 YG의 성의없는 운영에 크게 분노했다. 지나친 공백기는 빅뱅의 후배 그룹인 위너와 아이콘에도 그대로 계승되었다. 이때문에 해당 그룹들의 팬덤은 양현석의 방만한 운영에 분노하는 경우가 크다.[] 2000년 이후로 지난 몇 년간 YG가 보인 행보를 토대로 추정하면 YG 소속 가수의 공백기는 대체로 1년 6개월이다. 음악 활동의 공백기가 여타 가수에 비해 길며 국내 방송도 많이 출연하지 않는다. 양현석 본인은 음원차트를 휩쓸 만큼의 좋은 노래가 마련 되지 않으면 내보내지 않는 자신의 철학 때문에 공백기가 길어진다고 해명했다.[35] 이러한 양현석의 철학 때문에 빅뱅은 3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공백기를 가졌고, 투애니원 공백기 3년, 위너는 1년 6개월, 그리고 아이콘은 데뷔에 걸리는 시간이 무려 3년이다.

'양현석은 가수 뽑을 때 얼굴을 안 본다'가 정설처럼 퍼져 있다. 하지만 힐링캠프에서 '예쁘고 잘생긴 사람보다 멋있는 사람이 좋다'고 밝혔다. 외모보다 끼와 카리스마를 훨씬 많이 보는 것으로 추정된다. 덧붙여서 2NE1도 얼굴이 예쁘지는 않지만 멋있기 때문에 좋다고 말했다. 제작자로서 연예인을 보는 것 말고 개인적인 영역에서는 작고 귀여운 여성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공백기나 매니징 방식은 많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연예인을 발굴하는 안목은 엄청나다고 평가받는다. 당장 서태지를 알아 보았으며 그의 사업 성공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테디'와 '빅뱅'[], 그리고 2010년 이후 PSY까지, 양현석이 함께한 연예인은 대부분은 일반적인 히트의 범주를 넘어선 메가 히트를 기록했다. 소속 가수 외에도 양현석이 호의적으로 평가한 인물이 향후 좋은 성적을 거둔 경우가 많다. 케이팝스타에 출연했던 유주와 김세정을 높게 평가했으며,[] Mnet의 오디션 프로 방송인 '슈퍼 스타 K'에서 서인국을 발탁했다. 그에게 적대적인 와이지 팬덤은 '캐스팅만 하는 게 좋겠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2019년 6월 14일 양현석은 버닝썬 게이트 및 소속 가수들의 연이은 불법행위로 인해 YG엔터테인먼트의 모든 직책에서 사퇴했다. 여전히 최대 주주이므로 회사에 대한 영향력은 줄지 않았지만 YG엔터테인먼트와 관련하여 공식적인 자리에서 당당히 모습을 드러낼 기회가 영원히 사라진 점에서는 의의가 있다.

 

사생활

2009년 이재진의 여동생이자 스위-티, 무가당의 멤버였던 이은주와 결혼에 골인했다.[] 연애기간이 9년을 넘었다니, 스위-티 연습생 때부터 교제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재진이 한 잡지 인터뷰에서 부모님 두 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여동생과 양현석이 사귀는 걸 알았고, 양현석이 병문안을 자주 와서 부모님께 많은 위안이 되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이재진과 양현석의 별명은 '춘삼이'라는 점은 대중에 소소한 화제가 되었다. 해당 별명은 얼굴에 점이 있어 생긴 별명이다. 또한 이재진은 데뷔 전부터 서태지와 아이들의 팬이었다고 한다. 스위-티는 2002년도 데뷔한 걸그룹이다. 본인은 힐링캠프 출연 때 아내 이야기를 하면서 나이가 어려서 좋아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2017년 7월 21일 사옥 건물 용도를 무단 변경한 혐의로 약식기소됐다. #

2018년 이후 SNS 활동이 늘었다. 특히 인스타그램을 많이 하는 편인데, 다수의 YG 팬덤은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댓글을 남기곤 한다.

 

경제력

2012년 강남스타일의 세계구급 열풍으로 YG엔터테인먼트의 주가가 급등하더니 2012년 9월 24일 계속된 주가 상승으로 양현석의 지분 가치는 3,000억 원을 넘어 마침내 이수만 회장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현재는 거품이 꺼져 많이 내려간 상태로, 최근 중국의 사드 보복 우려로 엔터주가 떨어져서 2016년 8월 9일자로 양현석이 약 1,200억 원, 이수만이 약 1,300억 원이다.# 이후 버닝썬 게이트, 비아이 사태 등을 겪으며 YG의 시가총액은 2019년 초 8,000억 원대에서 8월 현재 4,000억 원대로 절반 가까이 쪼그라든 만큼 양현석의 지분도 가치가 폭락했다.

홍대에 빌딩을 여러 채 가지고 있으며, 모 클럽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또한 하이브리드 슈퍼카 3대장 중 하나인 포르쉐 918 스파이더[41] 오너라는 말이 있었으나 이는 잘못된 정보이며 해당 사진의 918 오너는 양현석과 닮은 외모일 뿐 양현석이라는 증거는 없다. 대신에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를 소유하고 있다.

처남인 이재진이 방송에서 밝힌 바로는 양현석의 카드 한도는 3억 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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