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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와 아이들 이주노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2. 8. 17.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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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댄서, 래퍼, 가수, 음반제작자.

전설적인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맏형이자 댄서 출신으로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이후로도 잘 나가는 듯 하다가 잇따른 사업 실패와 사기 범죄 연루 등 이런저런 범죄와 구설수 등으로 신뢰가 몹시 바닥으로 떨어진 인물이다.[] 그나마 아내 박미리와 이혼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 걸 보면 아내가 보살이다.

2020년, 베리스토어 부사장에 취임하여 재기를 준비 중에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전 멤버이자 댄스 아카데미 DM SKOOL의 대표다. 본명은 이상우로, 당시 잘 나가던 솔로 가수인 이상우와 동명이인이었기 때문에 이를 피해서 주노라는 가명을 썼다고 이주노 본인이 쓴 My Story라는 책에서 밝힌 바 있다

 

데뷔 이전

경기도 안양에서 서울특별시의 명문 집안 출신인 아버지와 어머니 송영자의 무녀독남 외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변호사, 학자를 배출한 잘 나가는 집안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나온 뒤, 농촌의 야학교사로 잠깐 활동하다 농촌 처녀인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집안의 반대가 심했지만 결국 두 사람은 1966년에 결혼했고, 이듬해 이주노를 낳았다. 하지만 이주노가 돌이 되던 해 당시 공무원이 되기를 바라던 아버지는 결국 외딴 섬마을 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했지만, 그 곳에서 결국 화병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젊은 나이에 홀몸이 된 어머니는 외판원 일 등을 하면서 힘겹게 살아왔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소문난 춤꾼으로 유명했다고 하며, 소래종합고등학교(현 소래고등학교) 중퇴 이후 박남정, 박철우 등과 함께 한국 비보이 1세대로 분류되며, 80년대 후반부터 각종 비보이 팀은 물론이거니와 인순이와 리듬터치, 김승진과 하얀손, 박남정 등과 써브웨이 등의 유명 가수의 백댄서로서 활동해왔다. 이른바 장판 갖고 다니면서 춤추던 시절이었으며 빠른 67년 생으로서 66년 생들이랑 같이 학교를 다녔다.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직후

1995년에 발매된 서태지와 아이들 콘서트 앨범('95 다른 하늘이 열리고)의 수록곡 중 이주노의 솔로곡인 '너희가 소망이 되어'는 그가 작사, 작곡하였으며, 이상우라는 이름을 앨범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당시는 공연, 음반발매 등을 할 때 정부의 '사전심의'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양현석과 함께 서태지와 아이들의 안무 담당 멤버로 발탁된 이주노는 인생의 큰 반전을 맞이하게 됐고, 4년간의 짧다면 짧은 서태지와 아이들로서의 활동을 통해 충분히 대스타의 반열에 올라섰다. 외아들로 태어났으나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를 모시며 궁핍한 삶을 살았던 이주노로서는 인생에 큰 반전을 맞이한 셈이다.

그러나 이 시기 나머지 두 멤버와는 약간의 거리가 있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지방 행사를 가면 서태지와 양현석 둘이서 같은 방을 쓰고, 이주노는 매니저와 한 방을 쓰는 식이었다고 한다.[] 아마도 1967년 생으로 팀 내 최연장자였던 이주노를 1972년 생인 서태지와 1970년 생인 양현석이 대우하기 껄끄러워했던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 있긴 하나, 진실은 본인들만 알 뿐이다.

일단 팀 결성 이전에 이주노와 양현석은 백댄서 세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이미 어느 정도 친분이 있었으나, 서태지는 양현석하고만 알고 지낸 사이였다. 그리고 서태지가 가수 데뷔를 위해서 춤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자 양현석이 3인조로 가는 게 좋다면서 이주노를 데려온게 서태지와 아이들의 출발이었고 4년넘게 활동하는 동안의 정황이나 주변 사람들의 증언들을 볼때, 서태지가 양현석은 정말 마음이 맞는 친구로 생각했지만 이주노와는 단순한 비지니스 관계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게 둘이서 한명을 왕따 시켰다기 보다는 사람을 극도로 가리는 서태지가 음악이나 인생관 등 여러가지 측면에서 양현석과는 말이 잘 통하면서 친구사이가 됐지만, 이주노와는 딱히 공통점을 찾지 못했고 나이차이도 꽤 나는지라 그냥 동료 사이로만 지냈던 걸로 보인다.[] 일단 팀 해체의 원인은 이것과 관련이 없다고 이주노가 분명히 못을 박아놨다.

이주노가 어려운 사정에 처한 와중에도 일절 도움을 주지 않는 서태지와 양현석을 보며 너무 박정한 것 같다고 느끼는 이들도 있었으나, 이후 드러난 바들로 미루어 보면 이주노는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줘선 안 될 인물이었다.

 

해체 직후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 후 1996년부터 KBS 2FM에서 '이주노의 FM인기가요'의 DJ로 활약했다. 밤 10시 라디오 프로그램의 최강자였던 MBC '별이 빛나는 밤에', 그것도 초인기 DJ 이문세와 경쟁했다. 당시 수도권에서는 별밤의 인기가 단연 독보적이었으나, 지방에서는 별밤을 지역 MC가 진행했기 때문에[] FM인기가요가 인기가 더 높았다.[] 2015년 6월 26일에 KBS 2FM 50주년 특집으로 다시 진행하기도 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 후 본격적으로 DJ로 활동하다 보니, 매주 일요일 밤에 있었던 신청곡 차트에는 항상 서태지와 아이들의 곡이 올라와 있었다. 당시 KBS에서 심의결과 TV방송금지를 먹었던 시대유감을 두 번이나 기습적으로 틀어주기도 했고, 김준선이 주축이 된 View to의 'High High'를 몇 주에 걸쳐 방송해주기도 하는 등 가끔 이주노 본인의 취향에 맞는 노래를 거는 경우가 있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이후 이주노는 기획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 1996년에는 혼성댄스 그룹 '영턱스클럽'을 발굴 및 육성하면서 인기가수의 반열에 올려놓는데 성공한다. 비슷한 시기 역시 기획자로 전향한 양현석의 킵식스가 처참하게 실패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빛났던 성공이다.

한편, 이 시기 이주노 소속사에 연습생으로 김재덕과 이재진이 있었는데, DSP 사장 이호연이 찾아와서 이 둘을 픽업해간다. 이 둘은 후에 젝스키스로 데뷔하게 된다.

그러나 영턱스의 인기는 앨범이 거듭될수록 떨어져 3집부터 완연한 쇠락세를 걷기 시작하고, 영턱스에서 탈퇴한 임성은의 솔로 1집 또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1999년에는 본격 힙합에 눈을 돌려 허니 패밀리를 발굴해내지만 역시 큰 인기를 얻진 못했다. 비슷한 시기 킵식스로 나락을 맛봤던 양현석은 지누션과 원타임의 히트에 힘입어 정상을 향해 치고 오르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2000년에는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인 김준선[]의 프로듀싱 하에 '무제의 귀환'을 타이틀곡으로 하여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담은 솔로 1집 '6 mill Bionic Juno'를 내놓으며 오랜만에 다시금 무대에 올랐다. 그러나... 이 앨범은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는 평을 받으며 서태지와 아이들 세 멤버 각각의 첫 솔로 앨범 중 제일 실패한 물건이 되어 버렸다.

2001년에는 솔로가수인 김선아[]를 데뷔시켰으나, 반응은 없었으며 역시 실패로 끝나버렸다.[]

기획자 및 솔로 가수로서의 실패는 결국 기획사가 문을 닫는 결과를 낳아버렸고 한 때 잘 나가는 가수였던 이주노는 연이은 사업 실패와 사기 등을 겪으며 40억의 빚을 떠안은 신용불량자 신세까지 굴러떨어지게 된다. 이에 뮤지컬[] 제작이나 배우, 그리고 스타 골든벨 고정 게스트 출연 등 이리 저리 바쁘게 뛰어다니며 2009년 결국 빚을 다 갚긴 갚았다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40억을 다 갚는 것을 보면 그 역시 능력자다. 이후 웨딩홀 및 댄스 아카데미를 경영하며 살림이 안정된 것 같았으나[] 2011년에는 SBS 플러스에서 '90년대 톱가수들의 재기'라는 컨셉으로 방영된 리얼리티쇼 '컴백쇼 톱10'에 고정 출연하기도 했다. 참고로 같이 출연한 이들은 조진수[19], 김성수, R.ef, 김정남, 구피, 리아, 김현성, 클레오 등 듣기만 해도 절로 아련해지는 이름들이다.

 

가족사

2011년 결혼발표를 했는데 1967년생 당시 45살의 나이로 1990년생 당시 22살 자그마치 23살 연하 여자친구 박미리를 공개하고 혼인신고[] 부터 하여 화제가 되었다. 장인과의 나이 차이가 불과 4살, 장모와의 나이 차이가 불과 2살로, 거기에 혼전임신 및 과거 박미리는 이주노가 운영하던 엔터의 연습생이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도둑 중의 상도둑. 이주노가 서태지와 아이들 1집 활동을 할 때 박미리는 갓난아기였다. 당시 차마 장모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2011년 12월, 딸 이재이의 탄생으로 아버지가 됐다. 결혼식은 2012년 9월에 성대하게 올렸으며, 서태지도 이주노 부부에게 축하의 화환을 보냈다고 한다. 방송에서 장모가 만나주지 않는다는 식으로 불쌍함을 자주 어필하며 반성은 커녕 장모를 압박하는 인상을 풍겨 까이는 측면도 있다.[]

늦게 얻은 딸을 애지중지하는지 방송에서 딸바보 모습을 보였다. 2013년 10월에는 아들 이산희를 낳았다. 가끔 세바퀴나 기분 좋은 날 같은 프로에 출연해서 근황 토크를 하기도 하였다

 

재기

2020년 3월 4일에 BERRYSTORE[]의 부사장으로 취임했다. 이주노 부사장은 "BERRY를 통해 다양한 분야의 연예인들을 함께 건강한 기부문화를 조성하고 싶다."라는 의사를 전했다. #

그러나 상술한 성추행 사건 탓에, 이마저도 완전한 재기라고 보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비트코인 관련 업종에 몸 담고 있으며 관련 유튜브에 출연하였다. #

하지만 올라온지 1년도 넘은 영상인데 조회수가 안습이며, 그마저도 영상 제목에 문화대통령이라고 올려놔서 몇몇 누리꾼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 그리고 그 서태지와 아이들 중 나머지 한 명의 아이였던 양현석마저 버닝썬 게이트에 연루되어 몰락하면서 서태지만이 유일하게 연예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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